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매매 활동가는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아니기만 한 걸까요? 성 판매 경험 당사자들과 만나면서 마주하는 사건들이 반성매매 활동가와 만나는 접점이 무엇들인지 [끙]에서는 요리 끙, 조리 끙, 끙끙 앓는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폭풍처럼 몰아쳤다가 사그라지는 감정과 생각들, 허구한 날 받는 '입장에 대한 질문'을 은근슬쩍 넘어가기 위한 변명, 현장에서 가졌던 궁금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까놓고 말하는 것이 결국은 이 망할 놈의 '구조'라고 하는 것에 실금 하나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권오름>
올 초에 상담한 언니와 나눈 대화가 머리에서 맴돌던 것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 글을 쓰다가 갑자기 다른 주제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던 3명의 의원 중 민주통합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법안 발의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보수 기독교계의 황당한 맹공에 대표 발의한 의원들이 꽁무니를 뺀다는 것은 법에 대한 이해도, 차별 반대 감수성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일이다. 몹시도 황망하고 답답한 마음이다.
이룸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ad-act.net)와 함께하고 있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여러 단위가 결합하고 있는데, 결합 초반에 누군가 '이룸은 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원체 말주변이 없기도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문이 막혔다. 성별, 병력, 학력, 지역,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출신 국가 등 차별금지법에서 나열하는 거의 모든 차별 사유에 걸쳐 있는 성 판매 여성을 만나는 활동이 보편적인 인권 기본법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연대라는 것은 순진한 나만의 생각이었나?
왜 어떤 사람들은 구체적인 증거와 사례로 자신의 결핍을 증명하고, 사적 영역의 경험을 호소하고, 끊임없이 차별과 만나는 지점을 설명하고 드러내야만 하는 것일까.
내 옆구리의 차별
성 판매 여성은 의심할 필요 없이 거대한 낙인에 갇혀 산다. 뭇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진즉 팔려 닳아졌어야 할 '몸을 파는 더러운 여자', 섹스는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구매자는 쏙 빠진 채 '어떻게 감히 성스러운 성(性)을 돈을 받고 쯧쯧', '허영에 가득 차 쉽게 돈 벌려는 여자'들로 취급받는다. 때로는 과거를 밝혀 가정과 사회에서 꼭 추방해야 할 존재로 몰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숙하기를 요구받는 '평범한' 여성에 포함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낙인은 함부로 대하거나 살해해도 정상참작이 되는,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그야말로 당해도 싼 사람들로 성 판매 여성들을 차별이 당연한 곳에 위치시켜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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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집단·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 집단을 대상으로 드러내는 게 혐오이기에, 이러한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혐오를 맘껏 발산할 대상을 찾아 실행만 할 뿐이다. 개인적 차별의 경험과 혐오 범죄는 사안의 경중이 다르더라도 개인과 집단에게 가해지는 타격은 크다.
성 판매 여성이라서 더 엄청난 차별 경험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나, 아니면 '차별? 그 바닥이 다 그런 거지' 하는 생각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관계 안에서 성 판매 여성을 도려내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차별해도 되는 사람, 혐오해도 되는 집단은 따로 있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는, 특히 보수 기독교인들은 그런 대상이 있는 것에 안심할지도 모른다. 나와 다르니, 내가 겪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모욕과 차별을 당하는 대상이 내가 아니고 그런 일을 당해도 싼 너희들이니까.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는 여성이, 더럽게 항문 성교나 하는 동성애자들이, 징그럽게 남자도 여자도 아닌 트랜스젠더들이, 찾아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동성 결혼을 반대했던 미국의 보수 정당인 공화당의 롭 포트만 의원은 돌연 동성 결혼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자신의 아들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했기 때문이다. 자연 질서를 거스른다는 생각이나 보수적인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의원으로서 위치가 바뀐 것은 아니다. 갑자기 동성 결혼이 신의 뜻에 합당하다고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변화에는 아들이 게이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의 경험이 무엇인지, 앞으로 아들의 삶에서 자신의 지지가 어떻게 필요한지를 알게 된 것이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나와 무관한 사건과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가장 친밀한 관계로부터 내 옆구리에서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의 입장을 변화시켰으리라.
차별금지법, 바로 당신의 이야기
나는 7년여 동안 만났던 성 판매 여성들이 어떠한 차별 사유와 만나는지 법안의 모든 차별 사유 사례를 가지고 밤새도록 얘기할 수도 있다. 레즈비언, 신체·정신장애, 무학부터 대졸, 이주 여성, 다양한 전과와 병력, 10대부터 70대까지의 나이, 한부모와 단신가구 등의 가족 형태, 국내의 섬에서 미국, 일본 등지의 이주 노동자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러나 사례에 갇혀 특정 집단의 얘기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의의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인권을 위한 차별금지법에서, '보편적'이라는 단어는 차별 가해가 특정한 '개인·집단'으로부터 다른 '개인·집단'에게 전달되는 것이라기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성 가운데 함께 벼리고 나눠야 할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물론 나의 문제, 나의 생활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을 간과할 수 있다는 함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에 기재되어 있는 모든 차별 사유에 맞춰 상황과 정체성을 열거해야만 차별로 검증되는 것은 아니다. 누락되는 것, 미처 발견되지 못한 것들이 바로 타자화하는 것이다. 성 판매 여성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나에게, 당신에게 필요한 이유는 원론적이게도 보편적인 인권을 위하여,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하거나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반차별프로젝트에서 발간한 책인 <수신 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의 부제는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이다('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이 아니라). 개별적 경험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모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책 안의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은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고유하게 부딪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은 사라져야 할 것이지만, 그/녀들에게서 사라져야 할 것이 된다. 나나 너는 차별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그/녀들이 겪는 어떤 피해가 차별이 된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므로 '우리'는 차별을 없앨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그/들이 말한다. 나, 나야, 네가 부른 그/녀가 아니라 너를 부르는 나, 나라고."
(*이 글은 "[끙] 반성매매 안팎에서 헤매는 이룸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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