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의 세계화? 포르투 알레그레의 세계화!

[화제의책] 세계화의 '가면 벗기기'

올해 1월부터 <프레시안>에 '격동, 세계 경제'를 연재하고 있는 일본 리츠메인칸 대학의 이강국 교수(경제학)가 이에 앞서 2004년 하반기에 반년 간 인기리에 연재했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의 내용을 대폭 보강해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후마니타스, 2005)를 출간했다.

특히 이 교수는 뒷 부분에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내용을 추가해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불안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씹을 기회를 마련했다. 이 연재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김숙경 박사(경제학, 노동연구원)의 서평을 싣는다. <편집자>

***다보스의 세계화? 포르투 알레그레의 세계화!**

세계화(globalization)는 이제 우리 모두에게 일상적인 용어가 되다시피 했지만 그런 만큼 그 의미와 본질도 분명하게 이해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과연 경제적 세계화란 일반적으로 정의되듯이 교통 및 통신 기술의 발달에 기초한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이며, 그것을 수용하기만 하면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성장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 진행 중인 세계화에는 그와 같은 정의로 포착될 수 없는 다른 본질이 있으며 인류 전체의 번영이라는 축복도 한낱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세계화가 어느덧 진부한 말이 되었을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은 이상 그 실체와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려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부 대학원 이강국 교수의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후마니타스, 2005)은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현상의 본질과 영향을 분석하고 이와 더불어 세계화와 관련지어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세계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세계화와 관련된 저서와 번역서들이 적잖게 출간되어 있음에도 이 책이 갖는 장점은 또렷해 보인다. 세계화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연발생적 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계의 구조적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세계화의 본질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세계화를 둘러싼 여러 쟁점들에 대한 경제학계의 이론적·실증적 논쟁들을 되도록 평이하게 전달해 비전문가를 위한 소개서로도 적당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관련 논쟁들을 소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다. 저자는 세계화가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경제의 통합 그 자체는 축복도 재앙도 아니라고 결론짓고 있지만 각 쟁점들에 대한 저자의 접근에는 현재 진행 중인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면 이 책에서 다뤄지는 여러 쟁점들 중 몇 가지를 추려서 살펴보자.

***'자본의 새로운 돈벌이 전략'이 세계화의 본질**

첫 번째 쟁점은 세계화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문제다. 경제적으로 세계화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 그리고 자본의 투자 활동 등 여러 가지 경제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현 시기 세계화의 차별적 특징을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톰슨(Grahame Thompson)과 허스트(Paul Hirst) 같은 논자들은 이와 같은 정의에 기초해 현재의 국제경제는 1870~1914년에 비해 덜 통합되어 있으며 따라서 세계화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1914년 이전의 상황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나타난 구조적 변화들을 간과함으로써 현 시기 세계화의 본질을 포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 구조적 변화와 그에 대응한 자본의 전략 그리고 국내외적인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주목하는 연구들에 기초해 세계화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함으로써 그 본질을 분명히 한다. 세계화는 단순히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필연적인 변화 과정이 아니라, 1970년대 초반 심각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국가의 전략적인 대응으로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것이다.

"이윤율 좇아 팽창해야만 하는 자본의 속성을 생각하면 자본주의는 그 기원부터 국제적이었고 1차대전 이전도 높은 국제화 수준을 보여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1970년대 이후에 새로이 발전하고 있는 세계화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며, 당시에 역사적으로 전개된 자본주의의 동학과 역관계의 변화를 고려할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세계화는 역시 1970년대 초반 심각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한 자본의 축적전략이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세계화의 주체는 역시 '자본'이며 이들의 힘과 이해 그리고 압력이 세계화의 길을 여는 정책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41쪽)

자본의 수익을 회복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통한 '금융화'이며,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압력과 금융자본의 세력 강화를 배경으로 유럽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각각 1980년대와 1997년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국제통화기금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강제되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이 선진국들과 개도국들로 확산되면서 세계화가 촉진되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세계화가 국가를 약화시켰다고? 그 역할이 변했을 뿐!**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 문제이며, 이는 세 측면에서 검토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시장의 개방과 국제무역의 자유화가 투자를 촉진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제무역은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을 촉진하여 생산성을 높여주고, 국제적 자본이동은 후진국의 부족한 투자 재원을 메워주고 투자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저자는 자본 자유화와 무역 자유화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이론적·실증적 논쟁들을 소개하면서 그 근거가 취약하거나 논쟁적임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금융개방 이후 개도국들을 강타한 수많은 금융위기의 역사를 볼 때 자본 자유화는 경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무역 자유화의 효과도 역사적인 국제 경제 및 정치의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계화의 이득은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그 비용과 위험이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저자는 세계화가 노동자들과 전 세계의 빈곤 및 소득분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한다. 저자는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일국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소득분배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국 노동자들 간 임금격차의 확대에는 국제무역보다 급속한 기술변화와 공장폐쇄의 항상적 가능성이 갖는 위협효과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며 세계 전체의 빈곤 악화에 대한 세계화의 악영향도 과도하게 주장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 간 임금격차의 확대와 전 세계적 빈곤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책임을 세계화에만 일방적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세계화가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근거는 미약하며 소득분배를 악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화는 국가의 역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오마에 겐이치(Ohmae Kenichi)로 대표되는 논자들은 세계화로 인해 국민국가의 경제적 관리능력이 점차 약화되고 자본의 유치를 위해 국가개입은 더욱더 축소되어 종국에는 국가라는 정치적 제도형태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3의 길'을 주창한 사회자유주의자들 역시 국가개입과 국가의 경제관리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며 국가에 대한 향수와 국가의 약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한다.

현 시기 세계화가 사회복지의 축소 및 국가의 거시경제의 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쓰기 힘들도록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화로 인해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변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 이전 시기에는 거시경제의 관리가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면, 최근에는 교육이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경제 정책들 즉 국가 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미시적인 정책들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솝(Bob Jessop)의 용어를 빌어 이와 같은 국가 역할의 변모를 케인즈주의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에서 슘페테리안 근로국가(Schumpeterian Workfare State)로의 변화라고 지칭한다. 또한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자세도 국가의 약화 테제에 대한 반증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국가 역할의 등장은 변화한 상황에 대응한 국가의 개입 방식의 특정한 변화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모든 나라에서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요하는 주체가 국가이며 국제적으로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준국가 기구가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요한다는 사실 자체는 국가개입의 축소가 아닌 국가개입의 목표 및 형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 주도 발전론의 흥망성쇠**

마지막으로 금융세계화와 관련지어 한국경제의 역사적 변화라는 문제가 분석된다. 먼저 저자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을 둘러싸고 전개된 시장주의자와 국가주의자의 논쟁을 검토하면서 국가주의자의 손을 들어준다.

주류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성장을 라틴아메리카의 실패와 대비하면서 개방과 자유화가 성장의 요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국가의 엄청난 금융지원과 세제지원 등에 기초한 선별적 산업정책과 강력한 자본통제 및 세계경제에 대한 전략적 통합이 성장을 촉진했다는 국가주의적 설명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나아가 이와 같은 정책의 성공 요인을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특질에서 찾는 '발전국가' 개념에 기초하여 한국경제의 성장을 설명한다.

발전국가란 "사회집단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이 크고 동시에 관료의 능력이 뛰어나며 발전지향성이 큰 정부"(306쪽)이며, "이런 국가들은 기업과 협조적이면서도 기업의 성과에 기초하여 특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자본을 규율하는 독특한 정부-기업관계를 확립"(306~7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우위 하의 협력적인 정부-기업관계가 성장을 가능케 한 열쇠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저자는 발전국가라는 개념을 축으로 1960, 7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을 설명한다.

발전국가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면, 그 붕괴는 극적인 파산으로 귀결되었다.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고 금융시장이 발전하자 정부에 대한 기업의 자금 의존도가 점차 줄어들고 정부-기업관계도 변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재벌들은 더 많은 자유와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정부의 개입과 경제관리능력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발전국가의 가장 큰 특징인 정부 우위의 정부-기업관계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대내외적 금융통제 때문에 가능했는데, 이 토대가 취약해지면서 그러한 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 사상이 점차 득세하고 대외적인 개방 압력이 가해지면서 1990년대에 발전국가는 거의 해체되고 금융자유와 개방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결국 1997년 경제위기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또한 위기 이후 거의 전면적으로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개방은 "한국경제에게 약이 아니라 독"(p.366)이었다고 평가한다.

***"선진국과 신흥시장에 집중, 그것이 세계화의 본질일 수도"**

세계화의 본질과 영향 그리고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가급적 쉽게 전달하고 있는 이 책은 경제학도뿐만 아니라 비전문가를 위한 대중적 소개서로 손색이 없다. 다만 몇 가지 측면에서 아쉬운 점을 지적해 보자.

우선 저자는 모든 경제적 흐름들이 선진국과 일부 신흥시장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초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생산의 세계화 역시 그러하며 경제적 통합도 미국, EU, 일본 등 3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세계화의 한계로 해석한다. 이것은 세계화가 말 그대로 전 지구를 아우를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그 한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화는 전 세계적인 경제적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인 과정이 아니라 '자본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유형의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볼 때, 자본의 이윤 증대를 목표로 하는 '선별적 포섭과 배제'가 오히려 그 특징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globalization'을 '지구화'가 아닌 '세계화'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세계화와 선별적 포섭이라는 문제는 개도국과 후진국들에 대한 세계화의 차별적 영향 문제와 관련지어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지역에 따른 1인당 GDP 변화(217쪽)를 보면, 세계화가 진전된 1980년대 이후 모든 지역에서 성장률이 그 이전 시기보다 낮아졌지만 특히 동유럽·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개방과 자유화 정책 덕분인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듯이 이러한 지역적 격차가 전적으로 세계화의 선별적 포섭으로 설명될 수는 없겠지만, 양자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세계화의 특징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장의 작동 자체는 언제나 국가를 필요로 하며 특히 노동력과 화폐의 관리를 위한 국가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기본 입장에 기초해볼 때,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역할 변모를 이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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