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당구도는 불안정하다. 선거를 전후한 정당의 이합집산의 경험적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현재의 5당 체제가 선거 전에 어떠한 변화를 겪을지는 초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탄핵 이후에 전혀 반성하지 않고,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망언에 대해서도 수구적이고 퇴행적 인식체계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정의당은 정당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으나,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2017년 19대 대선 이후 국민의당의 안철수계가 보수로 회귀하면서 파생된 정당들이다. 바른미래당은 당내 갈등으로 다시 분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민주평화당은 이미 비당권파가 탈당을 예고한 상태다. 선거 전 정당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선거 전후 정당의 통합과 분열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집권세력이 국회 의석의 과반을 얻지 못하는 분점 정부가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집권연대를 위한 합당·통합은 낯설지 않다. 1990년의 3당 합당이 그랬고, 1997년 대선 전의 DJP연합은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적 제휴의 형태를 띠었다. 정당 내 주도권을 둘러 싼 계파갈등이 극대화될 때 나타나는 정당의 분화 또한 자연스럽다. 이러한 현상을 규범적인 시각에서 마냥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공학에 의한 정당의 통합과 분열이 시민의 의사를 조직화·제도화하는 정당체제의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한 거대정당에 의한 카르텔 체제의 혁파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떠한 결론을 내느냐에 내년 총선 이후 결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지금의 정당들이 그대로 선거에 임할 확률은 대단히 낮다. 정의당은 확실한 이념적 동질성과 정당정체성에 기반한 고정 지지층의 존재로 확고한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낮은 지지율과 당내 갈등으로 인한 원심력의 작용으로 야당 발 정계개편의 단초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
선거결과 진보성향 정당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면 동일한 가치지향을 가진 정당들이 개혁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진보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수구적 퇴행은 집권세력이 구심이 된 개혁연대 결집에 친화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민생과 개혁입법은 지체를 면치 못했고, 정치는 적대적 대립의 패러다임에 묶였다.
내년 총선은 촛불혁명으로 정부를 구성할 때의 정치적 초심에서 개혁친화적인 정당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양대 정당이 또 다시 적대적 구도를 만들고, 다른 군소정당이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면 개혁의 성과를 내는데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제3당이 출현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보수와 진보의 사이에서 적당한 기계적 균형에 그치는 제3당만으로는 설령 집권세력과 연대한다 하더라도 불안한 동거가 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개혁지향과 이념적 정체성으로 무장한 제3당이 의미 있는 의석을 차지하고 진보연대의 구성인자가 된다면 사회의 불평등 완화와 격차해소라는 촛불 본래의 지향점을 살려나갈 수 있다.
또한 진보담론을 주도하는 제3당이 등장한다면 실질적 다당제의 진용을 갖출 수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원심력 작용으로 진보성향의 제3정당이 출현한다면 새로운 정당체제의 재정렬(political realignment)이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당의 이념적 경직성과 퇴행적 인식체계는 정당 간 경쟁의 수준을 하향평준화 시킬 뿐만 아니라 입법기능을 상실한 불임정당체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제3정당이 역사인식과 시대정신이 분명한 진보담론을 공론화할 수 있다면 지금의 무기력한 정당체제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호남계와 민주평화당 발 정당구도 개편이 주목을 끄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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