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잘 알고 지내는 김곰치 씨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저는 차에 앉아 부산의 어느 바다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드문드문 비를 뿌리는 하늘은 바다까지 축 늘어져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하나인 듯 연결되어 있는 것이 왜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고 오히려 긴장을 풀어주는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과학이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비밀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터널이 뚫린다고 산이 죽나?**
요 며칠 김곰치 씨는 전화로 저를 때도 없이 괴롭혔는데 이번에는 많이 밝아진 목소리입니다. 지율 스님이 의식을 회복했고 잡곡도 드시고 몸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답니다. 스님과 함께 아파했다 함께 회복하는 사람이 비단 김곰치 씨뿐만은 아닐 것이지만, 며칠 전 그는 밤이고 낮이고 전화를 걸어와 스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다며 그야말로 울부짖었습니다. 왜 형은 같이 울지 않느냐며, 왜 나와 함께 공명하지 못 하냐, 원망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그 울음과 함께 튀어나온 공명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지만 그의 울음에 내 마음도 분명 많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의 울음에 함께 울어주지 못할 정도로 지율 스님과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았습니다. 이곳 부산에서 도롱뇽전시회를 할 때도 가기로 했었으나 결국 이런저런 일에 떠밀려 가지 못했고, 부산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천성산 공사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김곰치 씨를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수준이었고, 그만큼 저는 맡고 있는 일이나 저를 둘러싼 세상사가 우선이었고,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사실, 처음 저는 스님이 천성산에 뚫리는 터널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터널이 뚫린다고 산이 죽나, 그럼 그 많은 터널 뚫린 산들 이미 다 죽었나, 개구리 도롱뇽들이 다 사라졌나, 그에게 따졌습니다. 솔직히 제가 하는 일이 서울 출장이 많은 일이라 고속철을 탈 때마다 '터널이 뚫린다면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많았거든요.
***전태일과 지율, 같으면서도 다르다**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환경운동가는 아닙니다. 그저 10여 년 노동조합의 간부로서 일을 했습니다. 다른 일보다 비교적 우리 쪽 일이 단식이 잦은 편이라 단식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은 편입니다. 김곰치 씨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공개 서신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지율 스님이 하셨던 단식과 전태일이 하셨던 분신은 어떤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한편에선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두 경우 모두 나를 희생한 사랑이었고, 약자가 강한 자에 마지막까지 밀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거는 최후의 선택이었다는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분신은 최소한의 희망마저 없을 때 하는 것이고, 단식은 그래도 지금 세상과의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970년 당시. 만약 스물 세 살의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노동법을 준수하라, 며 단식투쟁을 하였다면 과연 그때의 정권이, 우리 사회가, 반응을 했을까요?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 포기할 때까지 두들겨 팼거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그냥 패서 죽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태일은 1970년 당시의 시대와 어떤 대화도, 어떤 여지도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스스로의 몸에 불을 당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지율 스님이 어떤 치료도 거부하시며 마지막 혼수상태에 이르고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저는 아 드디어 스님께선 저를 포함한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희망마저 버리셨구나, 지금이 아닌 다음의 세대에 넘기셨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지금까지 그저 지켜보거나 그냥 듣고 넘기기만 했을 뿐 제 스스로 아무런 몸짓도 없이 미적거렸던 것이 후회도 되었습니다.
***환경? 당장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저는 환경보호를 위해 단식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환경? 당장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직장에서 잘리거나, 당장 바로 잡아야 할 엄청난 사회적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환경이 파괴되면 결국 인류가 공멸할 것이라는 보편적인 걱정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은 어쩐지 아직은 시간과 기회가 남은 일 같고, 더군다나 천성산의 터널공사가 인류의 공멸로 이어질 만큼의 큰일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장기간의 투쟁으로 인해 저는 처음의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터널이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산의 수많은 생명들을 죽인다, 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만약 천성산의 경우 터널이 수맥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이미 저를 포함한 환경에 무지한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버린 지하수와 터널의 상관관계는, 향후 모든 터널공사에 제기될 것입니다.
그 관계는 이제 전문가의 상식에서 일반인의 상식으로 넘어 왔습니다. 터널이 뚫리지 않는다고 불평밖에 하지 않았던 저와 같은 사람도 이제는, 쉽게 터널이 뚫리고 그로 인해 작은 생명들이 쉽게 죽어간다면, 결국은 멀게만 느껴지는 인류의 공멸도 훨씬 빨리 다가올 것이라는 걱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관세음보살처럼 될 수 있다면…**
아무튼, 김곰치 씨는 이제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저에게 깨어나신 지율 스님이 혼수상태의 기간 동안 아무런 기억을 못하시고, 꿈에 화덕에도 들어갔었고, 관세음보살님도 뵈었다는 소식도 전합니다. 그렇게 뵌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었다는 말에 저는 가슴이 쩌릿해집니다. 만약 꿈에서 뵌 관음보살님이 그렇게 눈이 부셨다거나, 그렇게 지복하셨다는 말씀이었다면 이렇게 쩌릿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쩐지 깨끗했다는 세속적 용어가 정말 스님이 관음보살님을 뵌 것 같이 제게 와 닿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문득 오랜만에 절이라는 곳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잔뜩 흐리다 못해 바다와 한 몸이 되어버린, 하늘을 향해 있던 차를 돌려 무작정 시외로 달리다보니, 마침 해동 용궁사라는 절이 나옵니다. 절의 입구에는 참으로 묘하게도 이곳이 지율스님께서 뵈었다는 관세음보살님을 모셨고,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첨언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드문드문 비를 뿌리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끊임없이 들어갑니다.
무엇을 소원할까. 어쨌거나 지율 스님 때문에 오게 되었으니 스님의 건강 회복? 아니면 천성산의 공사 중단? 아니야, 스님은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잖아.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했으니 이 참에 내 소원이나 빌자. 돈이나 왕창 벌게 해 달라고 할까. 저는 그런 잡다한 생각들을 하며 일주문을 지나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자리를 향해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소원을 빌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습니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던데 효과가 있을까? 누군가 물었고 에이, 방금 빌었는데 조금 기다려봐야지, 하는 대답이 들립니다. 그러고 보니 높이 선 관세음보살님 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간절한 표정으로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이 자리에 혹시 소송의 당사자가 함께 와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당사자가 각자 소송을 이기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 때 과연 관음보살님께서는 누구의 소원을 들어 주실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저 또한 잠깐이나마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했던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관음보살님의 입장도 참 골치가 아프시겠다 싶어, 슬쩍 눈을 들어 관음보살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과연 관음보살님께서도 골치가 아프신 눈치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음보살님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애처로운 삶이요,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하, 그제야 저는 빌어야 할 소원을 결정했습니다. 그저 관음보살님이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애처로운 삶이요, 생명이라는 생각처럼, 우리 인간들 모두도 관음보살님처럼 똑같이 보고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참으로 멋진 세상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담아 합장하고 다시 관음보살님을 올려다보니 님께서 곁눈으로 제게 빙긋이 웃습니다. 그 눈웃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가 그럴 리가 있나 싶어 다시 올려다보니 화강암으로 새긴 관음보살님의 얼굴에 눈동자는 없고 그저 공허한 긴 눈 꼬리만 있습니다. 아마 제가 헛것을 보았나 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애처로운 생명이다"**
다시 저는 수많은 소원을 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며 왜 이 절은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는 말만 있고 다른 말은 없는 건가,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에게 돈 받고 소원만 들어줄 게 아니라 세속의 때를 벗을 수 있는 몇 마디 말은 있어야지 않나, 이런 생각들이 들며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아, 그런데 관음전을 내려와 돌로 된 다리를 건너는데 그 문이 불이문(不二門)입니다. 너와 나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그리고 돌 위에는 다른 말도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애처로운 생명이다. 그러니 모두 사랑하여야 한다."
아, 그런데 왜 처음에 들어올 때 이 글들이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왕창 돈이나 벌게 해 달라는 소원 때문이었을까요. 비로소 저는 환경보호를 위해 왜 하필 속세를 떠난 지율 스님이 나섰을까, 했던 의심이 풀렸습니다. 오히려 모든 생명을 전체로 보는 종교인의 시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세속에 사는 우리는 저마다의 이익에 급급해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문제조차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마당에 하물며 인간도 아닌 작은 생명들에 대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엄두를 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실, 저는 좀 둔한 편입니다. 더군다나 노동조합 일만 하느라 환경에 대해서는 무심했습니다. 그러나 지율 스님으로 인해 환경에 대한, 작은 생명에 대한 이해가 생겼습니다. 다행히 스님께서 단식을 중단하고 건강을 회복 중이시라니 둔한 제가 따라갈 기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흐린 하늘이 바다에 닿아 서로 구분 없이 하나가 되어 있음이 오히려 사람에게 긴장을 풀어지게 하고 편안하게 하였듯이, 저 하잘것없어 보였던 초록의 나무와 풀과 도롱뇽이 저와 동일한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이 진정으로 제게 와 닿는다면 바로 그게 공명이 아닐까 조심스레 짚어 보며, 스님의 쾌유를 빕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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