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조선족과 45만 한국인의 무한한 저력"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0/05] <중국 속에 일떠서는 한민족> 펴낸 차한필 기자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한중 수교의 여파로 현재 중국에는 하루 만여 명의 한국인이 방문하고 있으며, 그곳에 정착한 한국인도 4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중국에 정착한 45만 한국인들과 중국에서 나고 자란 2백만 중국 동포들 사이에서는 서로 협조와 갈등을 반복하며, 중국 속의 한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중국 내 동포사회의 변화와 현주소를 진단한 책 <중국 속에 일떠서는 한민족> 을 펴낸 한겨레신문 차한필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중국 흑룡강 신문에서 2년여 동안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최남단 하이난에서 최북단인 흑룡강까지 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나섰던 차한필 기자....

그가 만난 동포들은 어떤 변화상을 보이고 있는가? 동포들간에 겪는 갈등은 무엇이고, 이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는 왜 한민족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는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한겨레 신문 차한필 기잡니다. 차한필 기자는 1958년 대구 출생으로 대구 계성고와 경북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4년 노동부 산하 직업 훈련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천대학 강사, 숭의여대 강사 및 겸임교수를 지내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책 이름이 <중국 속에 일떠서는 한민족>인데, '일떠서는'이라는 말이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 같은데 어떤 뜻입니까?

차한필 : '일떠서는'이 생소한 단어긴 합니다만, 순 우리말입니다. '기운차게 일어서다'라는 사전적인 뜻을 갖고 있는데요, 이 순우리말은 중국 동포들도 많이 쓰고 북한에서도 많이 씁니다. 북한에서는 이 단어를 건물들이 막 들어서는 것을 '일떠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나 중국 동포, 북한 동포 모두가 쓰는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이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십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차한필 :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우리 동포들이 중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지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부는 자기들이 한국 정부나 중국 정부 어디서도 챙겨주지 않아서 스스로를 끈 떨어진 연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까 하는 고민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동포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것을 제대로 알리고, 또 앞으로 이들이 민족에 대한 비전을 갖고 나가야겠다 싶어서 제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기획을 해서 취재를 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중국 내 상당한 지역을 현장취재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를 주로 방문하신 겁니까?

차한필 : 계획은 한 2005년 1월부터 세웠습니다. 2005년 8월 말에 실제로 출발했는데, 최남단인 하이난 성부터 해서 각 지역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서, 직접 적어도 3박 4일 취재하고 돌아와서 정리하고 다시 취재를 나가고. 본거지는 하얼빈으로 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한 6개월에 걸쳐서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 말 정도에 취재를 마치고 일단 들어왔고, 그 이후에도 필요할 때는 현장에 가서 왔다갔다 하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박인규 : 주로 방문하신 곳이 하이난성부터 시작해서..

차한필 : 하이난에서 시작해서 광둥성, 선전, 광저우 지역과 상하이, 쑤저우... 그리고 산둥으로 넘어와서는 칭다오, 웨하이, 옌타이 지역이고, 그 이후에 베이징과 톈진. 요동으로 와서는 심양지역과 대련, 단동.. 그 외에 또 우리 동포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들. 길림쪽으로 들어오면 장춘, 길림. 그 다음에 집안, 퉁화 쪽. 그리고 연변 쪽으로 와서는 연길시 뿐 아니라 영정, 화룡..

박인규 : 주로 경제적으로 아주 역동적인 변화를 보이는 곳을 방문하신 것 같은데, 저희가 조선족 출신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선족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신 분을 모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연변이 원래 중국 조선족들의 본거지인데 거기 계신 분들이 지금 말씀하신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변화를 보이는 곳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던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차한필 : 사실입니다. 현재 동북3성이 동포들의 본거지죠. 본거지인 동북3성, 특히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데 여기 있는 많은 경제활동 인구들이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잘 좀 더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들이 굉장히 강하죠. 우리 옛날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농촌에 있던 젊은이들이 서울이나 대도시로 무작정 상경했고 고생하면서 정착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 같아요.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실제로 베이징이나 상하이 대도시 뿐 아니라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서 공장을 차리고 기업을 운영하는 선전이나 광저우, 쑤저우나 아니면 산둥지역 칭다오, 웨하이, 옌타이 이런 곳으로 굉장히 많이 가 있습니다.

박인규 : 연변 지역에서 노동력을 가진... 일을 할 수 있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나갔다는 분석이 있던데 맞습니까?

차한필 : 맞을 겁니다. 우리 동포를 2백만 인구라고 보면 실제 노동력을 가진 인구는 약 120만 명 정도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중국 해안지방 대도시 쪽으로 나간 사람들이 약 40만 명 넘는 것 같고, 그 중에 한 20여만 명이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한국에도 현재 약 13만 명 이상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20만 명 넘게 나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60만 명 이상 유출된 것으로 보면 절반 이상이 나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중국 내로 보면 조선족이나 거기 정착한 한국인들이나 어느 지역에 가장 많은가요?

차한필 : 초기에는 남부지방인 광동지방으로 많이 갔죠. 개혁개방의 1번지가 선전이라 그쪽으로 기업들이 몰려가면서 많이 갔지만 한중수교가 되고 난 뒤부터는 산둥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산둥 쪽에 들어가면 우리 동포들이 굉장히 많아서 거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인데요, 한국 동포들과 중국 동포들이 함께 어울려서 현재로서는 최대를 이루고 있죠. 약 12만 명 정도..

박인규 : 지금 동북3성에 있던 조선족들이 경제적 기회를 잡기 위해서 화동 지역이나 북경으로 떠나고 있는가 하면, 우리 한국에서도 중국에 가서 뭔가 해보자 해서 가신 분들이 45만 명이라고 들었어요.

차한필 : 약 45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현재는 더 넘었을 겁니다. 약 50만 명이 넘은 걸로 알고 있고. 맨 처음에는 기업들이 진출했지만 그 뿐 아니라 유학생들.. 우리가 특히 IMF를 당한 이후에 일반 중소기업들이 노동력 문제 때문에 중국으로 많이 건너갔습니다. 건너가고 난 뒤에 아예 이주하다시피, 그곳에서 살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박인규 : 살러 가는 건 한국보다 물가가 싸니까 차라리 그쪽에서 사는 게 부담이 적다는 차원인가요?

차한필 : 그런 경우도 있죠. 한국은 물가가 워낙 비싸고 살기가 힘드니까 중국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뭔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가서 작은 자영업이라도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서 가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생계형 이주도 상당수입니다. 그래서 현재 대도시 수준으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동산 관련해서 투자에 관심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구요.

박인규 : 차기자의 주안점 중 하나는 중국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들과 현지에서 가신 한국에서 가신 한국인들과의 상호작용. 협조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고.. 그런 것에 상당히 주목하신 것 같은데 어떤 양상을 보이던가요?

차한필 :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중국에 가면 동포가 참 반갑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말도 하고 우리 얘기를 들어줄 수 있어서, 아무래도 중국사람들이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 말이 생소하니까 동포를 만나면 그렇게 반갑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포에 대한 동정하는 마음이랄까요? 고생했다.. 독립군의 후예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어서 일단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하는데, 지내다 보면, 서로 한 40여 년 이상 떨어져 있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민주화 과정을 거쳤고 그쪽은 사회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곳이고. 그러다 보니 같은 민족이지만 생각하는 방향이나 실제로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만큼 모든 게 서로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극복하지 않으면 자칫 갈등의 소지가 생기죠.

박인규 : 문화적 차이가 있으니까 서로 실망하는 거군요.

차한필 : 그렇죠. 서로 실망합니다.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좀 더 왜 우리 식으로 따라하지 못하느냐. 중국 동포 입장에서는 왜 자기들 방식만 고집하느냐. 여기는 중국인데..

박인규 : 말하자면 돈 좀 있다고 재는 거냐...

차한필 : 같은 동포인데 왜 함부로 하고 무시하느냐. 이런 식의 접근이 가능하죠. 그렇더라도 그 문제를 서로 잘 풀어나가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갈등의 소지가 돼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 심각한 상황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실제로 한국과 중국 동포들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존재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 부분이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좀 많이 풀리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많이 풀고 친하게 지내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아직까지 그런 것들을 풀어내려는 노력들이 부족합니다.

박인규 :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이 많은 데가 화동지역, 북경 주변, 산둥성을 말씀하셨는데 그 지역마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차한필 : 많이 다릅니다. 지금 현재 광동지역인 선전이나 광저우 지역은 우리 기업들이 주로 가공무역을 중심으로 합니다. 그곳에서 기업을 운영해서 전 세계에 수출하죠. 그리고 그쪽에는 일반 노동집약형 기업 뿐 아니라 이제는 선진기업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술집약형 기업들. 그리고 생활수준도 상당히 높고 환경이 우리 못지 않게 상당히 발달된 곳입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곳이죠. 그리고 상해만 해도 우리 동포사회가 이제 완전히 자리잡았고. 룽바이 코리아타운이라고 해서 완전히 동포사회가 자리잡아서 구성돼 있고. 또 쑤저우 지역은 우리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박인규 : 쑤저우라는 곳은 항주 소주 할 때 소주입니까?

차한필 : 소주입니다. 이곳이 관광지였는데 워낙 지리적 위치가 좋다 보니 공업도시로 탈바꿈해서 완전히 성공했죠. 산둥 쪽은 아무래도 노동집약형 한계기업들이 많이 가서 초창기에 많이 성공했습니다. 많은 우리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고 동포들이 가장 많은 곳이고. 북경이나 천진 중심으로는 주로 우리 기업의 상사나 주재원 중심으로 자리 잡았죠. 대기업이나 관료들이 많이 가서 자리잡고, 그러면서 유학생들이 많이 왔고. 또 생활하려고 하는 이주민들도 늘어났고. 북경 쪽은 현재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경 쪽의 왕징 코리아타운은 완전히 한국구정도로 보면 됩니다. 성장속도도 빠르고 굉장히 활기 넘치죠. 특히 부동산 관련해서... 한국사람은 부동산은 빠지지 않는 것 같은데 부동산 투기 조짐이 있어서 중국 정부에서 투기를 잡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왕징의 부동산은 잡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사실 동북3성 지역이 4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였고, 지금은 노후했지만. 최근에 보면 중국에서 옛날의 공업지대인 동북3성을 활성화 시키겠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동북3성에 있는 조선족들도 도움을 받을 것 같은데 그쪽은 개발이 어느 정도 됐습니까?

차한필 :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실제로 가장 관심을 쏟은 부분이 선전 중심으로 한 광동과 상하이 지역이고, 실제로 그쪽 지역은 상당히 발전돼 있는 반면에.. 중국이 빈부격차가 큰 게 가장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도 이걸 알고 이쪽에서 성장한 경제력을 중국 전역에 퍼지게 하기 위해서 서부 대개발과 동북노후공업기지개발이라는 두 가지 정책을 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중국 전역을 균형개발하겠다는 속셈인데, 실제로 동북지역은 중화학공업이 발달했습니다. 예전에는 가장 잘 살았던 곳이죠, 그런데 그 자존심이 지금 무참히 무너졌단 말이죠. 중국을 남방과 북방으로 구분해 보면 둘은 별개의 나라라고 얘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기질이나 이런 것들이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현재 남방은 잘 사는 반면 북방은 잘 못 사니까 북방 사람들이 자존심에 상당히 상처를 받아서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생각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래서 동북노후공업기지개발 부분에 대한 정책을 적극수용해서 한국투자를 굉장히 유치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죠. 그걸 통해서 자기네 옛 영화를 재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만약 그게 성과를 나타낸다면 실제로 동북도 상당히 많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그곳은 지하자원도 많고 기후조건도 좋고, 식량이나 곡식들이 특히 많습니다.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봅니다.

박인규 : <중국 속에 일떠서는 한민족>이라는 책에서 중국 속의 조선족과 한국에서 건너간 동포들 간의 공동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까?

차한필 : 저는 거기서 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한국 동포와 중국 동포가 결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또 현재 갈등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발전시킬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요즘 동북공정을 상당히 많이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외교 뿐 아니고.. 지금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좋은 관계지만 항상 좋으란 법도 없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되는데 외교력에도 한계가 있고, 특히 중국이 전 세계에서 대국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중국 속에 있는 동포들 사회가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서 탄탄하게 자리잡게 되면 자동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바들을 얻을 수 있게 되죠. 미국을 예로 들면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꼭 우리가 중국정부를 좌지우지할 단계는 아니겠지만 우리 동포들이 흩어져서 갈등하는 것보다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이건 굉장히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저는 이 공동체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갈등의 원인이 큰 만큼 공동체의 필요성도 큽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그 희망을 봅니다.

박인규 : 한민족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를 질문하기에 앞서서 개인적인 질문도 좀 해보겠습니다. 신문사 계시면서 2년 동안이나 밖에 나가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어떻게 해서 흑룡강 신문 논설위원으로 가시게 됐습니까?

차한필 : 제가 중국에 관심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다니고 출장도 다녔지만, 제가 2004년 2월에 한국기자협회 추천으로 연변과학기술대학에 연수를 가게 됐습니다. 1년간 연수를 하면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쳤죠. 그러고 나니까 1년으로는 부족한 생각이 들고 좀 더 중국을 알고 싶던 차에 흑룡강신문 쪽에서 우리 동포 언론인이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요청을 해서 제가 좀 고민을 했습니다. 제 욕심도 많이 있는데 거기 있다 보면 제 욕심을 좀 못 채울 것 같아서. 그런데 동포 언론의 어려움을 그곳에 가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겨레 맨 처음 창간할 때의 심정으로.. 이곳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그곳에 가서 그들과 같이 한 1년간 지내게 됐죠.

박인규 : 중국이 아직 소득수준이 우리보다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득 차원에서는 손해를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월급 같은 건 제대로 받으셨습니까?

차한필 : 그런 건 없죠. 제가 연변에 있다가 하얼빈에 갔기 때문에 거기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 줬지만, 어차피 연수를 가서 소득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박인규 : 연수 가셨다는 연변과학기술대학이 우리 동포가 만든 대학 아닙니까?

차한필 : 그렇죠. 그 대학도 우리가 얘기할 게 상당히 많습니다.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중국 내 최초로 외국인이 세운 대학입니다. 세운 지가 벌써 14년이 지났으니까... 1992년 정도에, 우리와 수교 전에 개교를 했습니다. 그 이전에 대학을 세우는 작업은 벌써 5년 전부터 시작됐고, 이걸 직접 추진한 사람이 김진경 총장입니다. 이 분은 재미동포인데, 그곳에다가 대학을 만들 수 있게 된 배경은 개인적으로 그런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준비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서 좀 적었습니다만, 실제로 열정을 갖고 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들을 해내서 결국은 그곳에 대학이 섰고, 14년 역사 동안 우리 동포의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 동포들이 그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생들이 배출되면 중국 전역에서 그 학생들을 모셔갑니다. 그만큼 인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포들의 중국 전역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앞으로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는 재목들을 길러내는..

박인규 : 대학의 교육수준이 상당히 상위로 평가받고 있는 모양이군요?

차한필 : 그렇죠. 초창기에 외국 교수님들이 상당히 많이 왔습니다. 11개 나라의 교수님들이 전부 자원해서 와서 학생들과 함께 직접 먹고 자면서 가르치고 더불어 생활했기 때문에 교육수준도 상당히 높고, 교육의 질이 담보가 되니까 중국 각지의 기업체에서 먼저 졸업생들을 찾아와서 데려갈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박인규 : 흑룡강 신문이 하얼빈이란 도시에 있는 걸로 압니다. 상당히 추운 곳 아닙니까?

차한필 : 하얼빈은 상당히 춥습니다. 하얼빈 하면 안중근 의사와 함께,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빙등축제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얼음축제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한 시간을 못 견딥니다. 너무 추워서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갈 정도로 춥습니다. 제가 연변에서 참 춥게 지냈는데 그곳이 보통 영하 20도 전후거든요. 그런데 하얼빈에 가니까 더 추운 영하 30도 전후입니다. 너무너무 추웠죠.

박인규 : 길림성 연길시에서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1년 공부하셨고 하얼빈 흑룡강 신문에서 1년간 일하시면서 그 중에 6개월 동안은 여러 도시들을 쭉 다니셨어요. 그러다 보면 중국 내를 많이 보신 거고, 중국 내 조선족이나 한국 동포들의 삶을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조선족 또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은 어느 정도입니까? 좋은 쪽인가요?

차한필 : 사실 조선족 동포 입장에서는 한중수교가 되고 한국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위치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봐야죠. 예전에는 중국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약간 위축적인 상황이 없지 않아 있었다고 봐야 됩니다. 물론 소수민족으로서 대접은 충분히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도 있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한국 동포들이 들어오면서 중국사람들이 한국 동포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죠. 아무래도 경제력 있고 자신만만하고 민주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보니까, 그래서 한국사람들을 인정하면서.. 또 한국기업에서 조선족 동포들을 고용해서 중국인 관리를 맡는 관리부장 역할을 많이 하고, 실제로 중간 관리층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중국 동포의 위상도 덩달아 많이 올라갔다고 봐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동포들이 중국에서 현재로서는.. 우리가 처신만 제대로 한다면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국내에도 조선족 분들이 한 10만 명 이상 들어와 계시긴 하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 좀 섭섭한 느낌도 꽤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차한필 : 꽤가 아니라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실 그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중국 동포에 대해서 동포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인 동포정책 보다는 외국인 근로자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많이 했어요. 동포라고 말해 놓고 실제 접근은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오서 근로 시키는 정도로 정책을 폈기 때문에 실제로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동포라고 말을 하지 말지 왜 동포라면서 그만한 대접을 안 해주느냐라는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그걸 알고 어떻게 하면 이 부분을 풀어나갈까 해서 재외동포법이라든지 자유방문취업제 등 여러 가지 제도를 이제는 많이 변화해서 마련하고 있죠. 그래서 그런 제도가 좀 더 제대로 정착되고 시행된다면 중국 동포들이 느끼는 생각도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박인규 : 중국 속의 한민족 공동체를 제대로 형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우리 동포들이 노력할 부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 중국 속 한민족 공동체를 촉진하기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차한필 : 많습니다. 특히 현재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을 살펴보면 한국 동포들은 어느 정도 조직이 형성돼 있습니다. 한국인회, 한국상회 개념으로 단체가 만들어진 반면에 조선족 동포들은 단체를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소수민족 단체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단체 등록도 어렵고, 그래서 끼리끼리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이런 모임들을 우리 한국동포들이 포용을 해야 됩니다. 한국 동포 단체에서 그런 동포모임을 자꾸...

박인규 : 예를 들면 한국 동포들이 만든 단체에서 조선족들을 가입을 안 시키는 건가요?

차한필 : 그렇죠. 완전히 따로죠. 그래서 단체 가입은 안 돼도 행사를 같이 한다든지, 같이 참여하고 더불어 지낼 수 있는 모임들을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것들이 교육이나 문화적 활동이나 체육활동입니다. 특히 우리 동포들은 축구에 대해서 다 같이 취미가 있지 않습니까? 중국 동포도 축구에 대해서는 한국동포 이상으로 관심이 많거든요. 그곳 동포응원단을 붉은악마라고까지 표현하는데요, 그 정도로 축구나 각종 행사, 문화적인 행사, 체육행사나.. 또 교육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동북3성쪽은 교육문제가 상당히 잘 이뤄지고 있는 반면 나가 있는 동포들은 한국말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민족교육이나 우리말 교육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죠. 한국 동포도 사실 어렵긴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교육부분이나 문화적인 활동, 체육대회 등을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정부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 기회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한민족 공동체를 이뤄 나갈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거죠. 그런 노력들을 현재 개개별로는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동포들이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로 잘 안 되고 있는 모양이죠?

차한필 : 거의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내일이 추석인데 2년 동안 계셨으니까.. 조선족들과 한국인의 추석은 다른가요?

차한필 : 제가 중국에서 상당히 당혹스러웠던 것 중 하나인데, 우리에겐 추석이 최대의 명절 아닙니까? 추석에도 중국에서는 일을 합니다. 중국은 추석을 쇠지 않습니다. 추석이 있어서 그 사람들도 월병이라고 해서 달과자를 만들어 먹습니다. 둥근 과자를 만들어 먹고 선물도 하고 지내긴 하는데, 그 날 명절을 쇠기 위한 행사를 벌인다거나.. 일을 하니까 그런 게 마련돼 있지 않죠. 그 대신 국경절이라고 해서 중국을 건립한 날 10월 1일을 기념해서 일주일을 쇱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포들도 중국과 같이 돼서 그냥 월병이나 먹고 말지 추석을 쇨 만한 여건이 안 되다 보니 특별히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면 추석을 쇠지 않습니다. 선물도 월병을 주지 송편을 만들어 먹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상당히 당혹스러웠는데, 한국 동포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송편을 빚어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우리 민속학자를 만나서 얘길 들어왔습니다. 민속학자 천수산씨가 얘기하기를,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 이런 부분들이.. 실제로 우리 동포들은 예전에는 단오나 추석을 상당히 많이 쇠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민족분자의 숙청이나 문화대혁명 시기를 겪으면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런 민족명절들이 없어졌던 것들이 되살아나야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동포들이 마음은 있어도 되살리는 작업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동포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명절문화도 바뀌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민족의 정체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확보되고 명절이 좀 더 운치있게 우리 같은 모습으로 바뀔 겁니다.

박인규 : 차한필 기자는 책을 통해서 중국 속의 한민족 공동체를 제대로 건설하는 게 중요하다는 문제제기를 하셨는데, 문제제기를 하신 만큼 책임을 지셔야 될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차한필 : 어차피 제가 언론인인 상황에서는 언론적인 접근을 좀 하는 게 편리할 것 같습니다. 동포 언론도 있고 중국에서 우리 언론에 관심있는 한국 분들이 자체 소식지를 만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중국이 아직 사회주의 나라고 모든 언론이 당 기관지 성격이 강하니까. 그렇게 본다면 그 곳에서 우리 동포의 모든 문제를 다 풀어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죠. 그래서 그런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 그런 공간을 좀 확보하는 게 중요할 것 같고. 요즘은 인터넷도 잘 돼있기 때문에 많은 동포들이 언론적인 부분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좀 마련되는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고. 그와 함께 실질적으로 각 지역에서 동포 단체들이나 모임들이 좀 활발하게 건설돼서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가 이뤄져야 되지 않겠나.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육이나 문화, 체육활동 같은 것들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지역마다 센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관심을 쏟을 계획입니다.

박인규 : 앞으로 중국 속의 한민족 공동체를 만드는 데 중대한 촉매제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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