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영화제작자와 스타배우들 사이의 몸값 논쟁에 있어 영화인은 아니지만 그 한켠에 줄곧 낯익은 인물이 한 명 서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열린우리당의 민병두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 민 의원은 지난달 28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마련한 '영화산업 정상화를 위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권력 구조화와 독점화가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며 "법과 제도로 문제 해결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민병두 의원은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으로 국내 영화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선 상태다. 국회에서 바라본 한국 영화계의 문제. 한국영화는 지금 과연 위기인가 아니면 새로운 전환기인가. 다음은 민병두 의원과의 일문일답.
-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겠다는 말은 이 문제에 대해 법제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민병두 의원: 그렇다. 영화계에서는 그동안 대기업 영화사들이 영화산업 전반을 수직계열화, 곧 독점화하는 문제에 대해 1950년대 미국이 만들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는 일명 '反독점법'같은 것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여러가지 우리의 현실에 맞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긴 하지만. 적어도 대기업 독점 문제나 최근 갈등이 불거져 나온 매니지먼트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이나 영화진흥법 등을 손질해 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영화계를 포함해서 각계의 의견을 면밀하게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영화계 내 각 이해단체들을 초청해 공청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내부적으로 조금 더 논의하자는 의견이어서 연기된 바 있다. 독점적 전횡이 앞으로도 영화산업 발전에 큰 장애요소가 된다면 당연히 이를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법제화를 적극 검토하겠다.
- 최근 영화계에서 발생한 일련의 갈등은 국민에게 한국영화계가 '잘나가고' 있다더니 그렇지 않구나 하는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가운데 민 의원은 제작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민: 누구의 편에 섰다고 얘기하는 건 좀 곤란하다. 당초 제작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때는 제작자와 스타배우들 간의 대립각이 이렇게까지 첨예하게 형성될 때가 아니었다. 당시 기자회견은 그보다는 조금 더 큰 틀의 입장에서 진행됐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제작에 있어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자,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안된다고 하는 제작자들의 위기의식을 공론화하는 장이었다. 그게 갑자기 제작자와 매니지먼트사의 일대일 싸움으로 비화됐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지면서 갑자기 얘기가 비본질적으로 흐르게 된 거다.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
- 제작자들이 지금 이대로 가면 안된다고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했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민: 한국영화산업은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약 10년간 정말 눈부시게 성장해 왔다.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1993년 전국 관객수는 2000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엔 1억30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양적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적으로는 여러가지 시스템과 조직과 돈의 흐름 등 모든 게 다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그 변화가 순식간에 이뤄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엉켰다는 것이고 그걸 지금 정비해야 할 때라는 거다. 예컨대 부율이라는 게 있다. 극장과 영화사측이 입장권 수익을 나눠갖는 방식을 말하는 것인데 이 부율이 과거 10여년전과 지금 전혀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를 거는 경우에는 극장과 직배사가 4:6으로 나눠갖는데 한국영화를 걸 경우에는 극장과 국내 영화사가 5:5로 나눈다. 이건 한국영화가 시장 점유율 10%대에 있을 때 만들어진 비율이다. 근데 지금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대에 육박한다. 제작자들이 상황이 변한만큼 4:6 혹은 3:7을 적용해야 한다고 아우성 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제작자들 입장은 이런 거다. 영화 한편 만들어 극장한테 왕창 떼이고, 스타들한테 떼이고, 마케팅 비용으로 또 엄청 떼이고 도무지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남는 게 없는데 영화를 어떻게 만들란 말이냐 하는 거다. 제작자들의 말만 무조건 맞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제작자들이 영화를 더 이상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이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영화계 안에는 지금 시대적으로 부적절하고, 개선이 필요한 제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 제작자들의 주장으로는 이럴 때 매니지먼트사들마저 수익 지분을 요구하고 있어 큰 문제라고 한다.
민: 그보다는 그런 사례들이 현재 일반화됐는가 혹은 점증하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아직은 몇몇 큰 기획사들이 대형 스타급일 경우에 그런 요구를 하는 모양이지만 다들 그러지는 않을 거다. 지금의 갈등은 매니지먼트사들마저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인식의 문젠데, 미안한 표현이지만 제작자들 가운데는 매니지먼트사 그러니까 매니저들 '따위'가 감히 그런 요구를 하느냐는 인식도 숨어 있다고 본다. 매니미먼트사들의 과도한 수익 요구라는 건 사실 시장상황 스스로가 정화시켜주지 않겠는가. 자신의 소속 배우가 출연할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알아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떤 중견 연기자가 얘기한 것처럼, 영화계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는 곳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그보다는 매니지먼트사라는 존재가 이제 국내 영화제작의 중심세력이 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이들을 제작의 카운터파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제작자측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본다. 할리우드 영화산업 구조에도 캐스팅 디렉터라는 분야가 따로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도 이제 그런 전문분야가 생긴 셈이다. 조금씩 더, 서로를 인정하면 양측의 갈등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본다.
- 한국 영화계의 위기론이 이렇게 저렇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문광위원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민: 아니다.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관점의 문제다. 한국영화는 지난 10년간 규모면에서 10배 이상 성장했다. 그런데 올해와 작년의 성장률은 과거 10년의 성장세 가운데서 최하위, 그러니까 마이너스 성장율을 기록했다.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기준으로 한국영화의 현재 상태를 분석하는가 아니면 최근 1~2년의 수치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서로 관점이 달라진다. 내가 보기에 한국영화산업은 앞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진통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성장통이다. 이걸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 영화인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가 이러다가 홍콩 짝 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것 같지만 우리영화는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높다. 우리영화의 해외수출이 최근 2~3년 사이에 100%포인트씩 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갈등이란 것도 내수시장이 좁은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용은 증가하는데 수요는 한정된 시장이니까, 그래서 신규시장을 더 확대해야 하는데 이게 시간적으로 다소 '디스매칭' 되다 보니 그 안에서 만드는 사람끼리 약간의 갈등이 생긴 거라고 볼 수 있다. 근데 앞으로 시장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지금의 '성장통'도 치유될 거라고 보는 거고.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 영화계가 지나치게 스타성에만 의존하지 말고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들어 한류가 아시아권의 화두이긴 하지만 한류의 중심인 일본에서조차 한국이 스타위주의 전략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며칠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이란 작품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스필버그가 이제는 이야기의 풍부함, 그 깊이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스펙터클, 시각적인 볼거리를 가지고 주인공이 겪게 되는 내면의 혼란과 갈등을 표현하려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 그건 정작 영화가 중요시 해야 할 이야기의 힘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반면에 우리영화 <말아톤>은 어땠는가. 이야기의 힘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지 않았나. 바로 그런 힘을 우리영화가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론 논쟁이 줄어들 수 있다.
- 국내영화산업을 구조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면 가장 시급한 현안은 뭔가?
민: 많은 사람들이 일부 대기업 영화사들의 독과점 문제를 지적한다. 일단 맞다. 영화산업이 됐든 그 어느 산업이 됐든 독점은 문제다. 특히 영화처럼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화 컨텐츠가 특정 사기업에 의해 독점적으로 관리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미국도 1950년대에 이른바 반독점법을 만든 거다. 지금은 물론 그 법도 상당 부분 변질됐지만. 근데 이렇게 생각해야 할 거다. 반독점법이 왜 만들어지겠는가. 말씀드린 대로 어떤 대기업이 영화를 만드는 전 사업 분야를 장악하니까 그런 걸 거다. 실제 국내 대기업 영화사들은 현재 투자에서 제작, 배급, 극장사업, 마케팅, 비디오 DVD 등의 각종 부가판권 사업 전반을 가져가고 있다. 특히 대형 멀티플렉스를 소유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왜 그러겠는가.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 한 편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는 창구가 극장 한 분야에만 집중돼 있는 거다. 극장에서 영화 전체 매출의 70~80% 이상을 가져오는 거다.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러다 보니 영화사업을 시작한 대기업으로서는 이거 안 되겠구나, 극장을 소유하지 않고는 영업이익을 가져올 수 없겠구나, 멀티플렉스를 빨리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 영화사들이 배급사도 갖고 있고, 제작사도 갖고 있고, 또 무엇보다 멀티플렉스도 갖고 있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컨텐츠가 다양하게 멀티 유징되지 못하는 환경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독점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다양한 윈도우 산업이 개발되고 육성되도록 해 자연스럽게 여러 사업자들이 공존하고 또 그럼으로써 독점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방향을 적극 모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스탭들의 처우 개선 문제도 문화관광위 차원에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로 안다.
민: 그렇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종의 노동자로서의 권익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국회에서도 문화관광위에 앞서 환경노동위에서 먼저 거론됐을 정도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작자 스스로도 표준제작규약을 만든다고 하니까 일단 그 부분을 기다려 보고 만약 법률과 또 다른 제도로써 지원하고 협조할 일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다. 스탭들이 인간적으로 살 수 있어야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또 경쟁력도 계속 생겨날 거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이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확산돼 있다고 본다.
- 밖에서 봤던 영화계와 안에서 보는 영화계가 차이가 있나?
민: 차이가 많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니까 막상 영화가 재미없어지더라.(웃음) 영화가 만들어지는 복잡한 과정과 그 내부의 논란에 대해 관객과 국민이 '모르도록' 저희 같은 사람이 사실 뒤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영화전문기자 / 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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