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반년 만에'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29일 대전에 있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생명공학 산업은 우리 한국에 딱 맞는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며 생명공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황우석 사태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도 몇 마디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가 다 나서면 잘 될 것 같지만 정부가 나서서 도움이 안 되는 분야도 있다"며 "이 분야는 정부의 절제와 역할이 많이 필요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황우석 사태를 보니 영웅은 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며 실험실의 수직적 위계질서도 언급했다.
정부가 특정 과학자나 특정 분야를 '찍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점이나 '실험실 민주화'의 중요성을 노 대통령은 아주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알게 된 모양이다. 뒤늦게나마 교훈을 얻었다고 고백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사태에 대해 '교훈'을 언급할 때인가? 조금 철 지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의 기억을 들춰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긴 '침묵'…핵심 관련자들은 모두 다 '면죄부'
온 나라가 수 개월에 걸쳐 찬·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갈등 양상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계속됐고 심지어 한 사람이 분신자살해 생명을 잃기도 했다. 수 년간 지원한 수백억 원의 국민 혈세가 공중으로 날아갔고, '줄기세포 스캔들'은 결국 역사상 유례 없는 '과학 사기극'으로 규정되면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2005년 12월 5일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진실 규명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후 진실이 상당 부분 밝혀진 지금까지 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평소 '설화'를 몰고 다니던 노 대통령의 체질을 염두에 두면 기이한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다물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박기영 전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경질 여론이 비등할 때도 계속 그를 감싸다 1월 23일에야 박 전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때도 청와대는 "박기영 보좌관이 공식 업무 수행에 지장을 느껴 사표를 제출해와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처리하게 됐다"며 표면적으로는 '박 전 보좌관이 잘못한 것도 없고 청와대도 책임을 물을 의사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박 전 보좌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순천대로 복직했다.
노 대통령은 박 전 보좌관뿐만 아니라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큰 다른 이들에게도 '면죄부'를 줬다. 정부 내의 비공식적인 황우석 박사 지원모임 '황금박쥐'의 핵심 멤버였던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총리 하마평에 오르다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제 교육 부총리 임명의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또 다른 '황금박쥐'의 멤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 낙선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심지어 1월 사의를 표명한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에게도 "아주 폭넓은 안목, 강한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과학 행정을 이끌어주신 오명 장관님께 감사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명 전 장관이야말로 황 박사 감싸기에 앞장섰으며 검증 안 된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부은 당사자인데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말인가?
'황우석'에 감전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황우석 사태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황우석 띄우기'에 나섰던 사건의 핵심 당사자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 10일 황우석 박사의 실험실을 처음 방문하면서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다",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다"는 극찬을 늘어놓으며 황 박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말 많던 '최고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을 만들어 황 박사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박기영 전 보좌관은 2005년 4월 25일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에서 "최고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은 노 대통령이 처음 제안했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위해 아이디어도 직접 말해 줬다"며 "황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노 대통령"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2005년 10월 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 간 연설 원고 내용까지 즉석에서 수정해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가지 논란이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압권이었다. 오죽하면 이 발언에 대해 한 원로 생명윤리학자가 "한국이 야만국임을 세계에 알린 망언"이라고 개탄했겠는가?
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진실을 가리려는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했던 12월 5일 '이만 덮자'는 식의 진실 은폐를 위한 선동까지 감행했던 셈이다. 이미 한 주일 전인 2005년 11월 28일 <PD수첩>의 취재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던 김형태 변호사가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만나 관련 내용을 전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노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발언을 했는지 그 속사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죄송합니다", 말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노무현 대통령의 '긴 침묵'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박기영 전 보좌관, 김병준 전 정책실장, 오명 전 과기부 장관 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것도, 선뜻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논평을 할 수 없었던 것도 본인의 '원죄'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 '황우석 띄우기'에 앞장선 마당에 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겠는가?
이제 '망각의 마술'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다시 한 번 분명이 말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죄송합니다" 하는 사죄가 먼저고 그 다음에 교훈을 언급해야 했다.
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일본 측에 과거사와 관련해 진정한 사과와 그에 합당한 실천을 요구해 왔다. 왜 노 대통령은 일본에게 그토록 당당히 요구해 온 일을 본인은 실천하지 않는 것일까? 평소 역사와 대화를 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노 대통령이 '무능'한 데에다 '거짓말'에도 능했던 지도자로 기억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노 대통령은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해야 할 발언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수순이 틀리면 모든 것이 잘못되는 법이다. 이것만은 결코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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