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식게이트와 언론

언론이 주가조작의 바람잡이가 돼서야

1980년 1월4일 100에서 출발했던 종합주가지수가 1989년 4월 1,000고지를 돌파했다. 10년만에 10배를 넘어서자 2,000도 멀지 않았다는 장미빛 전망이 쏟아지면서 증시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증시가 급작스럽게 얼음장마냥 식더니 10년이 넘도록 쇠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권이 세 차례나 바뀌는 동안 부침을 거듭했지만 그 옛날의 고토에서 멀리 머물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장세가 열기를 뿜지만 얼마나 갈지 불안하기만 하다.

역대 정권이 경제정책의 초점을 증시부양에 맞추었지만 아무런 효험도 없이 경제상황만 왜곡시켰다. 외국인투자만 늘리면 주가가 날개를 달 줄 알고 투자한도를 뻔질나게 확대했다. 하지만 주가는 날기를 마다한다.

그래도 저금리정책은 약효가 있는지 작년말께부터 주가가 들썩거린다. 오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엄동설한에 증시를 뜨겁게 달군다. 1억원을 예금해 봤자 월 30만원도 챙기기 어려우니 퇴직생활자들이 저마다 돈다발을 들고 뛴다. 불꽃을 찾는 불나비마냥 몸을 불사를까 겁난다.

어느 날 벤처라는 낯선 말이 언론에 쏟아지는가 했더니 온통 벼락부자 소식으로 가득 차 버렸다. 신문철을 뒤져 본다. 그야말로 광풍이었다. 1999년부터 돈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재작년 봄에는 돈벼락이 아니면 기사 취급도 못 받는 듯했다. 20~30대 청년들이 수백억원도 아닌 수천억원이라는 떼돈을 벌었다는 따위의 기사가 넘쳐 났다. 벤처기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고 코스닥은 화폐제조기인 양 언론은 들떠 있었다.

정부도 흥분하여 법석을 떨었다. 벤처기업은 21세기 한국경제의 산실이다, 새 천년의 운명은 벤처기업에 달렸다, 벤처기업 수 만개를 만들어 육성하겠다, 한국경제도 신경제에 편입되었다, 등등 떠들면서 정책금융을 동원했다.

그러자 코스닥은 연금술사가 되어 벤처라는 간판만 달면 돈벼락을 맞았다. 벤처사업이 연출하는 환상에 젖어 언론과 정권이 맞장구를 치며 벼락부자 만세를 연발했다. 그것도 제조업은 사양길을 걷는 굴뚝산업으로 푸대접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재작년 가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가 했더니 후닥닥 닫혔다. 정현준 사건이다. 그곳에 세도가들이 개입했다는 낌새가 있자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검찰이 진실을 좀처럼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런가 했더니 여기 저기서 이른바 ‘게이트’라는 이름의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지뢰밭이라도 밟는 듯이 진승현-이용호-윤태식으로 이어지는 주가조작 관련 비리사건이 밑도 끝도 없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데 벤처기업이라는 간판만 달았다고 은행에서 대출을 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세도가들이 끼어들어 불법대출을 일으키고 또 다른 권력자들이 그 불법행위를 눈감아 줬다. 이들은 그 대가로 목돈을 받거나 주식을 받아 코스닥에서 한탕해 먹고 빠져 나가곤 했다. 여기에 조직폭력배와 정치브로커도 한몫을 했단다. 언론은 연일 벤처기업들이 금맥이라도 잡은 듯이 홍보성 기사를 써댔다.

이른바 ‘윤태식 게이트’의 장막 뒤에는 힘께나 쓰는 언론인들이 여럿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경제신문사 사장을 비롯하여 언론계 인사 25명이 ‘패스21’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더러는 순수한 투자자이겠지만 짐작했던 대로다.

홍보성 기사가 무더기로 쏟아졌으니 하는 말이다. 기자협회보(2002년 1월1일자)에 따르면 1998년 9월부터 작년 12월18일까지 10개 종합지에 모두 91건의 기사가 게재됐다고 한다. 한 신문에 10건 꼴로 실었다는 이야기다. 경제지는 더 심해 매일경제 59건, 서울경제 20건, 한국경제 23건, 내외경제 25건을 게재했다. 특히 서울경제는 1면 머리, 사설, 특집-기획, 인터뷰 등에 파격적으로 지면을 할애했다고 한다. 이러니 귀족주의 탄생은 약속됐던 일일 것이다.

주식과 관련한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지면 으레 언론인의 연루설이 나돌곤 한다. 노름판에 바람잡이가 날뛰듯이 주가 조작에도 그런 구실이 필요한가 보다. 무담보대출을 일으켜야 하는데 신용은 없고 간판만 있는 기업이라면 홍보성 기사가 대출심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주가를 띄우려면 홍보성 기사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다. 이러니 언론인이 한통속이 되나 보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공직자의 주식투자에 대한 체계적인 규제장치가 없다. 경제정책이나 기업활동에 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지위나 위치에 있는 공직자가 마음만 먹으면 그 정보를 가지고 주식투자를 통해 얼마든지 축재가 가능하다. 그런데 유관업무에 종사하는 실무자만 규제할 따름이다. 업무상 고급정보의 취득이 가능한 장관이나 상임위 활동과정에서 정보에 접할 수 있는 국회의원에 대해 어떤 규제도 없다. 공직자 윤리법이 있으나 주식투자에 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다. 일본은 장관의 경우 주식투자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공직자는 입수한 정보를 근거로 주식을 매입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언론인은 주식을 매입한 이후에도 주가를 부추기려고 홍보성 기사를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회사간부들이 보유 주식의 주가를 부추기려고 일선 기자에게 호재성 기사를 쓰도록 당부하기도 한다. 또 회사 차원에서 주식투자를 하기도 한다. 이런 실정이니 취재기자는 기사작성보다는 상사를 위한 보고용 정보를 수집하기에 더 바쁘다.

한국 언론이 주가변동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 동기의 순수성이 의문스런 경우가 많다. 정부에 부양책을 독려하려고 주가 폭락을 과장하고 투자자를 유혹하려고 주가폭등을 강조하지 않는지 말이다.

이러니 주가가 경제상황이나 내재가치와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권력자가 뒤에 있다는 소문이 나면 주가가 천장을 모르고 뛰고 어느 장관한테서 들었다는 풍문이 나돌면 주가는 연일 상종가를 치는 것이다. 이처럼 주가가 정치권력의 향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 만큼 권력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권력의 이동에 따라 주가가 밀물처럼 들어오고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그러니 뒤늦게 루머를 쫓던 개미군단은 상투를 잡고 통곡한다.

증권시장이 시장원리에 따라 투명하게 작동하지 않는 한 장기적인 주가전망은 비관적이다. 무수한 부양대책이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것은 지난 10년간의 주가변동이 이미 증명한다. 공직자와 언론인의 주식투자에 대해 내부자거래에 준하여 엄격하게 규제해야 시장기능이 정상화된다. 그렇지만 권력자들이 이것을 실행에 옮기려 할지는 의문이다. 축재의 수단이니 말이다. 한국증시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늦었지만 언론이라도 깨어나야 한다. 마비된 윤리의식을 되찾는 것이 곧 언론개혁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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