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없는 나라가 민생강국

[사형제도, 이젠 폐지돼야 한다·12]

제가 사형제의 비인간성에 눈을 뜨게 된 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을 읽고 난 뒤부터입니다. 위고는 교수형이 집행되던 광장을 지나다 단두대 아래 흥건히 고여 있는 피를 바라보며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정신의 산 증인이었던 위고에게 사형제도는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스스로 사형폐지론자임을 고백한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위고는 사형제도의 잘못과 참혹함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이 위대한 공화주의자는 "사형은 죄인의 머리만 절단하는 게 아니고, 가족의 머리까지 절단"하는 잔혹한 제도라고 명토박았습니다. 감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의 고통을 잘 묘사한 <사형수 최후의 날>에는 사형수의 불안과 초조, 번민, 후회, 그 내면세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께름칙하기는 사형을 언도한 법관의 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은 저와 함께 교양법학서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을 추어라>를 펴낸 차병직 변호사의 군법무관 시절 경험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차 변호사는 1980년대 후반 전방의 어느 육군사단의 군법회의 심판관으로 일하던 시절 한 병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법정에 선 병사는 살인혐의자였습니다. 군 검찰관은 사형을 구형했고, 당시 심판관으로 군사재판에 관여한 차 변호사는 합의 끝에 사형을 선고했답니다. 그는 선고 다음날부터 조금씩 기분이 묘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고 합니다. "정말 사형이 집행되기라도 하면 어쩌나"라는 마음이 내내 그를 괴롭혔습니다. 차 변호사가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소신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사형제는 가장 오래되고 잔인한 형벌입니다. 인간존엄성의 문명사회와 맞지 않습니다. 형벌에 인도주의 사상이 깃들기 시작한 것은 1774년 이탈리아의 형법학자 제사레 베카리아가 사형제 폐지론을 들고 나오면서부터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을 계기로 사형제도가 본격 논의되었습니다. 1981년 12월 미테랑 대통령이 취임한 뒤, 국민의회에서 4분의 3 찬성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테랑의 가장 큰 업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형제 폐지는 바로 인도주의 정신의 결정체요, 인류 진화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사형폐지론자인 저는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법무부로 하여금 사형제도가 과연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법무부 차원의 작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정리된 세계의 연구결과는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일제 식민지를 거쳐 독재정권 때 악용되면서 형벌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는 복수감정에 불타는 형벌이었습니다. 인혁당사건 희생자의 경우가 대표 사례였습니다. 사형집행 뒤의 감정으로 보아도 사형은 추상적인 국가나 사회만 승리자가 되고 나머지 전체를 패배자로 만드는 게임입니다.
  
  국제엠네스티는 지구 위의 나라를 세 종류로 나눕니다. 사형을 폐지한 국가,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 그리고 사실상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12월 28일까지 사형 집행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10년간 사형 집행이 없는 나라'가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60여 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형집행 없는 이 순간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국가는 생명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사형제도는 생명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를 권고한 사유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에 앞장선 것이 제 인권정치의 시작이었다면 사형제 폐지는 그 완결편이 될 것입니다. 사형제도를 없애는 대신 죄인이 교도소에서 평생 못 나오게 하는 '절대적 종신형제'를 그 대안으로 검토해 볼 만합니다. 사형제 폐지는 대담한 변화입니다. 사형제 없는 나라가 민생강국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예쁜 꿈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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