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돈, 록 페스티벌의 주인은…

[현장] 올해도 흥했던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2011'이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의 일정을 끝냈다. 이 페스티벌은 대기업의 강력한 홍보와 초창기의 화려한 라인업을 앞세워 단 세 번째 행사 만에 한국 최대 규모의 대중음악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페스티벌의 상업화'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해방감을 사는 공간 '그래도 간다'

이번 페스티벌은 하루 평균 3만 명(주최측 추산 연인원 9만2000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며, 한국 록 페스티벌 역대 최대 규모의 관객을 동원했다. 호화로운 라인업을 자랑했던 지난해(연인원 7만9000명)보다 16%가량 관객이 더 늘어났다.

CJ E&M 측은 "유료관객이 지난해보다 30%이상 증가했다"며 "마지막 날 굵어진 빗줄기에도 현장을 찾는 관객들이 대거 몰렸다"고 강조했다.

록 페스티벌 자체를 즐기는 관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3회째 행사가 입증했다. 특히 '국내 최대'라는 이미지 마케팅이 초반부터 대중에게 잘 먹힌 데다, 미디어의 강력한 지원이 힘을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힘입어 "이전에 비해 부실한 라인업"이라는 혹평이 많았음에도 이처럼 많은 관객이 이곳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이재영(26) 씨는 "고생하지만 더 뮤직(The Music)처럼 기대 이상의 음악인을 발견하는 맛이 있어 록 페스티벌을 찾는다"며 "도시를 떠나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해방감을 느끼는 기분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처럼, 페스티벌 팬들은 어떠한 수고와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페스티벌로 향한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모든 이가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해방감, 곧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해방구가 바로 록 페스티벌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힘들더라도 해방감을 '구입하려는' 이들은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록 페스티벌로 향하기 마련이다.
▲음악을 만끽하고 싶으면 지금도 홍대 인근 라이브 클럽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해방감'은 오직 대형 페스티벌에서만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해방감이 주는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공존해야 한다. 그들은 관객들의 이 에너지에서 돈을 찾을 것이다. ⓒCJ E&M

록 페스티벌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러나 여기서 충돌이 생긴다. 기자가 묵은 숙소가 이미 올 봄에 예약이 끝난 것처럼, 마니아들은 매년 초입부터 이곳으로 올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런 열정을 보고 주최 측은 티켓 가격을 올리고, 숙박업소들은 더 비싼 숙박 요금을 받는다. 주변 밥값이 오르고, 행사장 내 음식물 반입이 까다로워진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치러야 할 금전적 비용의 부담수준이 갈수록 높아진 것이다.

직장인 진수희(28, 가명) 씨는 "일찌감치 숙소 예약부터 했는데, 라인업이 실망스러운데다 티켓 가격도 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내년에도 올지는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영미(28, 가명) 씨는 "라디오헤드(Radiohead)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올해 라인업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이전에 온 밴드 재탕한 수준밖에 안 된다"며 "외국에서 지금 뜨는 밴드들 찾아보고 섭외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주최측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올해 행사는 심야부터 열리는 '하이프 스테이지'가 추가돼 참여하는 음악인의 수가 53개 팀에서 74개 팀으로 대폭 늘어났다. 그만큼 음악인 섭외비용과 인건비 등이 더 늘어나게 됐다. 감당해야 할 투자비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예상 이윤 수준도 더 높여 잡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올해 특히 논란을 낳은 '록 페스티벌의 정체성' 문제에 주류 언론마저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이에 더해 주최측은 더 안전한 장치를 마련하려 노력하게 된다. 올해 유난히 부쩍 늘어난 대기업의 참여가 그것이다. 한화, KT, 제일모직 등 록 음악 공연과 연관성을 전혀 찾기 힘든 기업들의 홍보 부스가 캠핑존과 빅 탑 스테이지 사이를 가득 메웠다. CJ E&M 측에 따르면 올해 이 페스티벌에 참여한 기업 수는 26개로, 지난해의 1.5배에 달한다.

그만큼 관객들이 자유롭게 놀 공터는 사라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단 3회 만에 대기업의 마케팅에 포위된 록 페스티벌의 현실을 개탄하는 이들의 글이 많았다.

김 씨는 "(관객이 아니라) 대기업이 페스티벌의 주인인 것 같아 씁쓸했다"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른바 '록 페스티벌의 상업화' 논란의 두 축이 됐던 아이돌 가수의 출현과 대기업 홍보부스의 증가 현상은 그러나, 관객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앞으로 점차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록 페스티벌의 주요 관객층이 구매력이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20~40대 계층이라, 타깃 마케팅에 민감한 기업으로선 구미가 당기는 홍보 행사이기 때문이다.

1969년 우드스탁을 개최한 주역 중 하나인 아티 콘펠드는 지난해 한국을 찾아 1994년 다시 열린 우드스탁을 두고 "그것들은 페스티벌이 아니었다. 대형 기획사를 끼고 우드스탁의 이미지만 소비하는 상업 콘서트에 불과했다"고 개탄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소비층이 얇은 한국에서 대기업의 도움 없이 대형 록 페스티벌을 열기란 쉽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자유를 소비하는 시대가 낳은 현실이다. 현재로선.
"이 밴드 흥했네"

논란이야 어찌됐든, 올해도 뜰 밴드는 떴다. 음악의 힘 하나만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안긴 팀이 있었고, 모두의 기대를 폭발적 호응으로 이끈 이들도 존재했다.

유브이(UV)는 그야말로 그린 스테이지의 제왕이었다. 30일 빅탑 스테이지 공연이 끝난 후 스페셜 게스트로 40분간 공연한 UV는 크래쉬의 보컬과 베이시스트이자 그린 스테이지 무대 감독으로 참여한 안흥찬까지 무대로 올려 그야말로 '즐기는 무대'의 진수를 보여줬다.

유세윤의 인기를 반영하듯, 1만여 명을 수용 가능한 그린 스테이지에는 2만3000여 명(주최측 추산)에 달하는 관객이 몰렸다.

그린 스테이지를 달군 또 다른 주인공은 국내 팝음악 팬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나라에서 온 이들이었다. '빌보드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브라질 밴드'라는 브라질의 신예 댄스 록 밴드 CSS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세계적 듀오 Amadou & Mariam은 절로 몸을 움직이는 감각적 무대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CSS의 공연 당시 폭우가 내리자, 그린 스테이지로 들어가지 못한 관객들은 스테이지 바로 앞 수영장에서 단체로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UV의 무대에서도 유세윤의 지휘에 관객들이 동시에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경관이 펼쳐졌다.

이번 투어를 끝으로 해산하는 영국의 록 밴드 더 뮤직 역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미 2008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선 이들이지만, 뒤늦게 이들의 매력에 빠진 이들도 많았다.

지난해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뛰어난 무대장악력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뛰어 놀게 했다. 하드코어 팬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허클베리 핀과 관객석을 슬램(slam)의 도가니로 만든 칵스(The Koxx) 등 국내 밴드들의 공연도 유난히 돋보였다.

특히 우려를 낳은 음악인 중 하나였던 DJ DOC는 바지를 벗는 깜짝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무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헤드라이너들은 특유의 음악색깔로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영국 매체의 강력한 지원으로 2000년대 영국 록의 대표주자로 올라선 아크틱 몽키스(Arctic Monkeys)는 젊은 세대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90년대 브릿팝 열풍의 주역이었던 스웨이드(Suede)는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미 한국의 페스티벌을 맛본 케미컬 브러더스(Chemical Brothers)는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집단 무아지경에 빠지도록 음악의 홍수를 일으켰다.
▲허클베리 핀의 팬들은 4집 앨범 자켓이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과 수건을 준비했다. 29일 그린 스테이지. ⓒCJ E&M
▲The Music은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그루브감 넘치는 무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제 이들을 다시 볼 수 없다. 29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이하늘(DJ DOC)의 아찔한(?) 뒤태. 29일 빅탑 스테이지. "(록 페스티벌에) 쫄았다"던 이하늘은 단 한곡을 부른 후 "분위기가 예술이다"라고 감탄했다. 객석의 에너지는 음악인에게도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29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빅 비트의 거장 케미컬 브러더스는 스물 두 곡의 곡들을 쉬지 않고 객석에 쏟아냈다. 전자음을 즐기는 이들이 무아지경으로 도취됐다. "생각하지 마라(Don't Think)." 음악이 주는 미덕이다. 29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톱 밴드> 코치 정원영도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 '록 페스티벌에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던 관객들 상당수가 정원영 밴드의 무대에 감탄했다. 30일 그린 스테이지. ⓒCJ E&M
▲<나는 가수다>에 새로 합류해 YB와 '록 밴드' 대결을 펼치는 자우림이 록 페스티벌의 밤을 이끌었다. 30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이번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의 훈남 중 하나인 Arctic Monkeys의 알렉스 터너(보컬, 기타). 이들은 말 그대로 '현재 진행형'의 밴드다. 새로운 세대와 90년대 이전 문화충격 세대의 호오가 가장 극명히 엇갈렸을 팀. 한국 페스티벌을 찾는 적잖은 음악인들이 하는 말 "다시 보자"가 이들에게서 나왔다. 팬들은 이들의 단독 내한공연을 기다리게 됐다. 30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UV는 올해 록 페스티벌의 지배자 중 하나였다. 분홍색 삼선 슬리퍼가 체크포인트. 30일 그린 스테이지 스페셜 라인업. ⓒCJ E&M
▲UV를 보기 위해 그린 스테이지로 몰리는 사람들. 돔 내부가 스테이지다. ⓒCJ E&M
▲세계적 레게 음악인 마누 차오(Manu Chao)의 눈에 '뒤늦게' 발견돼 세계로 알려진 Amadou & Mariam. 이 듀오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객석의 에너지는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린 스테이지에서 가장 뜨거웠던 무대 중 하나. 31일 그린 스테이지. ⓒCJ E&M
▲'장 교주'님의 지시에 따라 갖가지 손동작을 따라하는 관객들. 장기하와 얼굴들은 농익은 무대장악력으로 관객들을 내내 뛰어놀게 만들었다. 31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이번 페스티벌 최고 꽃미남 중 하나인 브랜든 보이드. 공연 직전에 폭우가 쏟아진데다, 신보의 반응이 좋지 않아 생긴 우려와 달리 인큐버스(Incubus)는 관객들의 반응에 흥겨워했다. 브랜든 보이드는 지난 내한공연 보다 더 능숙해진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여유있게 멤버들과 웃음을 나눴다. 31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무슨 사진이든 화보가 되는 브랫 앤더슨도 이젠 꽃중년이 됐다. 90년대 브릿팝 열풍을 이끌었던 스웨이드는 이번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했다. 31일 빅탑 스테이지. ⓒCJ E&M
▲왕년의 댄스가수로 잊혀져가던 김완선에게 이날 무대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대중을 움직이는 건 결국 '어떤 가수냐'가 아니라 '어떤 음악이냐'다. 31일 하이프 스테이지.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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