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이데올로기'에 눌린 북한 女權

사회ㆍ문화편 <9> 북한 여성의 정체성

남한에서 바라보는 북한 여성은 <남남북녀>, 미녀응원단, 최근 CF의 조명애에 이르기까지 주로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북한의 여성을 이러한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통일시대'를 준비해가는 이 시점에서 북한 여성의 진정한 모습을 그려봄이 어떠할까?

1990년대 불어닥친 식량문제와 북한주민들의 탈북, 장사와 외화벌이 등을 통한 북한주민들의 적극적인 삶의 영위,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 등 북한사회의 일련의 변화는 여성들의 삶과 의식에도 급격한 영향을 주고 있다. 가정과 사회에서 이중역할을 담당해 온 북한여성들이 경제주체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최근의 삶은 대단히 고되고 어려웠지만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혹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생활해 온 그녀들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퍼우먼'을 요구하는 사회

북한에서는 '여성의 노동참여를 통해 남녀평등을 실현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위로부터 체계적인 제도개혁이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공적 영역에서 남녀의 평등을 제도화하였고, 유급출산휴가, 수유시간 보장과 유치원·탁아소 증설로 여성의 사회적 동원에 필요한 육아의 사회화를 보장하였으며,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각종 시설이 마련되었다.
▲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는 평양 시내의 서평양여객역. ⓒ연합뉴스

그리하여 북한 여성 대부분은 혼인상태와 관계없이 대부분 직장여성이 되었다. 20대 이상의 여성 거의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노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설령 생산에 망라되지 않은 가두여성일지라도 여맹에 가입하여 의무적으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여성들이 생산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일을 '사회적 노동'으로 받아들이고 노동에 자부심을 느끼고 남성과 대등하게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과함으로써 여성의 이중노동부담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남성 못지않은 사회적 노동을 담당했지만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주부와 아내, 어머니로서의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즉 부부가 함께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성별분업에 의한 여성의 종속적 위치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성별 직종분리와 임금격차 등의 노동실태에서도 드러나듯이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양성평등과 여성해방 이념은 정치적 수사에 그칠 뿐 북한여성들은 실제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중시하는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았다.

『조선녀성』에서도 한 가정의 어머니·아내·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 역할을 헌신적으로 해내는 여성을 모범적인 여성으로 부각시켜 나갔다. 특히 가정의 혁명화를 외치며,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의 이중부담 속에서도 오직 헌신적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키운 '강반석·김정숙 어머니'를 본받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열심히 직장 일을 하면서도 가정의 일까지 잘 돌보는 수퍼우먼 여성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북한여성들은 자신보다는 남편과 자식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여자란 남편을 잘 섬겨야 하고, 80~90% 여자의 노력이 들어야 남편이 출세할 수 있으며, 자식들이 잘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부터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식에게 위신이 서는 엄마란 집에서뿐 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열심히 일하는 엄마였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사회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도 가사와 육아의 일차적인 책임자로서 이중부담 속에 생활했다. 그러나 북한여성들의 사회경제활동은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생계유지 차원에서 행해졌으며, 그것이 가계생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업이든 부업이든 보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이 북한여성의 삶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물론 여성 개인이 지닌 자질과 능력, 학력, 직업도 그들의 삶에 주요한 요인이 되지만,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남편 잘 만나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어머니로서의 정체성만을 요구하는 사회구조에서 여성은 곧 어머니·모성으로만 자리매김될 뿐 인격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자아실현은 무시되고 있다. 가부장제 하에서 실제로 사회적 일꾼으로서의 여성은 모성으로 인한 부담의 면제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부담의 가중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사회활동과 가정생활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수퍼우먼 이데올로기'는 결과적으로 직장일과 가정일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변화하는 북한여성

경제난 이후 중앙공급체계가 마비, 중단되면서 북한 여성들은 가계생계의 주된 담당자가 되었다. 공장, 기업소들이 가동을 멈추고 배급이 비정상적으로 지급 혹은 중지됐어도 여전히 작업장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대신해 비교적 이동이 용이한 여성이 생계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여성들은 대부분 그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 관계없이 자신의 본래 직업에서 벗어나 누구나 크고 작은 장사에 나서고 있다. 이 경우에 세대주인 남편의 직장생활 영위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기꺼이 포기하였다. 이는 여성이 이전부터 부업의 형식으로 가내작업반을 통해 소규모의 가내수공업과 장사 등을 하고 있었다는 점도 작용할 수 있으나, "뭐를 팔던지 여자들이 팔지 남자들은 못 판다.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장사하는 것을 제일 수치로 여긴다"는 탈북여성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교 전통의 잔존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면서 북한 여성들 사이에 여성의 권익을 찾고 자식이나 남편으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삶을 누리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장사를 통해 집안의 경제권을 잡은 아내들의 목소리가 가정 내에서 점차 커지고, 남편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도 많아졌다. 시집을 가도 힘들고, 남자 하나 벌어 먹일 것이면 시집 가서 괜히 힘들 것 없다고 생각하여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여자들이 장사해서 남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남자들이 술주정도 하고 못살게 하니까 이혼하는 비율도 많았다. 별거와 가출 등 사실 이혼이 많이 발생하고 있고, 여성들의 이혼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화했다. 남자와 결혼하면 한 두해 사는 것도 아닌데, 일단 못살 사람이라 생각되면 미련을 갖지 말고 빨리 이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러한 현상은 '장마당'이나 외화벌이를 통해 어느 정도 재정 능력을 갖추게 된 '장사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 전반에 조금씩 퍼져가고 있다.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능력없는 남성과 결혼해서 고생하느니 경제력만 있으면 혼자 살겠다는 풍조가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최근에 북한에서 발표되는 문예물에서도 과거 금기시되던 부부갈등과 이혼, 혼전관계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조선여성'과 '천리마' 등에서도 "부부간의 관계는 혁명동지들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혁명동지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며 미혼여성들은 순결한 몸과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남편이 자신의 일만 일이라고 여기거나 집안일은 여성만이 하는 일로 여겨 무관심하면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가는 부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남편들이 아내를 부를 때 반말과 명령조로 말하는 것은 물론,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여자들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여자들이 밖에서 힘들여 벌어온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고 구타까지 일삼는 일을 당연시 해 왔다. 여성들 자신도 이중부담에 대해 여성이 해야 할 당연한 일로 여겼으며, 설사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어쩔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성들이 생계담당자가 되면서 예전처럼 남자들 말에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남자들도 이전과 달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하고, 여자를 많이 도와주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처음에는 남자들이 석탄을 갈아주거나 불을 때주고 가마를 씻어주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겼는데, 90년대 이후에는 부부가 같이 움직여야 산다는 것을 많이 깨우쳤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사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성이데올로기의 강화

북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부장제의 균열은 단순히 가족 내 역할 바꾸기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성별 분업구조에 대한 인식까지도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가부장제 질서의 와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정치 사회적으로 완전히 남녀평등을 실현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에서 가부장제는 생각보다 훨씬 공고하며, 남존여비 사상을 바탕으로 한 봉건시대의 남성 권위주의가 가정과 사회에 아직도 폭넓게 잔존하고 있다.

그리하여 1990년대 경제난 이후 북한여성들에게 나타난 삶과 의식의 변화도 가부장제적 요소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였다. 여성들이 생계책임자가 되면서 엄격한 성별분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렸지만 가사와 육아를 비롯한 가정의 화목이 여성에게 달려 있다는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으로서의 남편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부 여성들은 경제주체로서 역할을 하면서도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 북한의 초기 엘리트 여성들인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1기 출신 여성 간부들의 모습. 좌측부터 신영애(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 첫 여성 부총리였던 김복신(내각 명예참사), 첫 여성 재정상이었던 윤기정(이 대학 명예교수). ⓒ연합뉴스

경제난 이후 여성이 생계전선에 나서면서도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 의해 그들의 삶이 좌우되는 현상이 크게 변화되지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안전부나 보위부, 군인, 당일군 등에게는 공식 공급체계가 마비된 이후에도 식량이 배급됐기 때문에 이런 직위의 남편을 둔 여성들은 경제난 이전과 이후의 삶이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경제난 이후 북한에서 이윤창출이 높은 직업 중 하나로 각광받는 외화벌이를 하는 남편을 둔 여성들도 생계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부양으로 있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경우 남편의 직업과 지위도 여성의 직업에 상응하는 전문직이거나 고위직에 속했다. 이들 여성들은 식량배급이 어려운 시기에도 계속 그 직장을 다닌 경우가 대부분이나, 경제난이 심화되면서부터 비교적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장사와 외화벌이 등으로 전업을 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전업에는 대부분 남편의 지위가 이용됐다.

반면에 일반노동자를 남편으로 둔 여성들은 대부분 정규직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에서 운영하는 가내작업반을 통한 수공품 제조 혹은 농사를 통해 생계를 보조해 왔으며, 배급이 끊긴 이후에는 장사 등에 나섰으나 겨우 식량을 마련하는 정도였다.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여성 자신이 처한 여건과 능력을 이용하여 유리한 조건에서 장사 등을 하여 수입을 올리는 여성들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가족의 생존과 생계가 불안할 때, 가족 내의 성별분업은 문제시 되기 힘들다. 경제난 이후 가사에 참여하는 남편이 많아졌지만 보조적인 것에 그치고 있다.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서 여성의 가사노동과 어머니로서의 역할 수행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음 탈북여성의 말 속에서 그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는 새끼에 대한 애착이다. 남자는 돈벌러 흘러 나가면 다인데, 여자는 새끼 때문에 뜨지 못한다. 그러니까 한끼 벌이해서 들어와 제 집을 움직인다."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무조건 남자한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잘 될라면 여자가 남자를 잘 가꿔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여자 뒤에 남자가 있지, 여자 앞에 남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남자 앞에 여자가 있어서 여자가 이끌어줘야 그 남자가 잘 된다'는 식으로 많이 이야기한다. 남자가 별난 천재라 해도 여자가 잘 가꿔주지 않고 생활이 안착되지 않으면 바깥에 나가 생활 못한다."

이것이 북한여성의 현재의 모습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성별분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지만, 가사와 자녀양육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국가적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깥영역에 대한 여성의 도전에 더해 가정영역을 맡김으로써 남성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가부장제적 모성이데올로기를 통해 북한에서는 여성으로 하여금 이중의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여성에게 안주인의 권리와 지위를 제공하는 특권으로 그려지는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주관적 정체성에서 그 핵심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제도적 모성이 실상은 남성의 지배질서를 뒷받침해주고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한여성의 자아실현

북한 사회는 개인, 개체 중심으로 인식되기보다는 가정, 사회, 조국 등의 집단형태가 중심축으로 놓여 있는 사회다. 개인의 발견과 실현이 여성해방의 중요한 철학적 전제임을 감안하면 북한사회의 이러한 현실은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요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여성들은 오랜 시기 가부장제적 권위주의 정치체제 속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삶과 의식의 마비로 획기적인 자각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성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처한 이중의 부담을 버거워하고 있으면서도 한결같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체념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에는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도 국가로부터 요구되는 사회노동과 전통적인 성 역할 병행으로 과중한 역할 부담 속에 생활하고 있다. 사회노동과 가사노동의 성공적인 역할병행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권하는 북한 여성정책의 기조는 경제난 이후 최근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모색되고 있는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더구나 과거에는 이중적 부담 하에서도 국가의 책임으로 탁아소를 통해 육아를 담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몸만 힘들었지만, 현재는 육아문제까지 개인 부담으로 되었기 때문에 더욱 여성의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여성들은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경제활동에 대한 능동적인 주체의식이 생겨나고 있고, 경제활동의 목적이 생계 차원에서 보다 나은 삶의 추구로 바뀌고 있다. 북한 여성들은 생계가 보장된다 해도 보다 풍요롭고 질높은 삶을 위해 경제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자각 등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자아실현에는 사회적·가정적 제약이 따른다. 사회적 성차별도 문제이지만 특히 여성의 육아와 가사전담이라는 성역할은 여성의 자아실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남편과 자녀라는 '타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성장과 성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는 '타자지향적인' 존재인 현모양처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고자 하는 북한 여성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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