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자(ID: 나다나엘)가 신 의장 발언이 알려진 직후인 9일 오전 프레시안에 다음과 같은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반드시 경청해야 할 준엄한 '국민의 소리'라는 판단아래 글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한 사람을 살리면 모두를 살린다**
나다나엘 / 2004-07-09 오전 11:09:52
'참수'라는 말은 아무래도 낯섭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고 괴롭게 짓누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참수 동영상을 보고 구토를 하고 악몽에 시달린다 하지만, 사실 참수는 그 장면을 생각하는 모두에게 속이 메슥메슥한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하물며 가족들의 고통은 어떨까, 마음이 저려 다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하늘의 위로를 빌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한 국민이 낯선 땅에서 인질로 붙잡혀 살해위협을 받고 있을 때 과연 정부가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힘들어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여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느냐며 분노하기도 합니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노력으로 어린 한 생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일이 며칠 전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지난 24일 미 시카고를 떠나 인천국제공항을 향하던 대한항공 KE038편에 탑승한 생후 10개월 된 중국계 인도인 여아 솜머 양이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을 일으켰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3시간 30분이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탑승한 인도인 의사는 솜머 양을 살핀 뒤 '상황이 위급하다'며 병원으로 후송할 것을 권유했고,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승무원과 조종사들은 긴급회의 끝에 기수를 인근 밴쿠버 공항으로 돌려 솜머 양을 응급 처치키로 했습니다.
당시 기내에 탑승 중이던 승객 355명은 조종사와 승무원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솜머 양을 살리기 위한 항공사 측의 긴급 회항에 감동하였다고 합니다. "어린 생명을 구하는 일이 비행보다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이날 허비된 연료비 수천만 원쯤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항공사 측의 태도가 미덥게 여겨졌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보면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나서지 않겠냐는 말씀입니다.
목자의 태도에 대해 우리는 의아해 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도 중요하겠지만 그를 찾는다고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닌가,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길을 잃은 그 한 마리 양이라는 생각을 하면 대번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도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포기하진 말아달라고 얼마나 마음이 간절하겠습니까.
마침내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둘러메고 목자가 돌아올 때, 그 목자를 바라보는 나머지 양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잠시 불평했을지는 몰라도 눈물겹게 고마웠을 것입니다. 내가 길을 잃을 때에도 목자는 나를 찾겠구나,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웠겠습니까.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제라도 정부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기남 의장님,
옛말에 "혀 밑에 도끼 있고, 말 속에 뼈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에서 혀처럼 부드러운 것이 또 무엇일까요? 늘 촉촉하게 침이 고여있고, 말을 할 때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혀. 정겨운 인사말을 나눌 때나 노래를 할 때, 사랑의 입맞춤을 할 때, 혀는 더없이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그런데 부드러운 혀 밑에 도끼가 있다니. 혀 밑에 도끼가 있다면 당장 혀가 다칠 것이고, 무겁고 거북하여 다닐 수가 없을 터인데도 혀 밑에 도끼가 있다니.
그러나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의 혀 밑에는 도끼가 숨어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상대를 내리쳐 깊은 상처를 내게 하는 날선 도끼가 숨어 있는 것인지. 때론 숨긴 도끼를 감추느라 더욱 부드럽게 말하지만 숨긴 게 어디 가겠습니까? 저는 요즘 여당과 소위 실세라는 사람들의 말에 툭하면 튀어나와 도끼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말 속에 뼈가 있다니. 그러나 짧은 말 한 마디에도 말한 사람의 마음이 다 담기는 법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입니다. 마음이 담긴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말에는 뼈가 있어 말한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죠.
조심스레 사용하면 유용할 수 있겠으나 함부로 사용하면 더없이 흉측한 무기가 되고 마는, 우리 입 속의 세 치 혀!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국민 다수는 진심으로 이라크 추가파병에 찬성하고 있다."니요! "김선일씨의 살해를 위협하며 한국군의 파병 철회를 요구한 직후 한국 정부가 주저없이 추가 파병방침을 재확인한 것은 잘한 일이며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똑같이 하겠다."고요?
당신의 말은 "제가 똥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시는" 격입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우물이 있었습니다. 동네 한복판에 있었죠. 위치상 한 가운데가 아니라 심정적인 중심이었습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우물은 만남의 장소였고 대화의 장소였습니다. 우물이 있어 비로소 마을 사람들은 한 식구와 같은 '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물은 그렇게 마을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에다 똥을 누다니, 그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우물에다 똥을 눈다는 말인가요? 누구를 골려주려고 그랬을 수도 있고, 대판 싸운 집이 있어 그 집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 하나는 '제가 똥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그리고 재미있고, 통쾌합니다. 자신의 지나치게 경도된 생각과 큰 나라 어른들 만나서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우쭐해진 감정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모든 것들, 급하다고, 혹은 아무도 안 본다고 앞 뒤 가림 없이 행동하는 모든 것들, 모두가 우물에 똥을 누는 일입니다. 신기남의 장의 말과 행보가 이와같다면 지나친 일인가요?
'한미동맹'이라는 문패만 걸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은, 편하다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돈을 벌겠다고 공해물질을 함부로 발산하는 것과 매일반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다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고스란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입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물에는 똥을 누지 말기, 그 당연한 일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니!
한 마디만 덧붙여보겠습니다. 혹시 "개 한 마리가 헛짖으면 동네 개가 다 따라 짖는다"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시골에 살아보면 압니다. 밤이 얼마나 조용한지를. 다들 같은 시간대에 일하다보니 대개는 같은 시간대에 잠이 듭니다. 하루 일이 고되기도 하고 저녁에 일찍 잠을 자야 새벽일을 할 수 있는 법, 어느 시간이 지나면 동네가 깊은 어둠과 고요 속에 빠져들죠. 그리고나면 밤하늘의 별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어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더없이 조용한 마을에 동네 개들의 울음소리가 차고 넘친다. 그것 또한 마을의 한 풍경처럼 자리를 잡아 단잠을 깨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요란한 것이 사실입니다.
조용한 마을일수록 잘못 짖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주 시끄러워집니다. 또 한가지, 남이 짖는다고 무조건 따라 짖을 일도 아닙니다. 내가 짖을 일인지 아닌지를 잘 구별해야 하는 것이죠. 푸른 기와집에서 짓어댄다고 꼭 흉내내서야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도 아니겠죠. 허구한 날 남이 짖는다고 따라 짖는 것은 어리석은 습관일 뿐인 것을.
헛짖지 말되, 함부로 따라 짖지도 말 일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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