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갈등을 '포괄안보' 구현의 기회로

[정욱식의 '오, 평화'] 다시 제주해군기지의 의미를 묻는다 <下>

다시 제주 해군기지의 의미를 묻는다 <上>: 강정마을, '해방구'에서 美 전초기지까지
다시 제주 해군기지의 의미를 묻는다 <中>: 다음 대통령이 덜 친미적이면 덜 위험해질까?

필자는 앞선 글들을 통해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시 이어도 인근이 분쟁 수역화될 우려, 미국 해군의 기항지나 중간기지로 활용될 가능성,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및 한미일 3각동맹에 편입이 가속화될 우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해양 패권 경쟁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성 등을 들어 제주해군기지가 우리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우려는 이명박 정부 5년간 퇴행적인 대외정책으로 더욱 커졌고, 또한 차기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주장했다.

물론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국가안보적인 실익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해양 수송로 보호는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해군력을 증강할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다. 육·해·공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주변국의 해군력 증강에 맞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득보다 실이 크다. 앞서 언급한 국가안보상의 전략적인 위험과 함께 절차적 민주성의 훼손, 천혜의 자연환경 및 마을공동체 파괴, 건설비와 전력투자비를 합쳐 7조 원이 넘는 예산 부담, 해군기지 찬반 갈등 격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렇다. 또한 건국 이후로 남방 해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았고, 해군기지 건설의 당초 취지 가운데 하나였던 말라카 해협 해적이 거의 소탕되었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이미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중국의 2배, 일본의 3배 가까이 쓰고 있는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해군기지 건설 중인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연합뉴스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의 문제 해결 능력

5년 넘게 이어져온 제주 강정마을의 비극과 사회적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는 한국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다. 그리고 다가오고 있는 대선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해군기지 문제를 이념 대결이 아니라 정책 대안으로 접근한다면 말이다.

정책 대안의 핵심적인 목표는 남방 해역 안전 확보 등 국가안보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제기되어온 문제를 해결하며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국가, 인간, 환경, 경제, 국제관계를 포함한 '포괄안보(comprehensive security)'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개념이 될 수 있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백지화하는 대신에, 해군이 제주항과 화순항에 확장·신설될 예정인 해경부두를 '기항지'로 이용하고, 강정마을은 세계평화마을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는 국가안보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파국으로 치닫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윈-윈'(win-win) 해법이자 포괄안보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12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국가관리항에 포함된 화순항에는 남방 해역에 대한 해상안보와 치안 유지 강화를 목적으로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해경전용부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제주항 동쪽에도 73미터 규모의 대형 해경부두를 2015년까지 짓기로 했다. 제주항에는 소규모의 해군 부대도 있다. 해군기지의 대안으로 이들 두 곳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모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점들이 있다.

해경부두를 해군도 겸용토록 하자

우선 초당적 합의를 복원할 수 있다. 2007년 12월 국회는 관련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부대조건으로 '민항 위주의 해군 기항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민군복합관항 미항'이라는 이름을 달고 해군기지 사업으로 변질됐고, 이를 문제삼은 국회는 2012년 예산을 대부분 삭감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정은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당시 한나라당 의원 대다수도 동의했던 바이다. 이에 따라 '기항지' 정신을 살리는 것은 첨예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한 해군기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유력한 접근법이다.

둘째, 이어도 등 남방 해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해군의 대기 및 상황 발생시 신속한 투입이 가능해져 해군의 요구를 일부 충족시킬 수 있다. 국방부는 해군기지 건설의 가장 큰 근거로 "해군 주력 함대가 있는 부산에서 23시간이 걸려 가야하는 이어도 해역까지 제주해군기지에서는 8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어도 해역 출동 임무는 화순항과 제주항을 '기항지'로 이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오히려 화순항을 기항지로 사용하면 강정마을에서보다 더 빨리 이어도에 도달할 수 있고, 제주항을 사용하더라도 10시간 정도 걸린다. 또한 이들 해경부두의 규모를 볼 때, 독도함이나 KDX-3 등 초대형 함정은 어렵더라도 KDX-1(3000톤급) 구축함은 정박할 수 있다.

또한 한국 해군의 대형 함정들의 해상 작전 기간이 30일을 넘다든다는 점도 중요하다. 최대 함정인 독도함은 40일, KDX-3는 30일, 209급 잠수함은 50일을 보급 없이도 버틸 수 있다. 즉 이어도 등 남방 해역에서 군사 분쟁이 발생할 조짐이 보이다면, 이들 함정이 우리 영해나 공해에서 대기하다가 상황 발생시 신속한 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남방 해역 보호를 위한 해경과 해군의 공조 체계를 강화할 수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해군기지 건설의 핵심적인 목적은 남방 해역 안전, 탐색 구조, 해저 자원 및 해양수송로 보호 등이다. 그런데 이는 해경의 임무와 정확히 일치한다. 해경 역시 이러한 임무를 위해 제주항 및 화순항에 해경전용부두를 만들고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을 신설해 대응 능력을 높일 방침이다. 또한 올해 6월에는 서귀포항에 최대 시속 80km, 최대 운항거리 3700km에 달하는 최신예 경비정 '대극 6호'를 취역시켰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해경부두를 해군 기항지로 겸용하는 방안은 임무의 중복 문제를 해소하고, 유사시 해경과 해군의 원활할 협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넷째, 예산 절감 효과도 대단히 크다. 국방부는 해군기지 건설비 1조 원 이외에도 앞으로 5년간 6조5000억원을 투입해 제주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사용하는 '이어도-독도 함대'를 창설한다는 계획이다. 함대가 창설되면 연간 운영유지비도 수백억 원에 달한다. 반면 해경부두 건설비 및 운영비가 해군기지보다 훨씬 적다. '해경부두를 해군이 겸용하도록 하자'는 발상의 전환으로 6조 원 안팎의 혈세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취소하더라도 일부 구조물과 자재를 재활용할 수 있어, 이미 투입된 건설비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아울러 강정마을을 세계생태평화마을로 지정해 '세계 평화의 섬' 제주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미 강정마을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맞선 많은 사람들이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저항을 펼쳐 세계적인 평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상만 전환하면 강정마을을 세계생태평화마을로 만드는 것이 결코 꿈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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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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