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장인의 세공력, 거부할 수 없는 게이샤의 유혹

〈오동진 vs 김영진 메신저 토크〉 게이샤의 추억

영화전문기자 오동진과 중견 영화평론가 김영진이 개봉영화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매주 벌이는 사이버 영화논쟁. 이번 주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롭 마셜 감독의 〈게이샤의 추억〉이 도마에 올랐다.
<게이샤의 추억〉은 어떤 영화?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치요라는 이름의 소녀가 게이샤 '사유리(장쯔이)'로 성장, 군국주의 일본의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 사유리를 중심으로 그녀와 게이샤 사회에서 최고의 자리를 다투는 하츠모모(공리)와 사유리를 돕는 마메하(양자경), 또 사유리가 사랑하는 회장(와타나베 켄)과 노부(야쿠쇼 코지)의 부유하는 삶이 얽힌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뮤지컬영화 〈시카고〉로 명성을 얻은 롭 마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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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게이샤의 추억>, 시사회 반응은 대체로 안 좋은 것 같다.
김영진 :일반 관객들이 재미없어 하는 모양이군.
오동진 :아니, 기자들이 더 안 좋아하는 거 아닌가? 난 일반 시사회에서 봤다.
김영진 :전형적인 플롯이지만 볼거리는 확실하다는 식 아니던가?
오동진 :젊은 평론가들 중에서는 너무 심하다는 반응도 있더라. 시사회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2시간 반 동안 몸을 비비 꼬면서 괴로워했다. 난 동의하지 않았지만.
김영진 :원작이 원래 그랬던 것 같은데.
오동진 :아서 고든의 원작 소설이? 음,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김영진 :나는 이 영화에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아서인지 시간은 잘 가더라.
오동진 :사실은 나도 그랬다. 2시간이 어느새 지나가 있더라. 아마 이야기의 초점을 한군데로 모아 잘 밀어붙인 점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가 곁길로 새지 않고 주인공만을 따라가서인 것 같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게이샤의 추억〉 같은 영화는 일본 문화를 모르면 모를수록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관점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없이 수용하면 수용할수록 영화가 재미있어진다는 점이다.
김영진 :난 이 영화에서는 색이 쏟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어느 백화점에 가서 옛 헤이안 시대의 옷감을 쇼핑하는 느낌이랄까? 깊이는 모르겠지만, 지나칠 만큼 화려한 일본의 색들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동진 :하나 더 보태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관능의 느낌도 있다.
김영진 :이런 것들을 겉치레로 볼 것인가 나름의 미의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게이샤의 추억〉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본다.
오동진 :겉치레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김영진 :난 비호감 쪽은 아니다. 모든 게 다 뻔히 보여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뭐냐면 게이샤를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예술가로 접근하는 방식 말이다. 거기에는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나 남성적 시선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 이상의 통찰이 들어있다고 보는 거지.
오동진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를 보면서 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진실을 그리고 있지 않다. 게이샤 하우스를 고증해서 그려낸 것도 아니고, 여성을 지나치게 대상화한 시선(비록 시대적 상황이라 할지라도) 등등 비판해야 할 대목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나도 게이샤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엄청 위험한 발언이군!
김영진 :〈게이샤의 추억〉은 현실이 역겹다는 걸 보여준다. 돈으로 여자의 몸과 마음을 사고 파는 그런 현실 말이다. 그런데, 그건 이 세상의 진짜 현실과 실제로는 같은 거다. 이 영화에서 게이샤의 삶은 그런 현실을 놀랄 만큼 현실적이고 실리적으로 받아들여 그걸 자기네들 식으로 미학화해서 정당화하고 있다. 그 점이 흥미로웠다.
오동진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개다. 엑조티시즘과 노스탤지어. 다시 말하면 복고에 대한 향수.
김영진 :돈으로 몸과 마음을 사고 파는 게 우리가 사는 현실인데, 그게 가장 노골화된 게이샤 사회에서 그걸 나름의 품격으로 치장해 보여주는 모습에서 허영이나 위선이 아닌 처절함이 느껴진다. 삶에 대한 부질 없는 헌신이랄까, 그런 게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오동진 :절대 동의! 그리고 지금 얘기한 것에 한마디 덧붙이면 이런 거 아니겠나. 게이샤가 테크니컬한 차원에서 창녀와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 그 구분이 어려운 것처럼 영화 자체에 대한 시각도 그런 거 아니겠는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보는 관객들은 길거리 오락거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점에서 우리처럼 글을 써서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 생각도 났다. 우리 글쟁이들은 과연 게이샤인가? 창녀인가?,하는 생각. 이 영화는 포괄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김영진 :물론이다. 하지만 술을 한 잔 따르더라도 거기에 격이 있다고 하는 태도에는 무시할 수 없는 어떤 미의식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걸 뭉뚱그려서 비판하기보다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일견 쩨쩨해 보이는 미의식에서 뭔가 건져올릴 수 있는 게 있다고 본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매력이 별로 없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은 한마디로 깨더라고.
게이샤의 추억 ⓒ프레시안무비
오동진 :놀라운 건, 술을 한 잔 따르더라도 거기에는 격이 있다고 말하는 게이샤의 문화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오래 전부터 혹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까지 영화로까지 만들게 된거고. 난 그게 역설적으로 부럽다.
김영진 :〈게이샤의 추억〉은 대단한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물감이 느껴졌다. 특히 장쯔이는 지금까지 출연작 중에서 가장 별로였다. 이런 역은 일본 배우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동진 :동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리 연기는 대단하지 않았어? 물론 대단까지는 아니어도, 세 명의 여배우 중 공리가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맡은 역할 때문이었을까? 재미있는 것은 공리가 장쯔이를 때릴 때, 장이모우 감독을 생각하면서 연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두 여배우 모두 한때 장이모우의 연인이었다. – 편집자)
김영진 :하하하, 그랬을 수도! 하지만 내 생각엔 두 사람 다 장이모우 감독에게서 마음이 떠났을 것 같다. 공리가 가장 탁월한 연기를 보인 데는 동감하지만, 사실 그 역할 자체가 너무 전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동진 :그렇지. 캐릭터들은 비교적 진부하다. 노부 역의 야쿠쇼 코지까지도.
김영진 :맞다. 다 정형화된 캐릭터들이다.
오동진 :어쨌든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진하다. 때문에 다소 퇴행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그 점 때문에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게이샤의 추억〉은 시각적으로 매우 뛰어난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너무 거기에 매달려 오버한 구석도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사유리(장쯔이)가 독무를 춘 다음 게이샤 세계에서 톱으로 올라서는 장면. 그건 그냥 서구의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한 장면 같더라. 내가 너무 게이샤 문화를 몰라서 그런가?
김영진 :나도 그 장면 그냥 그렇다고 생각한다. 서구식으로 통조림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보여주는 세트와 미술의 세공력이 대단했다. 영화 속 어린 치요(나중에 사유리가 된다)가 회장님이 사준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기도를 드리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에서도 배경으로 보여지는 그 색깔들은 정말 대단했다. 화면에 그냥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동진 :그 색감의 비법은 뭘까? 촬영인가, 조명인가?
김영진 :둘 다겠지.
오동진 :연출보다는 촬영 쪽인 것 같다. 연출보다는 다른 프로덕션 라인의 승리라고 본다, 이 영화는.
김영진 :그렇지.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게이샤 문화의 장인정신과 비슷한 게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면서도 거기에 장인의 세공력을 붙이는 것…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하는 게 우리 일이다" 뭐 그 비슷한 대사. 게이샤의 처지를 나타내는 그 대사가 꼭 영화 자체를 가리키는 말 같다.
오동진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를 두 편의 다른 영화 〈홍등을 올려라〉와 〈프리티 베이비〉와 비교했더군. 이 영화가 만약 서구를 배경으로 했다면 아이들이 게이샤의 집으로 보내지는 데 대해 무지하게 비판받았을 거라고도 했고. 사실상 창녀촌에 팔려가는 것으로 보여지니까. 그게 일본이 배경이니까 간신히 용서받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는 거다.
김영진 :재미있는 시각이군.
오동진 :아무튼 국내에서의 반응은 어떨 것 같은가?
김영진 :평범한 수준일 듯.
오동진 :하하하, 안 좋을 것 같다는 말이군. 별점을 준다면 몇 개 줄 것 같나? 다섯 개 만점에.
김영진 : 세 개.
오동진 : 오! 나랑 똑같군. 그럼 오늘은 〈게이샤의 추억〉에 별 세 개 주는 걸로 끝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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