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오늘 행동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초록發光]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앞둔 다짐

시간이 없다. 앞으로 10년, 이 시간 동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긴 미래가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예산(carbon budget)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의 권고대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66%의 확률로 1.5℃ 이내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경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10년 남짓이다.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단서가 있으니 지금부터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면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반대로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할 수 있는 확률을 더 키우려면 우리가 쓸 수 있는 탄소예산은 줄어든다. 만약 2017년 기준 누적 배출량 세계 17위 안팎인 현실을 고려해서 기후정의의 실현에 앞장선다면 탄소예산은 더 줄어들 것이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현실은 답답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지난 10일 이슈페이퍼를 통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탄소예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2500만 톤을 넘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1990년과 비교할 경우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세운 2020년 배출량 목표가 5억4300만 톤이었다. 산업화의 역사가 짧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한국이 퇴행적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서 위기의식은 드러나지 않는다. 환경부가 준비하고 있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 계획에서 도전적인 목표가 제시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반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어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앞으로 수십 년간 탄소 잠김(carbon lock-in,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술혁신체제와 사회 기술시스템의 관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정점이 늦어질수록 훗날 더 급격한 감축을 감내해야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제로, 배출 정점은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고 있다. 그 사이 기후재난이 지구 곳곳을 강타하며 인간과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는 남의 일인 양 방관하고 있다.

아이리스 영은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구조적 부정의는 역설적으로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충실히 따를 때 발생하는데, 사회 구조 자체가 문제인 탓에 피해가 반복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영은 구조적 부정의에 연루된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구조적 부정의를 해결해야할 정치적 책임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물론 공유된 책임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특권을 누리며 더 큰 이익을 향유하는 개인과 집단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설령 피해자라고 해서 정치적 책임에서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닌데, 부정의한 일을 초래하는 구조가 재생산되는 데 관여하거나 그것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공유된 책임은 모두가 공범이라는 논리로 책임을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공유를 분명히 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에게 부여할 책임을 더 명확히 하고 구조적 변화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문제는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를 눈 앞에 두고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리스 영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기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연결의 부정"이다. 즉 우리는 다른 존재들에 의존해 살아가지만 이와 같은 연결성을 부정하거나 가까운 존재들로 한정함으로써 구조적 부정의를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게 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정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공간적 연결성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말들이 늘고 있지만 정치적 행동이 뒤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후위기가 아직 일상의 시공간 감각으로 안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계를 확인하고 때때로 몇 년 뒤의 일을 계획하지만 일상의 감각 속에 2050년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폭염, 한파, 폭우가 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적 공간 감각 속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아직 예외적인 현상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기후위기로부터 시공간적으로 단절되어있다는 생각 때문에 구조적인 기후 부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유별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감각의 간극을 메워야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축적될 수 있다.

흔히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기준점이 되는 1990년과 온실가스 배출 제로의 시점으로 이야기되는 2050년의 가운데 서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보면 어떨까?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분명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내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켜켜이 쌓인 오늘의 선택이 머지않아 2030년, 2050년이 된다는 시간 감각을 깨워 "오늘 행동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구호가 널리 퍼지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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