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후원회원의 글> 이번 대선 대결구도는 '보수 대 진보'

이 글은 프레시안 후원회원인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과)가 보내온 글이다. 장 교수는 현재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편집자

***새 술은 새 부대에**

2002년 대선이 1997년 대선과 달라지게 되는 중요한 조건의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토대에서의 변화이다. 1997년에는 아직 우리 국민들, 특히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적 모순을 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했다. 따라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원론적으로만 동의할 뿐,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오늘의 경제적 상황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적 모순이 심화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상위 재벌을 중심으로 한 독점의 심화, 빈부격차 확대, 비정규직의 급증 등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었다. 또 대외적으로는 주가총액의 36%(거래되는 부분의 60%)를 외국인 자본이 차지하고, 제조업의 10%를 지배할 정도로 국민경제의 대외 종속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생활수준이 후퇴한 다수 노동자·농민 등 민중의 정치의식·계급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의 의식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처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당연한데, 다수 민중들이 생활수준이 절대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관철해줄 진보정당을 강하게 요구하게 마련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 것이다.

정치적으로 1997년 대선 당시에는 한나라당(당시 민자당)과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당(당시 국민회의)간의 정권교체가 핵심 이슈로 등장하고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 민중진영은 <국민승리21>을 조직하여 독자적 후보를 출마시켰지만 당장은 신뢰받는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또 기성정당간의 대결 심화에 따른 사표심리로 인해 지지도보다 낮은 득표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는 구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이 지배계급의 대표정당의 자리를 굳혔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은 과거에는 영남이었지만 지방선거를 거친 지금은 호남을 제외한 전국이다. 민주당의 상대적 개혁성은 크게 후퇴하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정권 유지가 중요하다는 '비판적 지지'의 인식은 약화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둘 다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보수정당이다. 지역적 기반이 다를 뿐이다. 이제 민주당은 호남당, 즉 호남 지배세력의 정당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은 재정도 인력도 빈약하다. 정말로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은 신공안정국 조성?**

여기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새로운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며 전쟁의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신비판적 지지론'을 검토해보자.

유시민씨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반대하면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반대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신)공안정국이 조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극우정당이므로 이견집단의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고 하고, 이회창씨와 그를 둘러싼 권력집단의 구성원들에게 도덕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폭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므로 공안정국 조성이 필연적이라고 한다(유시민, '시사카페를 닫으며'/프레시안 2002. 8. 2).

과연 그러한가. 공안정국이란 경제공황 등을 배경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지배정당이 법을 초월하거나 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정할 정도로 반대파를 억압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당은 극우정당으로서 다른 정당을 해산시킬 것인가.

1991년의 공안정국은 노태우정권이 여소야대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조성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 정권은 야당을 불법화하는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중지시키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은 그 뿌리가 박정희 군사정권,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에 맞닿아 있는 정당으로서 과거에는 파시즘 정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 부르주아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이것을 기조로 삼는다.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신관치금융이라고 비판하고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주장한다. 재벌이 규제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논리이다.

유시민씨의 논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민주 - 반민주' 대립구도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민주 - 반민주'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 대립하는 '보수 - 진보'가 기본구도이고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민주당을 해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재벌을 필두로 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한나라당의 가장 충실히 대변할 체제를 갖추었을 따름이다.

또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새로운 냉전, 즉 남북간에 전쟁의 분위기로 몰고 갈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민주당의 집권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민주당의 햇볕정책은 민주당의 독창적 정책이 아니다. 미국과의 충분한 조율을 거친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북한이 최소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무력공격하여 정권을 타도하려 하면 중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은 중국과 강하게 밀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북한을 무력공격할 경우 미국은 세계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북한이 반미의 구호를 강하게 외치지만 이것은 대체로 국내용이고, 방어적이고, 레토릭의 요소가 강하다. 북한의 회담 대표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한 것을 두고 북한의 진정한 뜻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장법일 뿐으로 극우 언론들만 호들갑을 부린다.

***민주당 집권은 노동자에게 무슨 의미?**

그러면 민주당은 어떠한가. 노무현 후보가 되었든 다른 후보로 교체되든, 민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두 가지는 분명하다.

첫째,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구호로만 내세우고 계속 악용할 것이다. 한총련 대의원 학생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은 계속될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국가보안법 7조의 독소조항을 악용하여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학생들의 선거에 의해 뽑힌 대표자들을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잡아가는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

둘째, 민주당이 집권하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해줄 수 있을까.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노동자 파업에 대해 자본가들이 불법 파업을 핑게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조장해왔고, 손해배상 청구액이 무려 1천억원이 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부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발전회사들은 발전노조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불법 파업을 했다는 핑계로 일반조합원들에게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노동법을 부정하고 민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명백히 위헌적인 행태이다. 이것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민주당정부이다.

이 두 가지 행태는 정부가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로서 국가보안법과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는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정부 각 부처를 책임지고 있는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유시민씨의 주장을 포함하여 신비판적 지지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망령일 따름이다.

결국 2002년 대선의 대결구도는 보수정당 대 진보정당, 즉 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의 대결로 될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항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라는 구도로 되어가는 것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의 획기적인 의의는 진보정당이 본격적으로 보수정당과 겨루기 시작하는 선거라는 점일 것이다. 헛되이 이번 대선의 의미를 보수여야당간의 대결로 인식하는 결과 사표심리가 작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득표를 높이는 것이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 실현을 앞당기는 가장 중요한 힘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략)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성장시키는 것은 한국정치를 자본주의사회에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며, 이것은 한국사회를 인간다운 사회로 발전시키는 데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역사비평> 2002년 가을호에 실린 글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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