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둔촌 주민들, 석면과 전쟁을 벌이다

[함께 사는 길] 석면 날리는 재개발·재건축, 해결방안은?

대표적인 석면 질환 중 석면폐와 석면폐암은 노출된 석면량과 상관관계가 있고 석면 관련 직업력이 있는 작업자가 그 주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석면질환 중 예후가 가장 좋지 않다는 악성중피종은 다른 질환과 달리 미량의 석면 노출에도 10년 이상의 잠복기를 거쳐 질환으로 발병할 수 있고 조기 발견이 어려울 경우 1년 내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석면 광산과 공장이 있던 충남과 부산 지역은 석면폐와 석면폐암의 피해자가 많은 반면 서울(111명)과 경기(106명) 지역은 악성중피종 피해자가 많은데 전국 악성중피종 피해자의 45퍼센트에 달한다. 서울과 경기 지역은 인구가 밀집되고 재개발, 재건축과 같은 대규모 석면 공사로 인해 석면 사용과 철거가 타지역에 비해 잦은 것과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장의 석면 공사가 우리의 기대만큼 안전하지는 않다는 불길한 징조인 것이다. 특히 전체 석면 피해인정자 중에서 젊은 세대에 속하는 20~40대 피해자 질환 중 대다수가 악성중피종이다. 석면 작업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석면에 적은 양이라도 노출된다면 치료가 불가능한 석면 질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석면과의 전쟁 벌인 과천 주민감시단

2017년 전후로 과천의 13개 주공아파트단지 중 6개 단지의 재건축이 시행되었다. 석면의 위험성에 불안해했던 재건축단지 인근 학교의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환경보건시민센터)에 의해 다수의 재건축 단지 아파트 건물에 대한 석면 조사에 누락이 있음이 확인되었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진행되었다.

석면 자재가 사용된 석면 건축물을 해체하는 경우 석면의 위치와 종류, 함유량 등을 조사하고 그에 따라 석면을 안전하게 제거한 후 건물자체에 대한 철거를 진행해야 한다. 석면에 대한 조사가 잘못돼 석면 철거 이후에도 해체될 건물에 석면자재가 남아 있게 되면 건물이 철거되는 시점에 안전장치나 조치 없이 석면 자재가 부서지고 날려 작업자는 물론 인근 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기에 석면 조사는 정확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조사의 결과로 만들어진 석면 조사결과서(석면지도 포함)대로 철거 또한 완벽하게 이뤄져야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석면 공사가 되는 것이다.

순수하게 석면에 대한 안전만을 최우선으로 했던 학부모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현장업체들과의 협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과천주민석면감시단은 석면 해체·제거를 위해 석면 이외의 구역을 비닐로 싸는 비닐보양 확인은 물론 석면 잔재물 확인과 폐기물 보관, 음압수치 확인 등 전반적인 석면 공사 현장을 점검하는 '현행법에 없는 주체들에 의해 현행법 이상의 기준이 적용되는' 감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과천은 '함부로 석면 철거하지 못하는 동네, 잘못 공사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지는 동네'로 업체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상식에 벗어난 재건축 석면 철거 현장

2018년 건국 이래 최대 단지라는 서울시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도 '석면 조사 누락'건으로 문제가 시작됐다. 같은 모양의 석면 장판(석면 함유량 20~30퍼센트의 고농도 석면장판)이 여러 세대에 깔려 있었다. 육안으로도 격자 모양의 갈색 사각 패턴이 확인됐지만 석면 조사자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둔촌 주공단지 인근 학교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소속의 학부모들이 다수 참여하고 인근 주민이 함께한 '강동구 석면감시단'이 석면 감시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확인됐다.

석면 조사를 진행했던 석면 조사업체는 영업 정지 처벌을 받았고 둔촌 주공단지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진행되었다. 학교 석면 건축물은 물론 재건축단지에서도 석면 조사 누락의 문제가 연이어 불거지자 고용노동부가 석면 조사업체의 석면 조사누 락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던 시점의 일이다.

그런데 공사가 중단되고 전면재조사를 시작하려던 시점에 인근 고층아파트에 거주하는 감시단에 의해 현장 안 작업자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사진, 동영상 다수 보유)됐다. 현장의 책임자들과 함께 들어간 둔촌 주공단지아파트에는 석면 장판이 있던 세대들의 거실바닥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석면 장판 잔재물은 시멘트 모르타르조각들과 함께 포대에 담겨 건물 밖 트럭에 실려 있기까지 했다. 고농도 석면장판이 '빠루'라는 장비로 부서지는 동안 건물의 창문은 깨진 상태거나 열려 있었다. 6000세대 거의 모든 둔촌 주공단지 가구가 이런 상태라고 해당 현장 책임자는 인정했다. 명백한 불법 석면 철거였다. 그러나 이를 처벌하고 관리해야 하는 노동지청 담당자는 이에 대해 석면 조사를 위한 준비행위라며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깨진 시멘트와 석면 장판에 대해서는 '폐기물'이라고 정의했다. 둔촌 주공단지에 대한 철거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과물에 대해선 폐기물이라 인정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처분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석면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폐기물은 일반건축폐기물이 아닌 석면 폐기물로 따로 분류해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지청은 부서진 석면 장판을 일반건축폐기물로 반출해도 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석면 철거 현장과 책임부처의 황당한 해석에 반발하며 학부모비상대책위는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와 함께 국회의원을 찾아가 호소를 하고 환경부와 불시 현장 실사를 진행했다. 그 사이 둔촌 단지 철거 현장의 석면 폐기물 불법처리와 위법행위에 대한 내부 업체의 제보가 있었고 그러한 제보를 바탕으로 현장증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담당 부처 간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불법행위를 한 업체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 해결이 요원해지자 조합은 불법행위를 한 업체가 아니라 학부모비상대책위와 시민단체를 '특수건조물침입'으로 고발을 하고 이러한 내용을 언론에 뿌리기 시작했다. 특수건조물침입죄는 '무리를 지어 위협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지니고 남의 주택, 선박, 건물 따위에 침입함으로써 성립하는 죄'이다. 둔촌 주공단지 재건축 현장 시공업체들과 협의하며 현장에 어떠한 제재 없이 들어갔던 학부모비상대책위에게는 당연히 적용될 수 없는 죄명이었고 고발에 대한 처분 역시 '무혐의'로 내려졌다.

재건축 현장은 신고한 작업자만 들어갈 수 있고 감리의 허가와 감리를 고용한 조합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한 폐쇄성 때문에 재건축현장의 석면 문제는 쉽게 들어낼 수 없다.

재개발지역도 다르지 않다. 2018년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3구역 재개발지역에서는 석면 슬레이트 조각들이 공사 현장에 널려 있는 것을 인근 주민들이 발견해 신고했다. 철거 작업 후 석면 폐기물은 이중 포장되어 안전하게 보관 후 처리해야 한다. 주민들은 공사 중지와 신뢰할 수 있는 자료공개를 요구했으나 구청은 석면 비산 측정 수치가 기준치 미만이라는 자료만 공개했다. 재건축의 경우처럼 일반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들어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더 이상의 해결책은 얻어낼 수 없었다.

현행법도 문제다. 실내에 사용된 석면 자재와 달리 외부에 설치된 슬레이트 같은 경우 작업자만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물 또는 습윤제(계면활성제 성분)를 뿌리고 철거하면 된다. 슬레이트 철거현장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기준은 물론 압력 차를 이용해(음압으로 설정) 석면 가루가 실내에서 외부로 날아가지 않게 걸러주는 음압기, 적정음압수치를 확인하는 음압기록장치, 헤파필터를 장착한 진공청소기 등 석면 비산 방지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현행법인 것이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석면으로부터 안전한 재건축 재개발을 위한 몇 가지

안전한 석면 공사가 되긴 아직 멀어 보이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국민의 관심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자 은밀한 석면 현장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제보하는 양심업체들이 제보를 해온다. 측정수치조작, 기준미달 장치사용, 불법행위, 공무원과의 유착, 허위보고 등 그들이 이야기하는 석면 공사의 문제점은 엄청나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시행되는 지자체에서는 공사에 앞서 안전하고 적법하게 공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석면 공사의 문제점을 충분히 반영하여 법적 기준(석면 조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 대한 감시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석면해체·제거 공정에 대한 전문지식을 담은 석면 교육을 실시하고 감시단을 운영해야한다. 석면 공사에서 중요하게 간주되는 적정음압수치나 석면 비산을 막기 위해 시행되어야 할 작업 등이 매뉴얼에만 있고 법령에는 담겨져 있지 않아 현장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미비점을 담아 법적 근거를 만들고 공사 후 잔재물검사와 음압측정기록 공개, 폐기물 처리확인 등의 감시단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현행법에는 석면 철거업체가 철거 이후 석면 조사업체에 조사를 의뢰해 석면 농도측정이나 비산측정을 하게 되어 있어서 '셀프검사'라는 비판이 있었다. 2019년 11월 ‘셀프검사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지만 위법한 업체에 대한 처벌은 몇 백만 원의 벌금에 그쳤다. 석면 공사를 감시해야 할 감리에 대해 엄격한 관리기준을 적용하고 불법행위를 묵인하는 감리에 대한 처벌을 선진국의 수준(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강화해야 한다. 석면 관련법 개정과 함께 석면 공사 하청 금지, 석면 공사자료 투명한 공개, 위법업체에 대한 강한 처벌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하청으로 인한 예산 낭비 및 부실공사를 막고 공사 중지에도 대표자명을 바꾸어 회사를 등록하고 불법행위를 계속하는 업체와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석면을 철거하는 업체 등 문제 많은 업체들을 석면 현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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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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