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돌파한 날이 '국군의 날'…말이 됩니까?"

[권은정의 WHO] '군 개혁'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대표

광복이란 단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건국 60년이란 말만 난무하던 더운 여름 날. 표명렬 장군의 말이 서늘한 폭포수로 다가온다. '우리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은 마땅히 신흥무관학교여야 하지 않는가?!' 육사 생도들에게 독립군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예임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군대의 정통성을 바로 잡고 자부심을 드높이는 핵심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평화재향군인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표 장군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금줄을 풀어 젖힌 이라고 할 수 있다. 퇴역 장성 출신이 하는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 그의 입에서 나온다. 군대 개혁. 누구도 섣불리 건드리지 않았던 내용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군대를 드러내 보여준다. 군대를 세상과 소통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한겨레신문사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군대 간 아들을 둔 엄마가 알아야할 7가지' 수십 명의 어머니들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떤 엄마들은 신문사에서 홍보 차원으로 재빨리 나눠준 수첩에다가 뭔가를 받아 적기도 했다. '사실 이건 병무청이나 국방부에서 해야 할 일인데 말입니다.'

그는 아들을 군대 보내고 난 뒤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이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머리 박박 밀고 떠나간 아들의 옷가지가 든 소포꾸러미를 받아들고 엄마들은 울었을 것이다. 들리느니 내무부 총기 사고에 구타 사고에 심지어는 폭우로 초소가 내려 앉아 사고를 당하는 일까지 있다. 제대로 먹고 있는지, 그런 걱정은 아주 사소한 것 일 게다. 궁금하고 답답한 가슴을 호소하고 싶지만 군대란 너무 멀고 높은 지역이다. 그런데 예비역 장군께서 직접 뭐든지 물어보라고 한다. 그는 아주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엄마들에게 군대가 어떤 곳인지 찬찬히 설명해주고 있다.
▲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대표. ⓒ프레시안

"군대란 물리적 폭력수단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군 정신에서 실질적인 군개혁의 세부 사항까지 표장군은 거칠 것 없이 꿰고 있다.

그는 특히 우리 군대의 자부심을 키워야 군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강조한다. 군 개혁이란 주제로 여러 군데서 강의를 해왔다. 3년 전부터는 평화재향군인회를 창립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런 정신을 실천하기로 했다. 평화재향군인회는 다음과 같은 주제어를 가지고 일한다. '인간 존엄의 민주 군대: 신바람 나는 유쾌 군대, 자랑스러운 민족 군대 :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 넘치는 군대.'

그런데 도대체 그는 왜 애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장군 출신인데? 별을 달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거들먹거리며 명령만 하면 부하들이 다해주는 최고위 장교인데? 언제부터 이런 '도발적인' 생각을 하게 됐나?

"제가 육사 들어가서 부터이지요." 그는 짧게 말한다. 육사 시절 그는 간부 생도였고 모범 생도였다. 가르침에 언제나 충실했다. 그런데 반듯한 이 생도의 가슴을 파고드는 사관 생도의 신조가 있었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이 구절은 표 생도가 장군이 될 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그와 함께 하고 있다.
▲ 표명렬 대표는 "우리 국군의 날은 광복군 창설인인 9월 17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시안

생도 시절부터 그는 옳은 말이라면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대대장 점호 당시 1주일마다 생도들에게 해주는 말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식당에 수저도 미제, 우리가 메는 배낭도 미제… 우리가 어느 나라 군대인가? 구보할 때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여러분을 조소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가? 항상 명심하자.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군대다.' 간부 생도로서 그는 매사에 원칙과 정의를 앞세워 일처리를 확실히 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주지 않는 그를 두고 모두들 지독하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상부에서 보기엔 입만 열면 민족 군대, 자부심 운운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옳은 소리인 것은 분명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능력도 뛰어났고 매사에 열심인 똑똑한 초급 장교였다. 맹호부대 소총 분대장으로 월남전에도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뜻한 바 있어 정훈병과로 옮겼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우리 군대의 정신 전력을 강화하는데 자신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정신력을 하나의 전력으로 키워 군대를 개혁하려는 비전을 세웠다. 중령에서 대령으로 그리고 마침내 별을 다는 동안 그는 정신 전력 강화에 미치다시피 했다. 우리 군대의 가치관, 정통성, 군인으로서 지녀야할 정신....그가 주력해온 부분이다. 정훈 담당으로서 평생을 보낸 그가 우리 군대의 개혁을 부르짖는 일은 어쩌면 마땅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우리 국군의 날은 9월 17일로 해야 합니다. 광복군 창설을 국군의 날로 잡는 게 마땅하지 않나요? 지금 기념하는 10월 1일은 6·25 당시 38선을 돌파한 날이에요. 우리 국군의 정통성을 6·25에 두다니! 이런 XXX 빠진…. 인간에게 생일이 중요한 것처럼 군대는 창군일이 중요합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우리 선조의 정신을 이어받는 게 마땅합니다. 청산리 대첩 정신을 이어받는다면 우리 군대의 자부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표 장군은 우리 군대란 게 그 출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울분 섞인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우리 군대는 일본군들의 직장이었어요.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막 키워진 것이지요. 군인상, 그런 철학이 없어요. 총을 가진 무력 집단의 기능만을 강조하고, 존립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개념이나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우리 군에는 정의에 대한 개념도 없어요. 왜냐? 불의한 사람들이 군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들의 친일 정체가 탄로날까봐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잡으려고 만든 게 군대에요. 하지만 우리 군대에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선조들이 있습니다. 사관학교에 이동영의 동상이 서고 우리 사관학교가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정신은 군 간부 양성 기관인 사관학교에서 훈육을 통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 사관학교 출신들은 그런 자부심이 없어요. 이렇게 자랑스러운 군대의 후예다, 라는 자부심이 솟아나야 하는데 말이에요."
▲ 표명렬 대표는 현역 시절 광복군 선배를 육군사관학교로 초청해 대접했다. 그들은 "광복 후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프레시안

그는 정훈감 시절 참모총장에게 건의하여 광복절 즈음 광복군 선배들을 육사 교정에 초대해 정중하게 대접하기도 했다. 그때 창신동 가난한 사무실을 찾아가 경례를 올리자 광복군 출신의 노신사들은 의연하게 경례로 답했다. 후배들의 사열 광경을 보며 선배 노병들은 광복 후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울면서 광복군가를 합창했다. 참 기억될 만한 모임이었다. 그 후 일본군 출신들이 자기들은 왜 안 부르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 장군의 목소리는 더욱 열기를 띤다. 때론 군부대 브리핑처럼 단호한 목소리가 되곤 한다. 얼마나 수많은 시간을 저렇게 열변을 토했을 것인가. 알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동료 군인들 앞에서 말이다.

"군에선 진급이니 승진이니 이런 치사한 것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는 정직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재를 도태시키는 시스템은 망하게 되어 있어요. 이런 개혁을 하자는데 나보고 빨갱이라 하면 되나, 아이구 참, 미치겠네."

그는 평군을 만들고 나서 주위로부터 갖은 박해를 받았다. 그를 알고 지내던 장성 친구들은 멀리하더니 급기야는 모임에서 제명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다. 육사와 재향군인회에서도 나가라고 했다. 하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 광주에서도 그랬다. 그가 목격한 광주 시민들은 폭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들이 어떻게 폭도일 수 있습니까?" 보안사에 찍힌 그는 곧장 강원도 현리 원통 3군단 쪽으로 보내졌다. 보통은 중령급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대령인 그가 1년 반을 '썩어야'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자. "내가 계급 따위, 자리 그런 것에 연연했더냐, 하던 일 계속하자. 내가 할 일은 언제나 '군 개혁 연구!'"였다. 그 뒤 2군으로 옮겨가 다시 몇 년, 그의 표현대로 5년간 '귀양 생활'을 했다. 정훈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는 별을 다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장군 생활 2년이 더 힘들었다. 지휘부에서 하라는 교육은 군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뿐이었다. 주위에서 뭐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육군의 정신 교육 책임자는 정훈감인 바로 나'라는 자부심으로 그는 원군 하나 없이도 굳건하게 자기 소신을 지켰다. 그리고 그는 말 그대로 '별난 장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의감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아요. 저 같은 이가 바로 그 경우죠. 그런데 저는 건전한 보수파이거든요. 사회주의 이론도 비판하고요. 난 신념이 있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장군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나 혼자 하는 게 너무나 이상한 일입니다. 고작 인생의 관심을 돈이나 출세에 두는 친구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사실 그도 혼자 잘살고자 한다면 못지않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형편으로 볼 때 그는 남부럽지 않은 이다. 그를 정신적으로 이해해주고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는 다정한 아내와 장성한 남매도 출가하여 능력 있게 잘 살고 있다. 집안 전체로 보자면 '문제 가장' 일만도 하다. 하지만 올해 일흔을 넘긴 표 장군은 아직 하는 일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 평군 전국 지부 200개를 목표로 두고 있는데 70개가 벌써 만들어졌다. 순전히 자비로 시작해서 애로도 많았다. 고향에 있던 선산도 팔았고 얼마 전에는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처분해서 사무실 비용을 충당했다. 이제는 조금씩 회원들이 도움이 된다니, 정말로 다행이다.
▲ 표명렬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의감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몬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는 결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프레시안

표 장군은 우리 군 문화가 바뀌려면 군 간부들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군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이 각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장교 구타 사건이나 포항 초소 매몰 사건 같은 것도 변화를 거부한 우리 군대 조직 문화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잘라 말한다.

"장교들끼리 그런데 사병들은 오죽하겠어요? 포항 초소 매몰 사건도 예산 문제가 아니고 관심의 문제이지요. 본질적인 문제를 봐야 합니다. 군대는 간부들의 관심대로 움직이는 조직이에요. 장군이 요즘 군기가 왜 이래, 한 마디 하면 저 아래 내무반에는 구타가 일어나요. 간부들이 부하에게 관심을 쏟는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지요. 부하들에게 애정을 가지면 진짜 문제가 보이지요."

그는 군대란 참 분명한 조직이라고 한다. 군대 개혁도 간단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만 고민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명령만 내리면 그대로 되니까요. 장군이 관심 가지면 아래에서는 진급을 위해서 그대로 따라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군 개혁이 성공하는 거지요. 장군이 유쾌하고 재밌는 군대를 위한 고민을 가진다면 군대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간부들의 최고 관심사는 진급과 보직이에요. 내가 언제 계급이 올라가고, 다른 이보다 더 좋은 자리를 맡아서 이익을 누릴까, 그것 밖에 없어요."

그는 자신에게 맡기면 일사천리로 해나갈 자신이 있단다. 하룻밤 사이에 다 해치울 수도 있다고 자신한다. '표명렬의 군 개혁 로드맵, 이미 다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주머니에서 막 꺼낼듯하다.
▲ 표명렬 대표는 촛불 집회도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지나는 수많은 시민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프레시안

군대에 대한 애착, 군 개혁에 대한 그의 열정이 쉽사리 꺼지지 않겠다. 장군으로서의 자부심을 언제 느끼는가, 이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장군 출신들이 나더러, 아니 무슨 장군 새끼가 그런 행동을 해, 엉! 이럴 때죠. 그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 그저 자기의 안위나 그런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예요. 제가 그들하고 그만큼 다르다고 하니 그게 큰 위안이고 다행이다 싶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니까요."

그는 자기와 같은 생각이 있는 군 간부가 없진 않지만 진급이나 그런 게 걸리면 고민하다가 쉬운 길로 가버린다고 말한다.

촛불 집회 현장에서 그를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에 피켓을 들고 선 그의 모습이 자주 올라왔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멋진 장군님!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내가 이러다가 죽겠구나.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게 아무래도 더 열심히 하라는 말로 들리니, 너무 열심히 하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좋지요. 자랑스럽고…"

평화재향군인회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 반대, 6·25 전우회 학살지 탐방, <한겨레> 보기 운동을 전개하는 그를 몹시 미워하는 안티 팬도 있다. '이런 사람을 그냥 둘 것이냐'는 협박성 댓글도 달린다. 그를 촛불 배후 세력이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댓글에서 힘이 솟구친단다.

"그래, 차라리 나를 죽여 다오. 그러면 우리 평화재향군인회가 더욱 커지지 않겠느냐. 난 70이 넘은 사람이다. 두려울 게 뭐 있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군 개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살신성인하겠다는 그의 다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듯하다. 허허, 웃으며 하는 말인데 그 힘이 아주 세다.
▲ 표명렬 대표와 권은정 씨. ⓒ프레시안

표 장군은 대만에서 공부하던 시절 만난 그곳 장군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100여 미터도 안 되는 데를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 무게를 잡는 우리 장군들과 달리 대만의 장군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임관식 때에 젊은 소위들은 별 3개 달린 육사 교장에게 가서 사진 찍자고 했다. 우리로서는 꿈도 못 꿀 장면이 아닌가.

그는 우리나라에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군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군다운 사람이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고민,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보다 건전하게 할까 관심도 커야 하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행복한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장군들은 그들의 별을 자신의 군복과 군모에만 달고 산다. 표 장군은 자신의 별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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