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탑동 매립의 악몽' 잊었나

[함께 사는 길] 대규모 토건사업 제주신항 계획, 철회되어야

한 생태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자연의 상실뿐만 아니라 인간의 오랜 손길이 담긴 역사문화 그리고 추억의 상실을 의미한다. 탑동해안이 그랬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을 내는 '먹돌'(용암이 바닷물과 만나 급격히 냉각되면서 만들어진 급냉현무암)이 깔린 탑동해안은 해녀들의 일터였고 도민 누구나 보말, 게 등 하루의 먹을거리를 장만하던, 끊임없이 베푸는 곳이었다. 그러나 30년 전 군사정권을 등에 업은 범양건영 등 대기업에 의해 매립되고 말았다. 매립된 땅 위에는 대형호텔과 대형할인매장으로 채워졌다. 이제, 또다시 그 앞에 8배 가까운 바다를 매립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바로 제주신항 계획이다.

실패한 탑동 매립의 역사

제주도의 해안은 우리나라 해안의 어떤 곳과도 다른 생태계와 경관을 갖고 있다. 용암이 흐르다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급격하게 굳으면서 형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 아름다운 바닷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제주의 해안은 온갖 개발로 신음해왔다. 제주의 해안도로는 관광객들에게는 멋있는 드라이브 코스이지만 조간대를 파괴하며 들어선 것이다. 또한 제주 해안 곳곳이 각종 이유로 매립되었다. 그중에 가장 큰 해안매립은 탑동해안 매립이었다.

탑동해안은 제주시내의 중심가에 있는 해안이다. 썰물이 되면 주민들이 몰려나와 빛나는 먹돌과 함께 저녁거리를 위한 바릇잡이(게, 고둥 등을 잡는 일)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던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각종 어류가 산란하는 제주 앞바다의 자궁이었다.

▲ 예전, 탑동해안에서 바릇잡이 하는 광경.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제주100년사>

때문에 30년 전, 탑동 매립은 도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다. 탑동 매립 반대운동은 1988년 3월 해녀들의 피해보상 요구로 출발했다. 탑동 조간대에서 생계를 꾸려가던 이들의 당연한 요구이고 권리였다. 이후 해녀들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대학생으로까지 반대운동은 대규모로 확대되었다. 반대진영은 매립면허 취소 요구, 개발이익의 지역사회 환원 요구, 탑동 매립 사업자와 행정당국이 합의한 병문천 복개 반대를 내걸었으나 결국 강행되었다. 위 3가지 요구 중 병문천 복개는 탑동 매립 사업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대운동이 확산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행정당국은 범양건영과 병문천을 복개해준다고 합의한 것이다. 탑동 매립의 피해에 대한 보상치고는 황당한 합의였다. 바다를 매립했는데 그 보상으로 하천을 복개해준다고 합의한 것이다.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행정과 기업 간의 밀월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병문천 복개로 인해 2007년 태풍나리 때 제주도 태풍피해 역사상 전무후무한 피해를 입게 된다. 탑동해안 또한 매립으로 인해 매해 월파 피해를 입는다. 결국, 범양건영 등은 매립한 땅을 낮은 가격으로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는다. 즉, 탑동 매립은 군사정권과 기업 간의 유착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탑동 앞바다를 매립하여 연안바다 환경을 파괴하고 얻는 대가는 민간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기업들의 상업시설 이윤 확보일 뿐이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탑동 매립은 도민들에게 상처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탑동 매립의 8배 가까운 바다를 매립하겠다고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다.

▲ 탑동해안 매립 공사.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제주100년사>

제2의 4대강, 제주신항 계획

정부는 지난 8월 2일, 제주신항 개발 사업(이하 신항계획)을 지정 고시하였다. 법정계획으로서 효력이 시작된 것이다. 신항 계획은 지난 2016년 12월 해양수산부가 '제주신항만 건설 기본계획'을 고시하려 하다가 기획재정부가 고시 보류를 요청하면서 몇 년 동안 멈춘 상태였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입장을 돌연 바꿔 신항 기본계획을 고시한 것이다. 신항 계획은 총사업비 2조8760억 원을 투입해 22만 톤 급을 포함한 크루즈 4선석, 국내여객 9선석, 130만 제곱미터 규모의 배후단지를 조성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이번 계획은 제주신항뿐만 아니라 전국의 항만 개발 계획을 포함한 것이다. 결국, 정부의 돈을 풀어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또 하나의 전국적인 토건사업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제2의 4대강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항계획에는 예전 탑동 매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대규모의 바다를 매립한다는 것이 현란한 수치와 장밋빛 전망 속에 숨어 있다. 제주도가 발표한 보도 자료에는 안 나와 있지만 바다 매립면적은 128만3000제곱미터인데 이는 탑동 매립(16만5000㎡) 규모의 8배로서 어마어마한 매립면적이다. 또한 발표된 지 4년이 지나고도 더 큰 논란으로 번져가고 있는 제2공항 계획처럼 제주신항도 과대한 수치로 부풀린 관광객 숫자에 짜 맞춘 전형적인 대규모 토건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신항 계획은 탑동매립 사례처럼 또다시 일부 거대기업들의 이익만을 위한 크루즈항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2공항과 신항계획은 해양자원을 남획하는 쌍끌이 어선처럼 제주의 자연을 어디까지 없애려 하는가. 공교롭게도 이 초대형 프로젝트 모두 원희룡 지사가 취임한 해에 유치한 것이다.

제주도민과 환경에 전혀 도움 안 돼

이 계획은 극심한 해양 환경 피해와 함께 해양 생태계 파괴에 따른 어장 파괴(고등어·한치 어장)와 그에 따른 어민 피해 문제만이 아니라 더욱더 다양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신항 개발이 시작된다면 지금까지 이어진 월파 피해가 동서 방향으로 더욱더 확장될 것이다.

이 사업은 대규모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전형적인 토건사업일 뿐이다. 이미 4대강사업에서 드러났듯이 토건사업을 통한 인위적인 공공부양 정책은 효력이 바닥났다. 낙수효과도 단기간일뿐더러 미미하며 오히려 가파른 물가상승과 실질소득 하락 등 서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4대강사업을 통해 남긴 것은 국토 황폐화와 '녹조라떼' 아니었는가.

▲ 제주신항 조감도. ⓒ제주시

또한 이번 계획은 항만 개발비용을 충당하고 사업 수익성(B/C분석)을 맞추기 위해 공유수면 매립 면적을 지나치게 넓게 계획한, 본말이 전도된 사업이다. 막대한 자본조달을 위해 매립지의 상업시설 분양과 임대를 통해 수익을 충당하려 하기 때문이다. 민자 유치를 통해 3분의 1에 달하는 건설비를 충당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이다.

강정에 이미 15만 톤 급 2선석을 배치할 수 있는 크루즈항만을 건설하였는데 제주항에 10만 톤 급 이상 4선석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예산낭비요 모순이다. 강정에 민군복합항을 계획할 때도 정부는 크루즈 입항을 강조했지만 완공된 이후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크루즈항만을 제주시에 더 확대하겠다는 것은 완벽한 모순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듯이 크루즈선 기항을 통한 지역 연계 경제효과가 거의 없다. 크루즈선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 관광객들이 제주시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이동하는 곳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으로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미미하다. 크루즈관광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를 무시한 채 국제적 관광지를 논하며 크루즈 관광 확충을 위한 신항만을 건설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현재 동문시장, 중앙로 지하상가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번 신항만 건설로 인해 상권이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제주신항만 추진 중단해야

정부가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2040) 수립에 제주제2공항과 제주신항만 건설을 '투 트랙'으로 한 제주특별자치도 발전방향을 제시했다는 것부터가 철 지난 토건 위주의 발전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언제까지 국토를 절단 내면서 비대한 토건산업을 유지하는 데 혈세를 낭비할 것인가. 제주신항 계획은 제주의 미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와 제주도는 지금이라도 제주신항만 계획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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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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