끝불

[도예가 신금호의 작가노트]

1. 1월에 쓴 글 - '눈(雪)'

3대를 가르는 형극이 오더라도
길 아닌 길 가지 않는다는 선비의 자유혼을 생각합니다.

망국의 한을 그릇에 담아내며
무념 무상의 세월을 그릇 하나와 함께 한 일본 땅 조선 도공의 얼이
빛으로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일본과 중국은 파는 것을 목적으로 그릇을 빚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기장이는 자유혼(自由魂)으로
시집 갈 딸을 키우는 심정으로 그릇을 빚었다 합니다.
그러다가 밖으로 그릇을 내 보낼 땐
'딸을 시집 보낸다' 고 했답니다.

나에게는 경험이 나의 스승입니다.
선생이 있었다면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장점이 있었겠지만,
거듭되는 고뇌와 나만의 창조의 세계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나 지금이나 나의 선생은 나 자신 뿐입니다.
경헙과 수다한 시행착오가 나의 가르침이요 방향타이었습니다.
뒤돌아 보는 2년여의 도자 세월은 한없이 더디고
내가 보더라도 가련하고도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꾸준히 곁눈 두지 않고 할 일을 다해 왔기에
티끌만치도 부끄러움도 아무러한 여한도 없습니다.

흙을 버무려 주무르기도 형태를 빚어내기도 알맞게 건조하기도
하나하나 재워넣기도 첫불을 지피기도 내가 불 속에 갇히우기도

다시 초벌로 구워진 그릇을 식히여 꺼내어 씻고 말리고 그림하고 유약 입히고
다시 재워넣고 불로 나까지 불사르고.....

남이 보고 겨우 '이제 겨우 고것 밖에 안돼?' 하더라도.
겉으로 보면 처음 그릇이나 지금 그릇이나 모양의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나 자신은 전혀 다릅니다.
2년 여를 낡고 낡은, 절고 절은 옛옷 몇벌을 작업복으로 하여 천(千)날 가까이
밤도 낮 삼아 작업장에서 지냈습니다.

경제적 궁핍도 한없이 나를 괴롭혔지만,
오히려 이것이 나의 세계를 깊게 하고 소박하고 맑고 조용하고 풍요롭게 하고
머리 숙이게 하는 자양분이었습니다.
친구(김건)의 2010 신년 인사 글오름이 마음에 닿습니다.
올해에는 '여수(如水)되어 살리라.'

이 나이에 더 무얼 하겠습니까마는
나는 춤으로도 나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도공의 마음을 선비의 마음을 성인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과 환희의 세계를
망국의 한(恨)을 품은 사기장이 조선 도공의 세월을 그리고 '나'를
춤과 나만의 춤사위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조용함 속의 움직임으로 움직임 속의 조용함으로.
그러기 위해 조선 춤사위의 전승자,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선영 선생님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가 만든 기(氣) 운동을 일과(日課)로 정해놓고.
하루도 빼지 않고 합니다.

나 자신은 이제 춤과 그릇의 묘(妙)를 압니다.
음악만이 아닌, 그림만이 아닌, 문학과 시만이 아닌, 몸으로 몸사위로.
이제는 오로지 내가 일구고 거두어 낸 나만의 묘의 세계가 내 속에 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그 맛의 진가를 압니다. 맛이 곧 멋이요, 멋이 곧 아름다움입니다.
연주에서 지극히 작은 빈틈 하나가 음악과 음악인으로서의 긍지를 단 한번에 무너트리듯이
나도 그릇 하나에도 '빈틈이 없기'에 나를 담급니다.
언젠가 틈내어 춤을 일군다면 춤사위 마디마디에 나를 심어낼 것입니다.

오늘은
반나절, 이곳 저곳 두둑히 깔리고 쌓인 눈을 말끔히 걷어 냈습니다.
마당 가득히 쌓인 눈, 작업장 가는 작은 길의 눈을 다 치워냈습니다.
길게 비탈져 오른 우리집 오름길에 덮힌 눈도 말끔히 걷우어 주고
비닐 하우스, 헌 몽고 텐트 위에 쌓인 눈까지 몽땅 털어내 주었습니다.
그래도 숨이 고릅니다. 그래도 기(氣)가 시작과 다름이 없습니다.
배고픔만 있을 뿐, 기(氣)만은 두둑합니다.

곧 일하러 가야 합니다.
이제는 아무거나 손가는대로 마음가는대로 만들기 보다는
만들기 전에 충분히 생각합니다.
거듭거듭 도안해 내고 완벽하게 디자인해 내고 설계해 내고...
만들기에 드는 시간보다 몇 곱절이 됩니다.
그릇 하나 둘을 그려내는 데도 하루가 모자랍니다.

초봄에 할 전시회 까지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졸업작품 하는 셈 치고 모자라도 지금의 내 모습을 모습대로 내보이려 합니다.
이제 하면 나를 사회에 내 보이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작더라도 마음 끌려 좋은 점수 받게 되면
이것이 내게는 힘차고 큰 디딤돌
또 하나의 도약의 기회, 현상의 돌파구가 될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도 작고 작은 나를 다잡습니다.

서두름이 없이 그렇다고 머뭇댐이 없이'
그릇이 곧 나로 생각하고 나를 작은 그릇 하나에 담아내려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나입니다.

겨울 초막집
▲ ⓒ신금호

2. 2월에 쓴 글 - '잠시잠깐 머물다 감'

내 손 내 발로 틔워진 사통팔달
아무도 딛지 않는
소나무 숲길을 걸은 건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가는 길 이십 분, 오는 길 이십 분
낙엽 쌓인 옹달샘 가에 머문 건 30분
합하여 한 시간 숲내음을 맡았습니다.

촉촉하고 포근함 봄비가 내립니다.
촉촉하고 포근함이.
맑은 숲내음도 되고
푹신한 발디딤도 됩니다.
훼치며 날아 오르는 꿩 소리가 숲속을 진동합니다.

꽃도 흙이 되고
나무도 풀도 하늘 드높이 나는 새도 흙이 되고
흙이 다시 나무가 풀이 꽃이 새가 되고
바위가 흙이 되고

나는 곧 흙이기도 합니다.
억겁년
우주의 숨결이 머물다 가는
찰라간의 길목이기도 합니다.

두 손을 모읍니다.
병가지상사라 합니다.
도(陶)가지상사도 있습니다.
고된 작업 하나하나가 빈 틈 비집고 들어와 무너져내리면
마음이 옭조이지만
곧 다잡아 내고 달래 냅니다.
'여하튼 간다.'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곧게 뻗은 한 길입니다.
밤 새워 이 길을 가다가
도중에 눈을 감더라도
천년 백자의 한 길을
내 발 내 손으로 딛고 있는 길입니다.
마음 가득히 하늘 높이 날 겁니다.

곧 초벌된 가마 문을 열 겁니다.
8백도(재벌구이는 천 3백도, 초벌구이는 8~9백도에서 불을 끔) 가마 안을 보면
안에는 시간이 정지한 채
한껏 고적한 나와 조용히 이글거리는 불
그리고 붉게 달구어진 그릇(합하여 빛)만 있지
예수 석가는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한 걸음 다가선 불의 진리입니다.
나는 불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겁니다(焰農).

누가 그럽니다.
미국사람과 중국사람이 오면
한국엔 한국인의 그릇이 없더라고 한답니다.
온갖 꾼이 제손 제발 놀리고
남(기능공)으로 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교언영색으로 칠을 한다는 것입니다.
숨 죽이고 들었습니다.

그 만큼 다른 예술분야와는 다른
고된 노가다 노동의
연속적인 과정 안에 빚어지는
창조의 세계입니다.

나는 지금
이 도혼(陶魂)의 세계 안에 있습니다.
곧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은 가마 안 온도가 140도이니
몇 시간 뒤(100도 아래)에 가마문을 열고
초벌된 그릇을 하나하나 꺼집어내어
털어내고 씻어내어 다음 작업을 준비해 둠과 동시에
국그릇으로 시작하여 다음 그릇을 빚어가야 합니다.
적어도 열흘 간(전시회는 3월31일 부터 4월 6일 일주일 간이니)은

혼으로 몸으로
흙 빚음(한 가마를 채울 분량의 일) 그릇 안에 나를 쏟아내야 합니다.

우선은 꺼진 탄불을 살려내야 합니다.
새벽 다섯 시 오 분입니다.

작업장 염농재(焰農齋)의 금호.

* 염농은 불로 농사한다는 뜻으로
서울대 문리대 언어학과 입학동기 이세윤이 짓고
문리대 입학동기생 모임 '동숭클럽'의 이름으로
나에게 헌정된 것임.


3. 3월의 글 - ' 끝불'

끝불(재벌)을 위해 가마 앞에 섰습니다.
예전엔 마음이 부산스럽더니(마음이 콩볶듯 뛰어)
지금은 담담합니다.
불을 지폈습니다.

12시간 불곁에서 불과 하나되어 지내야 합니다.
화속(火速)과 화도(火度)에 따라 불과 그릇이 변하니
순간 순간마다 그에 맞도록 화속과 화도를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가스(LPG)의 압력과 속도롤 조정해 주어야 합니다.
가스가 떨어지거나 얼지 않도록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1초라도 불 곁을 떠나면 안됩니다.
자칫 조금치라도 불이 정도(正道)를 벗어나게 되면
아무리 잘 때어도 그릇엔 금이 갑니다.
찰라간의 잘못이 공들인 한해 농사를 송두리채 망치게 하는 겁니다.
이것은 그릇을 만드는 전(全) 과정에 모두가 적용되는 겁니다.

이틀 동안 불을 냉각시키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불을 냉각시키는 과정은 가마에 공기가 스밀 틈이 없도록
꼭꼭 봉해놓고 시간과 자연에 맡기면 됩니다.

봉해진 가마 안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입니다.
결과는 이미 99% 나왔는데 다만 인간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나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예전 어느 때는 불 속에서의 그릇만 생각했습니다.
예전 어느 때는 가마 안의 불만 생각했습니다.
그후 한참 뒤에는 불과 그릇과 가마를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중에 나도 하나로 됩니다.
불과 그릇과 가마와 내가 하나로 되는 겁니다.
한 몸이 되는 겁니다. 또한 그래야 하는 겁니다.

상온(常溫)에서 시작된 불은 1,300도 까지 올라 갑니다.
어떤 때는 1분에 1도를 올려야 하고 어떤 때는
1분에 3도, 1분에 2.5도, 어떤 때는 2도, 1.5가 되도록 하여 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중요했던 것은 900도에서 부터 시작되어 되어
1,200도 지나 끝내는 환원불 과정입니다.

오랜 동안 나는 환원불이라는 것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단어만 졸졸되며 늘어놓지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도 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태토 속에 들어 있는 각종 광물 중의 철분(Fe2O: 산화철)에서 산소를 뺏어내어
본래의 순수한 철로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이때 산화되어 있는 철의 색깔은 갈색(?)이었다가
알맞게 환원시킨 철은 푸른 빛을 띄게 되는 겁니다.
이것 이 과정이 핵심이요, 요체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의 선조들은 과학(科學)으로 알았던 게 아니라
축적된 경험의 결과로 체득했던 겁니다.
그러니 알맞게 설명해 줄줄 몰랐습니다.
요변(窯變)이라 할 뿐.

나무마다 나무 속 광물이 다릅니다.
소나무가 다르고 참나무가 다릅니다.
풀마다 풀 속 광물이 다릅니다.
콩잎이 다르고 볏잎이 다릅니다.
불의 환원과정에서
불에 탄 나무와 풀의 재(灰)가 뜨겁게 달구어진 그릇 위에 앉아 녹아
잿속의 광물이 제각각 본래의 색깔을 내는 겁니다

이를테면 산화동(銅)이 그렇습니다.
산화동의 녹색이 환원되어 본래의 동의 색
붉은 색이 되는 겁니다.
다만 나는 철분만 생각할 뿐입니다.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나입니다.

초벌 과정에서는 나의 마음의 그릇 속에 남아있는
나쁜 찌꺼기가 몽땅 불살려 버려지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그릇이 맑디맑아지기를 바랬습니다.
정말입니다.

이번 재벌에서는
환원 과정에서 불이 산소를 뺏어 내는 것처럼
나의 속에서도 나쁜 무언가가 뺏어내어지기를 바랬습니다.

환원 불 과정은
화도에 따라 공기구멍을 알맞게 막아주는 겁니다.
공기를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불은 타는데, 타야 하는데
공기가 없으니, 공기 속의 산소가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소를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하니 불 속의 탄소가 태토(胎土) 속에 숨어있는 산소를
악착스럽게 뺏어내는 겁니다.

공기가 없으니 불구멍(관찰구멍)을 열면
검은 불덩어리가 불구멍에서 30센티 이상 내뻣쳐 나옵니다.
가마 안 역시 검은 불덩이가 산소를 찾아 가마 안을
휘집고 다닙니다. 꿈틀되며 기어다니는 그것이 보입니다.
또 하나의 장관입니다.

환원 과정이 끝나면 중성불로 조정해 주고
그리고 1,300도를 1시간 동안 산화불로 유지해 주면서
마감에 들어갑니다.

LPG 가스통을 잠그면
소음으로 요동치던 작업장의 굉음이 갑자기 잦아듭니다.
갑자기, 작업장 안이 아주 조용해지는 겁니다.

도자 과정 모두가 어렵습니다.
하나 하나가 힘든 과정입니다.
과정 하나에서 하나라도 잘못되면
단 한 순간에 전 과정이 무너져 내립니다.
마음도 주저 앉습니다.

이제 나는 밤낮 없는 천일(千日) 노동 천일 작업을 끝냈습니다.
이젠 전시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화가인 아내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전시회가 잘 됐으면 합니다.

오늘은 편한 마음으로
춥더라도 얕으막한 뒷산에 오를까 합니다.
봄맞는 땅 속에서는
수억의 수천억의 미생물이 한없이 분주할 것입니다.
▲ ⓒ신금호

3월 28일 금호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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