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위한 의사 평가, 정부가 나서는 게 문제인가?"

[반론]이형기 교수의 칼럼을 읽고

지난 4일 이형기 교수가 기고한 '시험대 위에 선 의사들…평가의 칼은 누구 손에?'라는 칼럼을 읽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심사위원이 반론을 보내왔다. 애초 기고에서 이 교수는 미국의 생명보험회사가 의사를 평가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소개하면서 의사 스스로 환자 중심의 평가를 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이 글에서 이형기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도하는 국내의 평가 역시 미국의 생명보험회사의 평가와 유사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환자 중심의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김선민 심사위원은 '평가'를 둘러싼 국ㆍ내외의 논의를 소개하면서 이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특히 김선민 심사위원은 "의료계와 환자 사이에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환자를 대신해 행정기관에서 평가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진료 평가를 둘러싸고 더 생산적인 논쟁이 진행되기를 기대하며 김선민 심사위원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이형기 교수의 '시험대 위에 선 의사들…평가의 칼은 누구 손에?'라는 글을 읽었다. 이 교수는 칼럼을 통해 진료 과정을 평가하는 일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주체는 행정기관이 아닌 의료계나 환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환자들이 옳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을 평가 결과로서 의사가 책임지는 일의 비합리성, 미국 의료보험회사들 간의 평가 불일치, 지엽말단으로 의사를 평가하는 일의 부당함, 진료비 절감을 위해서 환자 건강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이 교수의 주장에 매우 많은 논리적 비약과 오류가 있다는 반론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이 교수가 논리적 근거로 삼은 칼럼은 미국의 질 평가 현황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글은 객관적, 통계적 자료보다는 몇 명의 의사들과의 인터뷰에 근거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뷰들은 이의를 제기했거나 평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점수가 낮게 나온 피평가 공무원 몇 명과 인터뷰를 해서 공무원 평가제도에 대한 기사를 쓴다면 어떤 기사가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에서 질 평가에 대한 대단히 많은 연구가 이미 진행되었고 이 연구들은 미국 정부와 비영리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질 평가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비단 미국의 일 많이 아니다. 돈 값(Value for Money)을 하기 위해서 성과에 따른 보수지불(Pay for Performance)을 하자는 것은 21세기 전 세계 의료계의 화두이다.

둘째, 이 교수는 예방적 서비스와 같이 환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사가 아무리 잘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의사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참고하는 어떤 평가도 환자가 거부한 결과를 의사의 질로 평가하지 않는다. 미국의 일부 민간보험에서 그러한 사례가 있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미국의 질 평가 전체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 교수도 말 했듯이 미국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민간의료보험과 관리의료기구(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가 있다.

또한 이러한 경우, 의사의 책임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있어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의사 환자 관계는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우열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의사에게는 환자에 대해 옳은 선택을 하도록 가르치고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적어도 의사는 환자에게 예방적 서비스를 권고하고 그 사실을 거부할 때에는 거부 사실을 기록해 놓기라도 해야 한다. 의학적 권고를 거스르고 퇴원을 하는 경우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기 위해서 의무기록에 이를 철저히 기록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예방적 서비스는 그것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의사가 보기에 환자의 문제가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라고 여긴다면 금연을 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 권고는 가히 전문적이어야 한다. 일반인도 담배를 끊으면 좋다는 사실을 대략은 알고 있다. 의사라면,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해 효과가 있다고 판명된 금연 방법을 알고 그에 따라 권고를 해서 권고에 순응하는 비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명백히 좋은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 간에는 분명 뭔가 다른 점이 있다.

물론 같은 의사가 같은 방법으로 권고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특정 집단의 환자들이 있다.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하는 내용을 우리나라에서는 평가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미국의 일부 의료보험회사의 사실을 제기한 <워싱턴포스트>에서 평가의 잣대로 거론한 것이 모든 평가라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산물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정부나 굵직한 보험회사는 어떤 환자 군에 대해서 꼭 필요한 약을 처방했는가를 평가하지, 의사가 처방한 약을 실제로 먹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지 않는다.

셋째, 이 교수는 데이터 마이닝 기법에 의거한 평가는 항상 쓰레기 더미에서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가 '잡입잡출'이라고 소개한 사례는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미국은 공적인 의료보장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진료 정보가 전산화되어 서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 대표적인 국가이다. 전 국민이 통일된 하나의 건강보험체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사실을 대입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나라의 질 평가가 오로지 전산 자료에 의거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동안 우리의 질 평가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칼럼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기관에서 실시한 적정성평가의 대부분은 실제로 진료한 내역에 가장 가까운 의무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동안의 평가에서 비합리적인 것들이 있었다고 치자. 수학능력 평가의 일부 문제는 꼭 학생이 알아야 할 지식이 아니라고 판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교육부로부터 학생들의 대학입학에 대한 평가의 칼을 빼앗아 학생들에게 주자고 주장할 것인가? 수능 문제를 합리화하자고 할 것인가?

더욱이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기법은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특정 통계적 방법의 명칭이다. 전산화된 데이터를 이용한다고 해서 모두 데이터 마이닝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평가가 전산화된 진료정보를 상당부분 인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데이터마이닝이라는 특정 통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데이터마이닝에 의거해서 평가하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평가가 부적절하다'는 표현은 우리나라 의료 질 평가에 대한 이해 부족의 소치이다. 또한, (사소한 일이기는 하나)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는 전산자료 이용과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단어를 혼동해서 쓰지는 않았다.

넷째, 중한 환자를 보는 의사가 손해를 본다고 했다. 이것 역시 외국이나 우리나라 평가에 대해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결과이다. 국제적으로도 의료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서 환자의 중증도를 보정하는 각종의 학문적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우리 평가에서도 같은 중증도의 환자끼리만 비교하거나, 중증도를 수학적으로 보정하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환자 중증도 구성이 다른 의료기관을 막바로 비교할 정도로 우리나라 평가가 비전문적이지 않다.

다섯째, 평가의 주체는 의료계와 환자라야 한다고 했다. 이 역시 세계적인 상황에 대한 폭 넓은 고찰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의 연방정부는 의료기관에 대해서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평가 사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다. 의료정보에 취약한 환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행정부의 본질적 임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미국 행정부(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는 우리에 비해서 평가 주체로서의 강제성을 훨씬 더 강하게 갖고 있다. 영국, 프랑스 등등 사회보장의 틀을 갖춘 나라들의 일반적인 일이다.

이들 국가의 의사들은 자체적인 질 평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스스로의 임무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의료계가 자체적인 질 평가 향상 노력이 가시적으로 보여서 국민들이 이를 신뢰하는 일이 없었던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질을 평가해서 국민에게 알려줘야 하는 줄 공공부문의 역할은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평가의 목적이 의료비 지출을 줄여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겠다는 속셈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것도 우리에게 해당하지 않는 명제이다. 우리나라의 공보험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용 지출의 효율성이 우리 건강보험체계의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윤을 남기겠다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진료비 지출을 걱정하는 것은 시스템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일이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달라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다. 제한된 자원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분야에게 과도한 돈이 투입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분야에는 필요한 돈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진료의 질과 비용은 정의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고, 질이 나쁠수록 비용 지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국내에서도 밝혀진 일이다. 이른바 불량한 질로 인한 비용(Cost of Poor Quality)이다. 진료의 질을 지속적으로 평가해서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불필요한 지출을 막는 것은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의 '권한'이 아니라 법에서 명기한 '의무'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