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ICSID에서 국내 법조인이 중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다. 회원국의 의무 이행이나 국위선양 측면에서 보자면 일견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김&장의 수장 장수길 변호사가 지난 10년 간 ICSID 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느냐 결렬되느냐의 갈림길에 선 현재 상황에서, 게다가 그 한미 FTA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들어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허투루 듣기 어렵다.
미국인[한국인] 투자자가 한국[미국]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인 투자자-국가 소송에 대한 심판을 하는 몇 안 되는 국제 재판소 중 하나가 바로 ICSID이고, 장수길 변호사는 바로 이 투자자-국가 소송에 대한 재판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법무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 국내 주요 부처들까지 '국내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비판했던 제도지만, 이 제도를 한국 측 협정문 초안에 '자진해서' 넣었던 통상교섭본부는 6일 현재까지도 "ISD는 미국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라며 이 제도에 대한 비판에 귀를 막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김&장, 한미 FTA로 어떤 이익 얻게 될까?
ICSID 재판관은 일반적인 재판관과 다르게 '투자자-국가 간 중재 서비스를 제공한 데 대한 보상'을 받는다. 2002년 현재 ICSID 중재위원에게 지불되는 수수료는 하루 2000달러 수준이다. 국제중재심판에서 심판관이 받는 평균 수수료인 22만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그들의 이해관계가 그저 몇 푼의 금전적인 이익에만 걸려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 법조계에도 한국의 '전관예우'나 '회전문 현상' 같은 관습이 있어, ICSID 심판관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초국적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적으로 돈벌이 할 공간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그들에게 떨어지는 알짜배기 이익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내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책을 펴낸 홍기빈 씨는 "국제 중재심판의 경험이 있는 법률가들은 그 숫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한 법률가의 표현대로 서로 뻔히 다 아는 일종의 '클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정 기업이 제기한 소송의 중재심판에서 그 기업의 법적 대표로 일한 법률가가 다음번에 그 기업이 제기한 다른 소송에서는 중재심판의 심판관으로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런데 중재심판에 나올만한 법률가들에 관한 정보에서도 그렇지만 그들과의 인적 친밀성에서도 국가보다는 초국적 기업이 더 나을 수밖에 없고, 그런 법률가들은 국제 중재심판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평판을 쌓아 계속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초국적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관련기사 보기)
한미 FTA에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도입돼 한국과 미국 기업 사이에 혹은 미국과 한국 기업 사이에 소송이 발생하면 김&장은 한국 정부의 대리인 또는 한국 기업의 대리인으로, 심지어 미국 기업의 대리인으로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김&장에는 무려 100명이 넘는 미국변호사가 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시아 최대의 로펌으로서 국내에서 국제통상 관련 소송을 독차지 하다시피 하고 있는 김&장으로서는 한미 FTA에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들어가면 계량적으로도, 비(非)계량적으로도 큰 이익을 보게 되는 셈이다.
김&장 회전문, 한미 FTA에서도 잘 돌아가
물론 이런 사실 몇 가지만 가지고 김&장과 한미 FTA를 엮어 음모론을 꾸며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근 국내 고위 경제 관료들을 부쩍 많이 영입해 구설수에 오르는 등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김&장이 한국의 법률 체계 자체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큰 한미 FTA를 관망하고만 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장수길 변호사 외에 한미 FTA 관련 인사들 중에는 눈에 띄는 김&장 출신이 여럿 있다. 누구보다도 차기 총리로서 한미 FTA 협상의 막바지 국면을 진두지휘할 것이 확실시되는 한덕수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장 겸 대통령 한미 FTA 특보가 김&장 고문을 역임하다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협상 중 뒤늦게 꾸려진 'ISD 검증 민관 태스크포스'의 민간 측 위원장도 김&장의 핵심 멤버인 신희택 변호사가 맡았다. 신희택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사법연수원 수석졸업으로 김&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단, 신희택 변호사는 5차례에 걸친 회의에서 ISD의 잠재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최근 임종인 의원(무소속)의 용역으로 '한국 사회의 성역, 김앤장 법률사무소'란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만든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은 "김&장이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밀어줬을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면서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양국의 통상 관련 분쟁 및 투자 관련 분쟁에서 김&장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ISD 용역 연구, 외통부 출신 학자가
사실 '한미 FTA 체결' 자체를 자신의 존립목적으로 하다시피 하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의 경우,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장을 비롯해 협정 체결로 이득을 보거나 통상교섭본부의 편을 들어줄 사람의 의견만을 편향적으로 청취하고 이를 정부 입장으로 선전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가령,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2005년 11~2월 '투자자 대 국가 간 분쟁사례 연구'와 2006년 7~8월 '한미 FTA 투자 관련 분쟁해결절차 관련 법률문제 검토' 등 2차례에 걸쳐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으나, 이 두 연구를 맡은 당사자는 1992년부터 10년 간 외교통상부 통상 라인에서 외무고시 출신 공무원으로 일하며 통상교섭본부와 끈끈한 인맥을 다진 이재민 한양대 교수였다.
사실상 마지막 공식 협상이 될 한미 FTA 8차 협상이 목전으로 다가온 지금,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합하려는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그 와중에 김&장과 같은 집단의 권력은 얼마만큼 강화될른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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