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중문화 호령하는 日流

"일본은 미국 버금가는 문화 초강국"

일본이 세계 대중문화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잡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5/6월호는 '일본의 국민문화총생산(Japan's Gross National Cool)'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은 지난 10년간의 장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미국과 동등할 만큼의 문화 초강국(superpower)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 바람이 불고 있다"면서 "팝음악에서부터 가전제품, 건축, 패션, 요리에 이르기까지 일본문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고양이 인형 헬로 키티는 매년 십억 달러 가까이 벌어들이고 있고, 일본 아니메(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만화는 미국 텔레비전에서 주요시간대에 방영된다. 포켓몬은 65개국에서 방송되고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시사잡지 타임의 표지에까지 등장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이치로 행방불명'은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최고상을 받았으며, '다크 엔젤'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포함하여 매트릭스 등의 할리우드 영화들도 일본 만화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1990년대 일본 대중음악을 평정했던 아무로 나미에는 미국에서의 공연 한번도 없이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아시아의 수백만의 십대들이 도쿄의 최신 패션들을 동경하고 있다.

이 잡지는 일본문화가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배경을 '젊은이들의 사치품 소비와 상품의 국적불명성' 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일본 상품들은 대부분 자국의 문화적 특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데 바로 이같은 국적불명성이 보편적 인기를 누리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 잡지에 따르면 헬로 키티는 성도 이름도 영어이며 일본의 고유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 도쿄의 클럽을 휩쓸고 있는 파다파다(PadaPada) 춤에서는 독특한 일본문화를 찾기 어렵다. 일본의 대중문화에는 특정한 메시지도 없으며 이데올로기도 없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이어 일본 10대들의 높은 구매력이 일본 대중문화의 발전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도쿄의 젊은이들이 휴대폰 통신요금으로 한달간 지출하는 액수는 평균 1백50달러(약 19만원)이다. 또 프랑스제 명품 가방 루이 뷔통의 도쿄 판매 가격은 원산지인 파리보다도 50%나 비싼데도 불구하고 도쿄에서의 매출액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 잡지는 요즘의 일본 10대들은 대부분 외동이로 자란 응석받이로 부모세대의 검약정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경제 사정과 상관없이 사치품을 소비하며 도쿄의 출근시간은 사치스러운 자동차 쇼와 같다"고 표현했다. 바로 이같은 젊은 층의 소비붐이 지난 10년간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더글라스 맥그레이는 세계화의 시대에 이처럼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은 소프트 파워의 증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소프트 파워'란 미국의 외교전문가이며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원장인 조셉 나이가 처음 고안해낸 말이다. 그는 한 국가가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전통적 수단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다른 국가의 요구나 가치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같은 용어를 만들어냈다. "(소프트 파워는) 여러 경로를 통해 사소하고 일시적인 유행으로 침투하지만 그 속에는 특정 국가의 메시지와 가치관,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다" 것이다.

맥그레이는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이미 미국과 함께 완벽하게 세계화된 극소수 국가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면서 "지금까지 일본의 대중문화에는 어떠한 메시지도 없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보한 일본 대중문화를 통해 앞으로 일본적인 메시지, 이데올로기를 세계로 확산시키면서 세계의 정치, 경제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류(韓流)' 현상이라며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의 '일류(日流)'는 이미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등에서도 막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 대중문화의 위력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포린 폴리시'에 실린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일본의 국민문화총생산**

일본이 문화 초강국(superpower)으로 거듭 나고 있다. 널리 보도된 바 있는 정치적 경제적 불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은 조용히 세계적으로 세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에서부터 가전제품, 건축에서부터 패션,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 요리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경제 초강국이었던 일본은 오늘날 문화적으로 더 막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의 우월함을 이룩한 일본이 이에 걸맞는 국가적 메시지도 생산해낼 수 있을까?

***포켓몬 헤게몬**

비평가들은 종종 문화의 세계화를 맥도날드 현상이나 "세계 음악' 현상에만 한정시킨다.

맥도날드를 세계화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측에게 세계화란 초국적기업이 외국 시장을 장악하며 현지 소비자들을 맥도날드 특유의 소스에 중독시키는 과정이다. 이 경우 문화는 미국의 힘에서부터 흘러나오며 미국의 공급이 세계 각국의 수요를 창출한다.

'세계 음악'파에게 세계화란 참신한 주변 문화가 세계 여러나라와의 접촉을 통해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문화는 미국의 힘에서부터 흘러나온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유한 미국인들의 수요가 라틴 음악이나 아일랜드 풍의 민요의 보급을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본 문화는 미국의 수요나 인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최근 일본 영화산업의 최대 수출 품목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감독 겸 배우 키타노 다케시를 처음 받아들인 외국은 유럽이었다. 그런 다음에 미국으로 수출됐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이치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은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최초로 대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사상 최초로 일본 망가(만화)만을 소개하는 대규모 출판전시회가 열렸다. 1990년대 일본 팝음악(J-Pop)의 여왕으로 일본 대중음악을 평정했던 아무로 나미에는 미국에서는 단 한번도 공연을 갖지 않았지만 아시아에서 거대한 팬 층을 형성하고 있다.

홍콩과 서울, 방콕의 수백만 십대들이 뉴욕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도쿄의 최신 패션에 열광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게 꾸며진 일본의 생활 잡지들이 도쿄 가판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불법적인 배급업자들에 의하여 아시아를 가로질러 밀수된다. 하지만 이런 잡지들이 미국판을 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고약스러울 정도로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일본 문화는 미국 문화에도 깊이 침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일본의 홈비디오 게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는 일본의 '아니메'(애니메이션)와 '망가'에서 깊이 영감을 받고 도움을 받은 것이다. '매트릭스'와 제임스 카메론의 '다크 엔젤'과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 등 최근 일부 할리우드 영화들도 그러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제 패션의 진정한 국제적 중심지는 도쿄다."

이번 봄 뉴욕 타임스의 스타일담당 에디터는 파리와 뉴욕 그리고 밀라노를 모두 퇴짜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일본의 아니메 스타일 만화들이 최근 미국의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과 후와 토요일 아침의 방송편성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포케몬은 시사잡지 타임의 커버를 장식하기까지 했다. 포케몬을 주제로 한 만화영화와 비디오게임은 65개국에서 방영됐으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1980년대 일본은 새로운 종류의 (경제) 초강국으로 부상했다. 일본은 (미국 등과는 달리) 정식 군대도 보유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도와주어야 할 해외 괴뢰정권도 없었고, 신경 써야 할 대리전쟁도 없었다. 오직 경제였다. 일본이 단순한 부자 나라를 뛰어넘어 경제 초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거대 회사들이 집단적으로 높은 지적 고지(高地)를 선취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조차도 일본 기술의 성공을 다시 따라잡기 위해 일본을 모방해야 했다. 미국 경영인들은 일본의 경영기술과 관련된 책들을 무더기로 사들였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의 열쇠는 이데올로기에 있지 않다. 적어도 냉전의 전형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 아니다 : 그러나 그것은 방법에 있었으며 , 그것이 일본의 경제를 80년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로 만들었다.

이제, 2002년도로 되돌아 와 보자. 고소득, 평균수명 등 더 많은 통계수치들은 삶의 질에서 일본이 여전히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의 경기침체로 국가적인 활력은 사라졌다. 성장률은 하락했고 엔화 가치도 떨어졌다. 닛케이 주식시세도 17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완전고용도 기록적인 실업률에 자리를 내주었다. 도쿄는 일본 금융상황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실사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일본 금융의 부실 실태는 일본 정부가 인정한 것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무디스의 신용평가등급에서 한 등급 하락한 일본의 신용등급은 보츠와나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초강국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인 재난으로 무너지는 대신 일본은 전세계적인 문화 영향력을 착실히 키워왔다. 사실 팝 음악에서부터 가전제품, 건축에서부터 패션,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 요리에 이르기까지 현재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워를 보여줬던 1980년대보다 훨씬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문화적인 영향력은 널리 보급되어 있는 미국문화와는 가장 기본적인 형식에서조차 다르다. 미국 문화는 미국적 스타일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같은 특정한 보편적 기본 가치를 반영하는 반면 일본 외부에서 유행하는 현대 일본 문화는 미국문화에 비해 편협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변천 과정에 있는 일본 민족의 모순된 가치들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의 예술전문 잡지 BT는 현대 일본 문화에 대해 "특정한 시각이나 위계질서가 없으며 모든 것이 동등하게, 동시에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화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우리에겐 종교가 없다. 우리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오락의 강력한 힘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일본은 차츰 특정한 종류의 대중문화를 전달하는 기술(이러한 기술은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을 완벽하게 다져왔다. 만약 일본이 현재의 경제적 혼란과 군사적 불안을 잘 정돈하고, 젊은 층의 일본인들이 그들 자신의 가치와 전통을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안정감을 되찾는다면 일본은 19세기말 짧은 기간동안 떠맡았던(서양과의 교류를 지속하면서 그들 자신의 힘으로 군사적, 문화적 강국의 지위를 확보했던)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해 3개월을 일본 곳곳을 여행하면서 예술가, 감독, 과학자, 디자이너, 문화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본 문화가 외국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는 듯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외국 팬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신 그들은 외국이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에 관해 이야기했다. 때때로 일본인들은 현대 일본에 일본적 요소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면서 기묘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바로 이같은 점이 일본 문화 확산의 열쇠가 됐다.

***헬로 키티**

일본 대중문화의 가장 눈에 띄는 아이콘인 산리오 헬로 키티의 성공의 비결도 바로 이같은 '국적 불명성'에 있다. 지난 2001년 봄 산리오는 키티의 공식 팬 잡지를 통해 키티의 성을 최초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키티의 성은 화이트(White)이다.

헬로 키티는 매년 세계적으로 십억 달러 가까이를 벌어들이는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산리오는 헬로 키티의 너무도 많은 제품에 헬로 키티 캐릭터 사용권을 허가해 주어서 이 회사 대변인도 그 숫자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널리 보도되어진 숫자인 1만2천에서 1만5천종 사이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헬로 키티 건포도가 있는가 하면 빵 조각을 넣으면 헬로 키티 얼굴 모양이 찍혀 나오는 토스터기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엄격한 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회사 대변인은 "독한 술, 그건 아마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캐릭터 사용권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

헬로 키티를 오랜 시간 디자인 해왔던 야먀구치 유코를 산리오의 작은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어두운 색의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휴대폰과 그녀 목의 체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헬로 키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키티는 외국인일까 일본인일까?

"키티가 탄생했을 때는 일본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영어를 연상시키는 제품을 동경했습니다. 여기서 키티를 영어로 이름 지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나왔고 그녀는 엄청나게 유행할 수 있었죠"

오늘날 미국 등 많은 외국의 10대와 20대들은 헬로 키티 지갑을 사고 휴대폰 케이스를 산다. 그들에게 헬로 키티는 도쿄 스타일의 상징이다. 그러나 1980년대 산리오는 헬로 키티를 미국에 팔기 위해 미국인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어야 했다. 그들은 미국에서는 헬로 키티를 팔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일본 국내용과 미국 수출용을 별도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보라와 핑크색이 잘 팔렸지요." 야마구치는 산리오의 미국시장 조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파랑, 노랑, 빨강은 금기였어요."

"미국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주제들 또한 있죠." 키티의 친구들 중에는 달팽이도 있다. 비바람이 몰아 칠 때 키티는 우산과 꽃을 들고 있었고 키티의 옆에는 달팽이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달팽이를 삭제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색깔의 차이는 (극복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은 요구들을 모두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요구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이제는 디자인에 있어서 차이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시장에 같은 키티를 가지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산리오의 아시아 지사 책임자인 오니시 슌지는 1990년대 산리오의 주요한 시장이었던 타이완과 홍콩을 위해 헬로 키티를 토착화시켰다가 비참하게 실패한 사례를 말해주었다.

그들은 키티에게 그 지역의 옷을 입히고 그 지역에 맞는 환경을 배경으로 제작했다. 그러나 그 상품들은 선반에 처박혔다. "그들은 키티가 일본제임을 알고 있어요. 그게 바로 그들이 키티를 좋아하는 이유이죠. 그는 말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말이죠." 설사 키티라는 이름이 사실은 영어일지라도? "키티는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 야마구치는 키티의 국적을 조금 애매하게 흐리며 말했다.

헬로 키티는 서구적이다. 그래서 헬로키티는 일본에서 잘 팔릴 것이다. 헬로 키티는 일본적이다. 그래서 키티는 서양에서도 잘 팔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산리오, 소니, 닌텐도와 같은 일본 기업들이 끊임없이 시도하는 부메랑 마케팅전략이다. 또한 이야말로 각국들이 자국 민족문화의 쇠퇴를 우려하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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