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를 보면서 떠오른 기시감

[기고]'심리적 내전' 상태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다

조국이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최근까지 조국과 그 일가를 소재로 쏟아진 보도량에 필적할만한 보도량이 노무현 서거 직전을 제외하면 또 있었을까 싶다. 양 1마리 밖에 없는 내가 양 99마리를 가진 조국을 근심하고 걱정할 이유는 없다.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 여부가 총선 승패 혹은 더 나아가 진보의 재집권에 득실이 될지에 대한 전략적, 정무적 판단을 할 능력도 내겐 없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건 합리와 이성의 붕괴다. 조국 딸에 국한해 말하자면 융단폭격과도 같은 보도의 홍수 속에서도 그가 입시 제도의 틀을 벗어난 위법을 저질렀다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조국이 위법 행위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다. 물론 조국 딸을 비롯해 조국과 조국 일가의 행적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허기를 느끼는 '강남 사람'의 멘털리티가 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국과 조국 일가의 행적을 보면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것이 조국이 법무장관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일 순 없다. 나는 지금 조국과 조국 일가에 쏟아지는 윤리적 매질과 비난이 조국과 조국 일가가 한 행위에 비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조국과 조국 일가가 한 행위와 조국의 법무장관 후보자 사퇴 사이에 어떤 인과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조국에 대한 '특권 과두 동맹'의 맹렬한 적의는 '우리'를 배반했다고 간주된 자에 대한 것이라면, 조국에 대한 '진보 개혁 성향' 시민들의 실망은 '우리'와 다름을 확인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즉 한쪽은 조국의 '지향'만을, 다른쪽은 조국의 '사회적 존재'만을 주목하는 것이다.

보름 이상 지속되는 조국 사태를 보면서 나는 강렬한 기시감을 느낀다. 10년 전 노무현 서거 즈음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미디어들은 거짓과 진실을 섞고, 시(是)와 비(非)를 전도시켰다.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노무현을 성토했고, 손가락 있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노무현을 죄인으로 지목했다. 조국 사태는 다른가? 지금도 미디어들은 조국과 조국 일가를 공격하는데, 진실 여부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일부 관전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처지와 불만을 조국과 그 일가에 투사하며 '마녀사냥'에 열중하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이 빠진 것만 빼면 미디어와 일부 대중의 태도는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반응만 보면 조국과 그 일가가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나는 조국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의 비난과 분노가 객관과 합리에 터 잡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내 판단은 조국의 낙마 여부와는 무관하다. 다만 조국 사태는 합법의 외피를 두른 경쟁의 룰만으론 더 이상 유지와 통합이 불가능한 한국사회가 신분과 세습의 문제를 직시한 계기적 사태로 기록될 듯은 싶다. 사회적 신분의 획득 및 세습의 후발주자 민주당 386들은 '조국 사태'를 기화로 사회적 신분 획득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만드는 제도적 노력과 획득된 사회적 신분이 세습되는 수준을 약화시키려는 제도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신분이동의 사다리를 공평하게 만들고, 형성된 신분이 세습되는 정도를 눅이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심리적 내전 상태로 돌입할 것이 자명하다. 이번 조국 사태에서 대중들이 보인 폭발적 분노와 사무치는 적의는 심리적 내전 상태의 초기 증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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