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술안주는 속초에서 가지고온 오징어였다. 재정 사업으로 팔다가 남은 오징어를 안주삼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파업으로 서울에 왔다는 말부터 영업 이야기, 유령 회원 이야기, 마이너스 월급을 받고 있다는 말까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뻥이겠지, 일을 하는데 웬 마이너스 월급? 기본급이 적다는 것을 과장해서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때가지 난 특수 고용 노동자가 무엇인지, 수수료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그러니 진짜라며 열심히 설명하는 조합원 얘기를 들어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후 인사만 했고 얼마 후 그분들은 다시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먹고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학습지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인정받았는지, 어떻게 사는지, 투쟁은 결과는 어땠는지, 나도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에.
현대미포조선 투쟁 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2008년 겨울, 정몽준 의원 사무실 항의 집회를 하려고 서울에 갔다. 그리고 저녁에 연대온 동지들께 인사를 하러 서울 지역 투쟁 사업장을 돌았다. 그때 찾아간 곳이 혜화동이었다. 농성장 주변으로 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서울은 연대가 잘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현수막에는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재능교육이 사주하여 지역 주민들이 붙인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제 구사대가 천막을 철거해서 오늘 폐자재를 구해 다시 만들었더니 더 튼튼해졌다며 환하게 웃는 동지들을 보았다. 재능지부 조합원들과 10년만의 해후였다. 그들은 더 이상 마이너스 월급을 받지 않았다.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삥' 해고자라며, 울산에서 방문한 고참 해고자들에게 따듯한 커피를 주며 환하게 웃어주던 사람이 유명자 동지였다. 며칠 뒤 울산에 내려갔고 나는 현대미포조선 투쟁을 마무리하고 수배받다 구속됐다. 당연히 재능지부 투쟁은 내 기억 속에 사라졌다. 그때 처음 만난 명자 누나에 대한 기억도 지워졌다.
2010년 출소 후 금속노조 미조직 비정규직 국장으로 파견되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동희오토 동지들이 '진짜 사장 정몽구와 맞장 떠서 복직하겠다'며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상경한 동지 한 명을 제외하고, 경찰서로 모두 연행된 날 서울지역 투쟁 사업장 동지들이 왔다. 그렇게 투쟁하는 공간에서 재능지부 조합원을 다시 만났다. 그때까지도 투쟁 중이었고, 명자 누나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후 긴 투쟁으로 어려웠지만, 투쟁 현장에서 재능지부 조합원들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재능 동지들은 결석도 안했다. 늦게라도 왔다. 그래서 나는 명자 누나와 가끔씩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동희오토 조합원 투쟁을 아쉽게 마무리한 후, 부족한 합의서에 대해 설명회를 하고 조인식 일정을 잡았다. 투쟁에 함께한 모든 동지들이 전체 뒤풀이를 한 날, 늦게 그 자리에 온 명자 누나는 "아쉽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연대해 준 누나의 마음과 실천만큼 내가 제대로 갚지 못했다. 동희오토마저 마무리를 하고 나니 재능만 혼자 남겨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은 큰 빚을 졌다. 지금도 아프다.
얼마 후 재능지부 동지들은 혜화동 근거지를 뺏기고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시청 앞 재능건물 옆 환구단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그날은 전국노동자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뭔가 함께하고 싶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임원들과 논의하여 시청 앞 아스팔트 위에서 재능지부 동지들과 공동 집회를 가졌다. 투쟁을 앞둔 조합원과 이미 1000일이 지나도록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는 투쟁 의지를 확인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재능지부 동지들은 그 많은 인원이 모였어도 천막하나 치지 못했다. 명자 누나도 지붕 없는 길바닥에서 아침을 맞았다. 이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CTS점거파업 25일 동안 진행된 많은 집회에 재능지부 동지들은 언제나 함께 했고, 지금도 서울과 울산에서 진행되는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사장 현대자동차가 10년 넘게 사용자임을 거부하며 착취하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나, 특수 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사용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재능교육 경영진. 이들을 상대로 사용자성과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학습지노조 재능지부는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또,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부당 해고해서 해고 노동자가 죽음에 이른 것도,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는 것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도 스스로 옳다고 믿고 전진하는 것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12월 8일 CTS점거 파업으로 체포 영장이 발부된 나는 지금까지 함께해 준 재능지부 동지들과 아름다운 연대도 하지 못하고, 빚만 지고 있다.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그곳에
15년 동안 내게 재능지부 동지들은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였다. 굴하지 않고, 굽힘없이 전진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래서 항상 존경했고, 미안했다. 10년을 투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다. 기나긴 투쟁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2000일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생계를 위한 노동도 제쳐두고, 아프고 힘들어도 길바닥을, 천막 농성장을 지키며 2000일을 버틴 그 이유를 안다. 그 시간 동안 받은 상처도 완벽하겐 아니지만 느낄 수 있다. 투쟁이 마무리되어도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가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 주변 동지들에게 물었다. 한 동지가 내게 충고했다. "2000일 집회가 혜화동과 시청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열리는데 괜히 글을 써서 한쪽이 기분 나쁘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가 줄어든다"고. 또 다른 동지는 말했다. "고공 농성 해봐서 알겠지만 110일이 넘었는데 사람 죽일 거냐, 둘 다 힘을 합쳐야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변에서 간섭하지 마라."
많은 고민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고민을 하고 있을 정도이니! 나는 잘 알지 못하기에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옳고 그름은 투쟁을 마무리한 후 시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지회 CTS파업 투쟁부터 현재 진행 중인 양재동 현대차 본사 해고자 노숙 농성 투쟁까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투쟁에 언제나 함께 한 유명자 동지가 2000일 투쟁을 맞이하는데 우리 투쟁을 핑계로 침묵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하기 싫었다. 연대도 의리도 모르는 이기적인 놈이 되기 싫었다. 아니 더 빚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재능 투쟁 2000일 시청 농성장의 결의대회에 갈 수 없지만 함께 하겠다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다. 고생했다고, 힘내라고 위로하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명자 누나!
6월 11일 오후 4시부터 하는 벼룩시장에서 뭐 좋은 물건도 사고 싶고, 7시 환구단 앞 문화제도 참가하고 싶지만 보시다시피 사정이 이래서 갈 수가 없어 이렇게 글로 때우네요. 미안하지만 난 지금도 재능지부 투쟁에 대해 잘 몰라.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길 거라는 건 알아! 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힘들어 말자! 반드시 이기자!
그날 19시 투쟁 문화제 참석하러 가겠다는 지회 조합원들 편으로 함께하고픈 마음 배달할게요. 마음만 왔다고 서운해 하지 마세요. 대신 벼룩시장에서 좋은 물건 있으면 하나 사서 들고 오세요. 혹시 알아요. 기적이 일어날지! 재능이 굴복하거나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승리할지! 세상에는 간혹 기적도 있으니까 기대해 볼게요. 우리 뒤에 투쟁하는 노동자를 위해 2000일을 넘기면 안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2000일 동안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고 감사해요. 유명자 파이팅!
2013년. 날짜보다 철탑 농성 234일차가 더 편한 최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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