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이재정·현정은 등에 왜 '비수' 던졌나

개성 구경하고 가는 길에 "현대와는 안 한다"

북한이 24일 개성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현정은 현대 회장의 뒤통수를 쳤다. 개성관광 사업자를 롯데관광으로 바꾸려던 뜻을 접고 당초 합의대로 현대아산과 하기로 입장을 정했다는 최근의 보도를 이 장관과 현 회장의 개성 방문 당일 저녁에 뒤엎어 버린 것이다.

이는 특히 북한이 이 장관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남측 인사의 개성시내 출입을 반년여 만에 허용함으로써 개성관광 개시의 가능성이 운위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태평화위, '야심가' '음모가' 또 거론

충격파를 던진 것은 2005년 10월 '현대 상층부에 기생하는 야심가'를 지목하며 "현대와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파트너인 아태평화위의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측과 개성관광과 관련한 정식 합의서를 맺은 것이 없으며, 최근에 현대측과 이와 관련한 협의를 한 것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국내 일부 언론이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측이 지난달 8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을 방문했을 당시 남측 당국자들에게 '개성관광은 현대아산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던 것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 24일 개성 선죽교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이재정 장관과 현정은 회장. 이들에 대한 북한의 '환대'는 이날 오후 늦게 나온 아태평화위원회의 발표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프레시안

아태평화위 대변인은 이 보도에 대해 "완전히 거짓으로 일관된 허위보도"라고 강도 높게 공격하고 "당국이 개입해 저들의 기업적 이익을 위해 그 무엇도 서슴지 않는 현대아산의 야심가, 음모가들과 공모해 날조한 비열한 모략행위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남측 정부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현대측은 우리측에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깊이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재발 방지를 담보했다"면서 "그러나 현실은 현대측의 사죄와 반성의 눈물은 한갓 위선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대 안에는 여전히 야심가, 음모가들이 우리와의 협력 사업을 그릇된 길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대 상층부가 내부의 야심가, 음모가들의 모략에 놀아나 우리의 특전 특혜에 배은망덕하고 선임자들이 우리와 맺은 오랜 믿음과 우의를 저버림으로써 우리는 부득불 현대와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개성관광을 현대와는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대측과 남조선 당국은 북남협력 사업의 근본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게 모략을 일삼는 것이 우리와의 그 어떤 협력사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며 재발 방지를 담보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北의 입장 해석이 난해한 또 한 가지 이유

아태평화위의 이같은 태도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 장관과 현 회장의 방문 직후 이 보도가 나왔다는 '시점의 문제' 외에도, 북한 역시 개성관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징후가 이날 개성 시내 곳곳에서 뚜렷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변화의 징후는 새롭게 단장된 시내 상점들의 간판에서 우선 감지됐다. 이날 이동 코스였던 봉동-통일다리-남대문-자남산여관 대로변에 위치한 대다수의 상점·식당들은 빛이 바래거나 우중충했던 옛 간판 대신 반짝거리는 새 간판을 걸고 있었다.

이같은 변화는 관광코스로 이용될 법한 가게들에서 더 분명했다. 개성고려인삼판매소의 경우 새 건물에 번쩍거리는 은빛 간판을 달았고, 자남산여관 옆 식당 '평양랭면'은 '실사 출력'을 방불케 하는 세밀화로 냉면을 그려 넣은 간판을 걸어 놨다.
▲ 관광객 맞이 준비를 끝낸 자남산여관의 기념품 상점(왼쪽)과 진열대 공사가 한창인 고려기념품상점의 모습(오른쪽) ⓒ프레시안

간판 같은 겉모습 말고도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질적인 변화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요소들도 여럿 있었다. 고려민속박물관 앞 '고려기념품상점'은 새 진열대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건너편 '우표수집가상점'은 입간판을 내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개성 최대의 호텔인 자남산여관 1층의 기념품 판매소는 확장 개업해 일반음료와 술, 특산품 등 다양한 선물세트를 완비했다. 이곳에는 특히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브랜드의 제품도 진열돼 있었다. 고려민속박물관 경내의 기념품 판매소도 전에 없던 물건들을 확충했다.

과거 선죽교와 고려박물관, 북측 출입국사무소 등에 설치되어 급조된 느낌을 주었던 간이 판매대가 모습을 감춘 것도 특징이었다. 이에 대해 개성 시내를 수차례 방문했다는 통일부 당국자는 "자남산여관 식당 조명도 새롭게 정비했더라"며 "곧 관광을 시작할 분위기가 완연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상은 북한이 2005년 8월 시범관광 이후 미뤄 온 개성관광을 드디어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올 봄에는 (관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현 회장과 "북한도 우리가 한다는 데 그렇게 반대하지 않는다"는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의 말은 관광 사업자가 결국 현대아산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형적인 협상력 제고술?

이런 북한이 또다시 '야심가'를 거론하며 "개성관광을 현대와는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개성관광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를 앞두고 현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협상술이 아니냐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과거지사'로 현대를 압박해 개성관광의 최대 암초인 관광자금 문제에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기겠다는 속셈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개성 당일관광에 1인당 150달러를 요구하고 있고 현대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화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은 이같은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의 '150달러안'을 관철시키거나 금강산관광 시작 때와 같이 초기에 '뭉칫돈'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최후통첩'은 사태해결의 신호탄
▲ 개성공단에서 기념식수를 하고 있는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왼쪽)과 이재정 장관(가운데). 과거 북한에 의해 '야심가'로 지목됐던 윤 사장은 한때 방북 허가를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윤 사장이 현재는 북한 방문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또다시 '야심가'를 들고 나온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현대와 사업을 하겠다는 복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김윤규 전 현대 부회장과의 '마지막 의리'를 지키는 동시에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들어가기 위한 '이중플레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는 아태평화위 대변인이 "선임자들(故 정몽헌 회장, 김윤규 전 부회장)이 우리와 맺은 오랜 믿음과 우의"를 강조하는 한편 '절대 안 한다'는 직설법 대신 "현대와는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라는 간접화법을 사용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측은 (…) 여러 차례에 걸쳐 깊이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재발 방지를 담보했다"며 2005년 현대의 '김윤규 축출 사태' 수습 노력을 인정한 점, '개성관광은 현대와 한다'는 보도에만 한정해 "모략행위"로 지목하고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며 재발 방지를 담보해야 할 것"이라고 시정(是正)의 범위를 축소시킨 점도 그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북한의 과거 행태 역시 이같은 분석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북한은 김윤규 부회장 퇴출에 대한 반발로 2005년 9월 1일부터 금강산관광객을 하루 600명으로 줄이는 조치를 취했고 10월 20일에는 "현대와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당시 '최후통첩'을 날린 것 같았던 북한은 현대가 최용묵 경영전략팀 사장을 사퇴시키는 제스처를 취하자 한 달도 안 된 11월 18일 금강산관광을 정상화시켰다. '선전포고'에 필적하는 강한 표현은 기실 사태를 푸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변곡점이기도 했던 셈이다.

우리 정부 태도 엿보기 다목적 포석도

개성관광에 대한 북한 내부의 의견이 아직 조율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는 지난달 개성관광을 현대와 하겠다는 전언을 남측 당국자에게 했던 인사가 현대의 파트너인 아태평화위 소속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으로, 현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세력과 김윤규 부회장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여기는 세력 간의 입장차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남한 당국의 개입까지 거론하며 '사죄와 재발방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볼 때 최근 북한이 내비치고 있는 남북관계 복원 의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떠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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