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400명의 故김용균...특조위 권고 제대로 이행돼야

[시민정치시평] 정치권 말 잔치 끝내고 특조위 권고안 전면 이행되어야

24살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공분, 전국 곳곳에서 밝혀진 촛불, '용균이 동료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는 유족들의 절절한 바램으로 지난 4월 '고 김용균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 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발족했다. 유례없이 국무총리 훈령으로 설치된 특조위는 김지형 위원장을 비롯 각 분야 전문가인 16명의 조사위원, 30명이 넘는 자문위원의 참여하여 지난 19일 조사결과보고를 발표했다. 조사대상은 5개의 발전사의 11개 화력발전소였고, 1만5601명 노동자 설문조사를 비롯 광범위한 조사가 진행되어 위험의 외주화, 민영화의 문제를 현장의 실태를 근거로 실증적으로 밝혀냈고, 22개에 달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특조위의 조사결과는 김용균 노동자 한 사람, 혹은 11개 화력발전소에 대한 조사를 넘어 매년 일하다가 죽는 2400명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것이기에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특조위의 권고는 무겁고 엄중하다. 700쪽이 넘는 조사보고 중 주요 내용만 보면 이렇다.

첫째, 특조위는 김용균 노동자가 운전 중인 컨베이어 벨트의 점검구에 상체를 집어넣어 작업을 했던 것이 한국 서부발전이 승인한 하청 한국 발전기술의 작업 지침서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작업지침에 '설비 운전 중 점검항목'으로 아예 명시되어 있었고, 벨트나 회전체 근접 작업이 일상적 작업 수행 방법으로 되어왔던 것이다. 김용균 노동자는 개별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지시한 작업지침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 것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구의역 김 군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기업이 작성하는 수많은 재해보고서의 사고원인은 '노동자 과실'로 채워져 있다. 실제 발전본부가 작성한 기간의 수많은 '중대재해 사고조사서'에는 사고원인으로 노동자 과실을 압도적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산재는 대부분이 노동자 과실로 발생하고,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실수이고, 산재예방은 노동자 교육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특조위의 조사결과는 산재사망을 둘러싼 기업의 사고조사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둘째, 특조위는 정부 정책으로 진행된 민영화, 외주화가 노동자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현장의 진단이 사실이었고, '민간개방을 통한 기술경쟁 도입과 그에 따른 비용절감'이라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의 목표는 완전히 실종되고 노동자 죽음으로만 이어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조사결과 발전5사는 민영화의 속도를 내려고 민간업체 입찰 자격의 공사실적을 50%이상 낮추고, 전기공사는 공사경험이 없어도 입찰이 가능하게 했고, 공동도급의 형태로 무경험 업체도 입찰이 가능하도록 했다.

게다가 비용절감은 커녕 하청업체에게 지급되는 도급비는 계속 증가해서, 발전사 하청업체들의 2017년 영업이익률은 최저 9.1%에서 19.5%에 달했다. 이는 2017년 상장사 평균 영업이익률인 6.6%에 비하면 2배 가까운 영업이익이 보장되고 있었던 것으로 비용절감에 역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청업체는 오히려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구조적으로 착복했다. 김용균 노동자의 임금은 원청에서는 446만 원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212만 원을 지급받았고, 이는 모든 하청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원청에게 받은 노무비에서 하청노동자에게 지급한 인건비는 47.8%에서 61%로 하청업체는 하청 노동자에게 지급되어야할 임금의 절반을 착복하고 있었다.

특히,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경상정비와 계획예방정비를 2명이 각각 하는 것처럼 인건비를 받아서 실제로는 1명이 초과 노동을 하는 방식으로 집행해서, 인건비 착복이 구조화 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은 기술경쟁 도입이 아니라 실적없는 민간업체가 대거 공정에 투입되는 결과를 낳았고, 비용절감이 아니라 원청은 비용이 상승하고,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으로 하청업체의 임금 착복과 배 불리기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안전관리 능력도 취약하고, 저임금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급박한 위험에 매일 매일 내몰리는 현실에 놓였던 것이다.

셋째, 특조위는 민영화, 외주화가 어떻게 위험을 증가시키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특조위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발전소 산재의 95%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 발생했다. 석탄화력 발전소의 산재승인 통계는 민간개방 입찰이 시작된 2013년 이후 증가했다가 2015년에 최고치를 보이고, 이후 최고치가 유지되었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로 확인한 손상 및 중독 사고도 같은 흐름이었다. 노동자 설문조사에서는 발전회사보다 자회사는 7.1배, 하청업체는 8.9배 높았다. 외주화된 경우가 월등히 높았으며, 심지어는 자회사와 하청은 별 차이가 없이 발전사 대비 높았다.

구조방정식 모형을 통해 분석에서는 원 하청 여부는 노동자의 불안전 상태와 불안전 행동을 크게 증가시키고, 작업 관련 손상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연료환경업무는 연속흐름공정으로 산업공학적으로도 한 개 공정의 문제가 바로 다른 공정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되어, 발전사 지휘감독 아래 공동, 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공정으로, 그 일부분을 도급을 준다는 것은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고, 실태조사에서 불법파견의 소지가 높은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를 외주화하면서 불법파견으로 적발될 가능성을 고려한 지시방식의 변화 등으로 새로운 위험, 갈등적 의사소통에 의한 책임 공백이 생겨났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상정비 분야는 정비인력이 보유한 기술력이 곧 정비능력으로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외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중적, 부분적 경쟁구조를 갖게 되어 기술력이 이전되거나 충원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게 된 것도 드러났다. 이는 사업주 단체나 경제부처가 주창해 온 민영화, 외주화의 실체가 전문성,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먼 정책실패였고, 그것이 노동자의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넷째, 원하청 구조는 안전을 위한 소통을 절차와 매뉴얼 증가로 경직화 해서 위험을 증가시키게 된다는 원하청 구조 위험의 근본적 특징을 밝혀냈다. 원 하청 구조는 발전소의 연속흐름공정을 분할 외주화 하면서 의사소통과정도 수직, 하방적 구조로 변화시켰다. 특조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6년 당진 현대제철 사고이후 원 하청간 소통을 중심으로 공정과 절차가 증가하여, 위험성 평가를 위해 4단계 공정이 26단계로 늘어났고, 사고 발생 공정이 20개에서 26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증가된 절차들은 책임소재에 대한 형식적 절차로 오히려 소통의 경직으로 위험이 증가했으며, 책임에 대한 하방 전가의 근거로만 되었다.

노동자들에게는 위험을 감수할 책임만 있고, 위험을 해결할 권한은 없는 현실로 귀결된 것이다. 구의역 김군, 조선업 하청 산재사망 등 원·하청 고용구조 자체가 위험을 양산하고,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구조화 하고 있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 정부, 국회, 보수 전문가들은 "고용구조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도급금지는 법제화는 세계 유례가 없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김용균 투쟁으로 국회를 통과한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도급금지 대상에는 구의역 김군도, 김용균 동료도 없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을 통과시킨 정부는 하위법령에서도 또 다시 이를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특조위 조사결과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된 이유는 위험업무 그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 외주화로 인한 원하청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책임의 공백' 상태가 발생해 위험이 방치되고, 외주화로 인한 원하청 위계 구조가 바로 하청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구조적 원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 밖에도 분진작업 노출, 산재 은폐등 현장 실태와 안전보건관리 체제 전반과 설비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특조위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연료 환경 부분은 발전사 직접 고용, 경상정비는 통합 자회사로의 직접 고용 등 정규직 전환 권고를 포함하여 '구조, 고용, 인권분야', '안전기술 분야', '법 제도 개선분야 등으로 22개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특조위 조사결과에 따른 권고가 실질 이행되는 것이다. 작년 12월 처참한 죽음 이후 당정 대책이 발표되고, 2월 장례를 치렀지만 발전소 현장의 정규직 전환은 진행되지 않았고, 현장도 개선되지 않았다. 발표된 대책은 여전히 서류상에만 있고 6개월이 넘도록 회의 한번 제대로 열린 적이 없다. 특조위 조사결과와 권고가 나온 이 시점에 정부와 발전소는 권고를 실질 이행하여야 한다.


그동안 구의역 김 군의 죽음에 대한 서울시 진상조사위원회, 집배원 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노동조건 개선 기획단 등 민간참여 조사가 진행된 바가 있다.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참여사고조사위원회 설치를 발표하고, 정부 합동대책으로 발표된 후 노동부의 조선하청 산재 대책을 위한 조사위원회가 구성 운영되기도 했다. 노동자의 산재사망에 대한 기간의 조사위원회는 각고의 노력으로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권고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권고의 이행이 제대로 점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고가 이행되지 않을 때 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는 일반적인 연구보고와 다를 게 없어진다. 이번 특조위는 당정대책에도 특조위 결과 이행이 명시되어있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설치되면서 특조위 발족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권고 이행을 다짐한 바도 있다.

금번 특조위의 권고 이행에 대한 문제는 개별 현장과 사고의 문제를 넘어선다. 노동자와 국민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을 때 국가가 어떻게 그 근본 원인을 밝혀내고,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고,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징표가 되는 것이다. 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8월말 권고안 이행을 촉구하며 투쟁에 나설 것이다. 김용균 어머님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활동에 나서며 사단법인 김용균 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각종 사고 현장마다 찾아가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노동자 시민의 생명안전을 우선시 하겠다는 수많은 정치권의 말 잔치는 이제 끝내고, 실증조사를 통한 권고대책의 이행을 전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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