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로버트 김의 정치적 사면을 요청하라"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만이 유일한 해결책

***마침내 조선일보에 모습 드러낸 또다른 희생양**

1996년 9월에 발생한'로버트 김 사건'의 한 당사자인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 백동일 대령(예비역)이 1월 14일자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마침내 국민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로버트 김으로부터 "...저는 백대령님의 고심(苦心)을 역력히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나쁜 뜻에서 마음을 합했다면 천벌을 받아도 싸겠지만, 우리가 그런 뜻으로 교제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우리는 하늘이 맺어준 형제로 알고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화해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로버트 김과 그 가족의 불행에 죄의식을 갖고 살아온 저는 이 편지를 받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뭔가 내 심정을 털어놓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는 사건 당시 39건의 국방기밀을 로버트 김으로부터 건네받아 오다가 로버트 김이 미 연방수사국에 체포되자 한국으로 긴급 소환됐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은 당시 이 사건이 한ㆍ미 양국 간에 외교문제로 비화됐기 때문에 소환되었다며 이 때문에 로버트 김을 곤경에 빠뜨리고 혼자서만 빠져 나왔다는 오명(汚名)을 뒤집어 썼으며 로버트 김이 자신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현역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 아무런 변호도 할 수 없었다고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그는 미군 접촉이 없는 지방근무를 하다가 2001년초 진급을 못하고 대령으로 계급정년을 맞았다.

우리는 그 역시 로버트 김과 똑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라를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정부가 등돌리면 누가 나라를 위해 일하겠는가 라고 생각할 때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은 로버트 김과 자신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사 말미에 로버트 김 편지를 인용하여 로버트 김이 올린 감면(減免)신청에 대해 미 법무부가 심의 중이며 또 펜실바니아 항소법원도 형량에 대해 재심(再審) 착수 움직임이 있다고 다소 희망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만이 유일한 해결책**

필자는 이 인터뷰 기사를 접하고 최근 2년간 지속적으로 로버트 김과 정치적 사면을 통한 조기 석방을 긴밀히 논의하며 함께 고심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해 온 입장에서 보다 자세히 로버트 김이 처한 입장과 그의 견해를 밝힐 필요성을 느낀다.

정확히 말해 로버트 김은 96년 9월24일 미국 와싱턴D.C.에 인근한 버지니아주 알링턴 포트 마이어 장교클럽에서 개최된 국군의 날 기념식장에서 미 연방수사국 FBI에 '국가기밀 누설 간첩죄'로 체포, 기소되어 9년 장기형에 3년간의 보호 감찰 기간을 거치는 사실상 12년의 형을 언도 받았다.

당시 한국정부는 국방기밀 수혜자인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인 백동일 대령을 소환형식으로 철수시켜 버리고 미 국적을 지닌 로버트 김 재판에 관여한다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난다며 시종일관 그를 외면해 버렸다.
우방국인 미국과 한국 사이에 과연 간첩죄가 성립될 수 있는지, 미국이 다른 우방국에 준 정보를 한국에 제공한 것이 무기징역에 해당되는 장기형을 언도할 정도의 엄청난 중죄(重罪)가 되는지 변변히 따져 보지도 못하고...

로버트 김은 2001년 9월 30일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직접 보낸 미 대통령 사면 호소 요청서신에서 자신이 감옥에서는 석방되더라도 자유의 몸이 되지 못하고 가택으로 주거가 제한되는 보호 감찰 기간을 합치면 자신은 67세까지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는 한스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낸 로버트 김의 부친 김상영옹이 5.16 이후 국가재건 최고회의 참여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경제자문을 한 인연이 있는 관계로 그의 장녀인 박근혜 의원에게 보낸 2001년 12월 17일자 서신에서 현재 자신은 미 법무부 사면심사실(Office of Pardon Attorneys)에 형 정지(Commutation)신청을 접수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필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로버트 김과 긴밀하게 정치적 사면을 위한 활로를 함께 모색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로버트 김이 자신의 노력하는 과정을 별도로 알려주었기 때문에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로버트 김은 2002년 말 연하카드를 통해 필자에게도 백대령에게 보낸 내용과 같이 "...그동안 사면국에 제출한 탄원서가 아직도 계류 중에 있으며 내가 혼자 준비해서 항소재판소에 제출한 것이 있는데 그 회답은 근간에 올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믿고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간에 기울여온 로버트 김의 노력과 그 결과에 비춰볼 때 이는 현실적으로 막연한 기대 그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에 보도된, 백동일 대령이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자 하는 감면과 항소 재심은 2001년 9월 1차 항소심에서 여지없이 기각된 전례에 비춰볼 때 난망(難望)하며 로버트 김 역시 당시 본인에게 조지 W.부시 미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는 마지막 기대와 희망을 수차례 본인에게 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그 이후에는 로버트 김의 정치적 사면에 모든 노력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며 김대중 정부가 나서기를 마다하는 현 시점에서는 국회나 로버트 김 자신과 로버트김 석방위원회(위원장은 현재 민주당 이재정의원이 맡고 있음)와 본인을 포함한 로버트 김 석방에 개별적으로 동참하는 인사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한국인,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야**

로버트 김 석방위원회, 친지 지인 등 그의 석방을 위한 각계의 끊임없는 활동, 이 사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라는 국민 여론에 힘입어 2002년 2월 1일 국회의원 46명 연명으로 국회에서 '로버트 김 석방촉구결의안'이 발의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당시 신문지상에는 로버트 김을 구명하는 모습은 커녕 국회 석방촉구결의안에 대한 사실보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조국으로 날라 와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때맞춰 미국시민권을 얻게 되자 국민들에게 약속한 병역의무를 헌신짝같이 저버리고 미국으로 날아간 가수 유승준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와 같이 언론조차도 누가 국민들 눈과 귀에, 그리고 뜨거운 가슴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가운데 로버트 김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져 갔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이 힘을 보태지 않으면 그는 70세 가까운 나이까지 자유의 몸이 되지 못하고 절망과 좌절 속에 지낼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로버트 김이 당시 정보 수혜자였던 백 대령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역시 군인 신분으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희생양(scape goat)에 불과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김은 보다 적극적인 그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백 대령은 군인의 신분이라 그러지 못했다고 자신의 어쩔 수 없었던 한계적 상황을 변명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백동일 대령 역시 불타는 애국심에 일신에 닥쳐올지 모를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헌신했으나, 결국은 보람도 없이 거대조직의 일원으로서 속죄양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이 애국한 자에 대한 냉엄한 현실이다. 이래서야 어찌 애국애족이 이 땅에서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조국에 대한 애국적 행위가 로버트 김만이 아니라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전도유망한 백동일대령마저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 왔다. 1996년초 한국 해군 고위급 장성들이 미국 해군성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고 회담을 가졌을 때 해군성 무관이었던 로버트 김이 과거 한국인이었다는 이유로 통역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교분이 맺어지고 정보 제공과 수혜가 이뤄진 것이 어찌 로버트 김과 백동일 무관 개인에 국한되어 사건 당사자로 규정지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백동일 무관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한 한국정부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정부가 나서서 미국정부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김영삼 정부는 로버트 김 사건이 민감한 외교현안이 되자 비겁하게도 너무나 쉽게 이 사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처리 방식이었다. 미국에 잘못한 일이 있었으면 정부가 나서서 사과하고 양해를 구함으로써 개인의 피해는 최소화시키도록 했어야 했다.

로버트 김은 신실한 신앙인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6년여 세월이 흐른 후 백동일 대령을 용서했으나 그에게는 아직도 조건 없는 헌신을 한 조국이 자신을 '나 몰라라'하며 내팽개치고 등을 돌린 배신감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김의 외로우나 백절불굴의 위대한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벌써 6년 반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사랑하는 가족, 자신의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살아오면서 열악한 환경의 감옥 안에서도 불쌍한 남미계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헌신과 봉사를 그치지 않는 신앙적 삶으로 꿋꿋이 역경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 국민은 아직도 5년 반이라는 가혹한 세월이 그의 자유를 구속하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삼 정부가 저지른 국가적 부채를 김대중 정부가 못 다 해결했다면 이제 노무현 신정부가 나서서 온 국민이 로버트 김에게 진 빚을 대신 갚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고통을 받는 한국인에 대한 국가의 마땅한 의무이다.

이 문제는 친미, 반미로 따질 사안이 아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미국법을 떠나 로버트 김을 석방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법을 존중하며 로버트 김이 미국국적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임을 인정한다.

이 문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국민 여론, 한미동맹 50년․미국이민 1백년의 전통적인 우방국간의 상호 이해와 협조, 아울러 모든 국민이 조국에 대해 갖게 되는 예외 없는 애국심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인류애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양국 간에 해결되어야 할 사안으로 생각한다. 로버트 김의 정치적 사면이 이뤄진다면 최근 북핵,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인한 미묘한 기류를 보이는 한미 양국 간의 관계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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