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과 결혼한 러시아 여성 A씨가 자살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시집 과수원 배나무에 목을 매는 것이었다. 남편 집안은 과수원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 배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한국과 정서적,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러시아 여성이 어찌 보면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자살을 했다.
처음 남편은 결혼중개업소에서 보내온 아내의 사진을 보았을 때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자신이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내는 미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원했지만 그래도 한국은 남성들이 성실하고 남편의 부모와 형제까지도 책임을 지며 경제권을 여성에게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남성을 택했다.
결혼 초기에 부부 사이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언어 소통의 문제를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상과 기대는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깨져갔다. 결정적인 계기는 결혼 3년 만에 낳은 아들이 장애아 판정을 받게 된 일이었다. 시집 식구들만이 아니라 남편마저 아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을 아내의 책임으로 돌렸다. A씨가 자살을 선택하기 2년 전부터 남편은 그녀를 때리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잘 몰랐을 때는 모르던 일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로스케(러시아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 동네 사람들은 A씨를 이렇게 불렀고, 묻지도 않고 유흥업소의 댄서 출신일 거라 생각했다.
한국 생활이 너무 힘들고 외로워 고국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어려움을 알렸지만 너무나 멀리 있는 러시아 가족들은 그녀에게 큰 정서적 위안이 되지 못했다.
남편과 시집 식구들에 대한 배신감, 주위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 아이에 대한 죄책감,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립감 등으로 삶의 낭떠러지에 몰린 A씨는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을 괴롭히고 업신여기던 한국 남편의 가족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할 방법으로 그녀는 삶을 마감했다. (최미경의 "결혼이주여성의 자살정황에 관한 탐색"(2015, <한국사회복지질적연구>) 논문에 실린 사례를 재구성한 사연이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죽음의 이유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대 등 만이 아니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인 남편(애인)에게 살해된 이주 여성은 20명에 달한다.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숫자가 이 정도이며, 실제 알려지지 않은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타살'에 그치지 않는다. 결혼 이주 여성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 이주 여성의 자살율은 평균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통계로 조사된 적이 없어서 추측만 가능하지만, 국내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주민의 자살율은 그 사회 정주민의 평균 자살율보다 높다고 밝혀졌다.
흔히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해진다. 자살은 어느날 우발적인 극단적 생각과 감정에 의해 선택되는 사건이 아니다. '사회적 배제'로 인한 극단적인 고립감이 쌓여서 일어난다. 이처럼 자살은 연속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점에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다.
이 기사를 통해 결혼 이주 여성의 자살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편과 시집 식구들의 폭력, 성폭행, 감금, 학대 등 범죄적 행위만이 결혼 이주 여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출신국과 다른 문화, 관습, 가족제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숱한 사회적 차별과 무시, 때로는 노골적인 혐오와 배제를 경험한다. 특히 결혼중개업소를 통한 국제결혼은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 시간도 없이 만난 지 3-4일 만에 결정해야 한다. 한국인 남편에 대한 부풀려진 거짓 정보, 한국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환상 등에 기반해 국제결혼을 선택했지만, 한국으로 이주해 이들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은 이런 기대나 환상과는 전혀 다르다.
결혼 이주 여성의 자살 정황에 대한 연구(최미경, 2015, "결혼이주여성의 자살 정황에 관한 탐색", <한국사회복지질적연구>)에서 연구한 대상자들이 겪은 어려움과 고통은 다음과 같았다.
중국 조선족 출신인 B씨는 결혼 생활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얻게 됐다.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니는 부부 사이의 문제에 사사건건 끼어들었고, 시어머니로부터 콩나물값까지 받아 쓰며 살아야 했다.
죽으려고 락스를 먹고 기절한 뒤 병원으로 실려 와 입원까지 하게 되자, 남편은 아내의 병원비가 아까워 못 살겠다며 법원에 이혼 신청을 했다. B씨는 퇴원한 후 법과 이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이혼하게 됐다.
B씨는 이혼 뒤에 뒤늦게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너무 기뻤지만, 자살 시도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날까 걱정에 시달려야 했다. 또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병원에서 낳자마자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입양 보내야만 했다.
출산 후 B씨는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쉼터에 둘어와 산후조리를 하면서 몸이 점점 회복되고, 쉼터의 도움으로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한 서류도 준비할 수 있었다. B씨는 신길동에 있는 친정 오빠의 집에 기거하기를 원해 거처를 옮겼다. 그로부터 한참 뒤 이 여성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차 친정 오빠에게 전화를 하자 B씨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중국 여성, 49세, 목 매달아 자살)
몽골 출신인 C씨는 남편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5년 후 남편이 잠을 자다가 돌연사로 사망했다. 사망한 남편을 진단한 의사는 심장마비라고 했지만, 몽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C씨는 남편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녀는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심한 모욕과 인신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또 경찰 조사를 받고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주위 사람들도 C씨가 남편을 죽였다는 의심을 했다.
C씨는 남편 사망 후 시누이가 운영하는 한정식 식당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다. 시누이는 그녀에게 임금으로 한달에 20만 원 정도 밖에 주지 않았으며, 휴일도 한 달에 딱 하루만 줬다. 또 시아주버니와 시누이는 남편 명의로 된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상속 포기 각서를 쓰라고 종용했다. 남편이 죽으면 재산은 모두 시가족이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그녀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시가족들은 거짓 서류를 꾸며서 남편 재산을 헐값으로 매각한 뒤 나눠 가졌다. 나중에 이 모든 것이 시가족이 자신을 속인 것임을 알게된 뒤 그녀는 크게 절망했다고 한다. C씨는 시누이가 운영하는 식당 밖에 목을 매 자살했다. (몽골, 29세, 목 매달아 자살)
이처럼 결혼 이주 여성들은 아내와 며느리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문화, 국제결혼을 통해 기존의 사회적 관계가 끊기는 사회적 고립, 자신의 '2등 시민'으로 간주하는 인종차별적 제도와 시선, 겨우 최저임금을 받거나 아니면 그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아야 하는 저임금 일자리 등 생각보다 훨씬 큰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이로 인한 고통과 좌절이 중첩되면서 정신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결혼 이주 여성들 중 일부는 죽음을 선택한다.
"무력해진 개인이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은 맞대응이나 도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지기반이 없고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죽은 이들은 맞대응할 방법이나 도피할 곳조차 없었다. 도피할 곳조차 없는 막다른 골목의 대항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도전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은 이들의 자살은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은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핍진된 상태에서 최후의 저항 수단임과 동시에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최미경, 앞의 논문)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러시아 여성이 시가의 배나무에, 몽골 여성이 시누이 식당 앞에, 중국 여성이 시어머니 장롱에 목을 매 자살하는 행위는 이 여성들의 자살이 '최후의 저항'이었음을 보여준다.
'다문화 가족'이 아닌 '결혼 이주 여성'들의 문제다
최근 베트남 출신 부인이 한국인 남편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혼 이주 여성들의 열악한 삶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2018년)에 따르면, 결혼 이주 여성의 42.1%가 가정폭력을 경험하며, 68.0%가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적 학대를 당한다고 한다.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하는 일부 남성들의 문제를 한국보다 가난한 국가의 여성들을 데려오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해 이득을 본 것은 개별 남성들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와 사회도 충분한 이득을 누렸다. 가부장적인 가족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인구를 늘릴 수 있었으며, 미혼 남성들이 급증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불안과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 여성들의 어려움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결혼 이주 여성 가족(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 업무를 하는 지방자치단체 담당 부서 명칭이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결혼이주여성과 인종차별'이란 글에서 "서울시 25개구 자치구의 다문화 가족 관련 담당 부서의 명칭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저출산과 다문화를 동치시키는 부서명이 사용되고 있다"며 "종로구 등의 담당 부서명은 출산.다문화지원팀"이라고 지적했다.
허오 대표는 또 "결혼 이민자의 통합 지원 방안은 가족 유지와 아동 양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이들 여성이 한국인 남성의 자녀를 출산하고 돌보는 '수단'일 경우에만 정부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비판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아직도 이 여성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 이주 여성들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기 위한 첫 출발점은 이들 여성을 독자적인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고, '다문화 가족'과 다른 '결혼 이주 여성'의 문제들로 이들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재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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