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다.
시작은 시장 공약이었다. 시장은 당선된 직후 추진 기구를 설치해서 사업을 기정사실화 한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만큼 다양한 의견수렴을 진행하면서 핵심적인 이해관계자와의 조율을 진행한다. 시민참여를 강조하면서 시민위원회를 설치하고 또 전문가들의 자문을 위해 별도의 기구를 설치한다. 이 과정에서 애초 사업을 제안했던 민간 전문가가 대거 거버넌스의 자문으로 들어가서 사업을 지원한다. 특히 다음 지방선거의 일정을 고려해 사업 시작 전부터 준공 시기가 정해져 있어 상대적으로 빠르게 사업을 추진한다.
무엇을 설명하는 글인가? 언뜻 보면 절차도 무난한 것 같고 이래저래 시민참여와 전문가 자문 등을 균형 있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 사실관계는 모두 이명박 전 시장이 추진한 청계천복원사업의 주요한 경과를 요약한 것이다. 청계천복원사업 자체에 대한 공과의 논란은 있어도 청계천복원사업의 추진 과정이 민주적이거나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몇몇 학자들이 청계천 복원 이후에 공공갈등 관리의 우수사례로 말하긴 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문서로 약속을 남기지 않았다"며 우수하다고 평가했던 바로 그것 때문에 현재 청계천에서 가든파이브로 이주했던 청계천 이주상인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여전히 그런 평가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청계천복원 프로세스와 닮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그런데 청계천복원사업의 경과를 정리한 저 내용이 그대로 현재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박원순 시장은 작년 6.13 지방선거 공약으로 광화문광장 복원을 내건다. 혹자는 그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나 그해 4월 문화재청과 발표한 광화문광장 구상이 있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상에 불과했던 것으로 실제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다는 계획은 금세 백지화되었다. 광화문광장 공약은 곧 지난 해 7월에 시민 100명으로 구성한 광화문광장시민위원회를 만드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어떻게 사업이 진행될지에 대한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시민위원회를 통해서 이런 일정들이 협의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7월에 열린 위촉식을 제외하곤 시민위원회는 회의가 열리지 않는 식물위원회로 전락했고 그 사이 10월 12일 자로 광화문광장 국제현상공모의 공고가 나온다. 공고 당시에 배포된 <공모 지침서>에는 시민들이 알지도 못하는 광화문광장의 컨셉과 교통계획의 방향, 그리고 주요 동상의 배치와 성큰(sunken) 공간들의 위치 등도 지정되어 있었다. 마치 청계천복원 사업이 노수홍, 양윤재 등 주요 전문가 집단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과 같이 광화문광장의 주요한 컨셉은 승효상 등이 참여한 전문가 그룹의 아이디어였다.
만약 설계공모단계에서라도 시민들이 바라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논의나 특히 광장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한두 차례 설문조사로 의견수렴은 갈음되었고 올해 1월에 국제현상공모 당선작이 발표된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이 10월 공모에 불과 3개월의 국제현장공모로 밑그림이 그려졌다. 비슷하게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복원사업에서도 계획에서 착공까지 속도전으로 일관했다. 2002년에 당선된 이명박 전 시장은 2003년 7월 착공이라는 시기를 사전에 못 박고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도시기본계획에서부터 반영되어야 하는 도시계획이 없이 착공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이 동시에 진행되는 신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상식적으로 타당성에 대한 검증 이후에 기본계획이 나와야 하지만 연구도 하기 전에 타당성이 있다 보고 이를 확인하는 식의 연구와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6개 분야에 달하는 보고서가 2013년에 나왔는데 바로 그해 7월에 착공을 했다는 것은, 연구보고서를 검증하고 이에 따른 공론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월 국제현상공모 당선작을 발표했을 때 사회적 논란이 이는 건 당연했다. 왜냐하면 관련된 내용이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화문포럼을 말하지만 폐쇄적인 전문가 자문회의에 가까웠고 시민 100명이 모집된 시민위원회는 국제현상공모 발표 이후에서야 부랴부랴 두 번째 회의가 진행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바로 현상공모 당선자 쪽과 실시설계 수립을 위한 계약을 진행했고, 6월 말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완료가 될 것이라 한다. 특히 GTX의 광화문역 설치와 연계된 복합역사 구상은 광화문광장 계획과 아예 별개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이 진행 중이다. 동일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사업을 이렇게 분리해도 괜찮은 건지를 떠나서 도대체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서울시는 당초 계획대로 2021년 5월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완료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건설 기간을 고려하면 2020년 상반기엔 착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올 한해는 의견을 듣고 자시고도 없이 그냥 빠르게 밀어붙이는 것밖엔 방법이 없긴 하다.
새로운 시정가치 자체를 침식하는 과정이 극복 대상
그런데 청계천복원사업도 그랬다. 2003년 7월에 착공해서 2005년 9월에 준공한다는 목표가 정해지고 시행되었다. 당연히 과정에서 착공을 늦추더라도 더 논의하고 토론하고 합의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그건 공사를 하면서 해도 된다"는 건설회사 사장 출신의 시장답게 밀어붙였고 결국은 반쪽짜리 복원사업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형적인 형태만 복원되었을 뿐 그곳에 흐르는 물은 수돗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은 청계천의 원천지 복원을 위해 백운동천 복원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의 일인데 그 사이 어찌 된 일인지 진행되는 것이 없다가 작년에 해당 용역사업은 보류되었다. 보류의 이유는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경과를 봐야하기 때문"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니까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이미 그 전에 결정해둔 청계천의 재자연화라는 앞선 결정조차도 임의적으로 보류시킨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 광화문광장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고 한다. 이미 착공 시기와 준공 시기를 정해놓고 하는데, 법적으로 해야 하는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를 진행하면서 국제현장공모 당선자와의 토론회나 공청회는 왜 할 생각도 없는지, 도대체 기본 컨셉으로 제시된 해당 내용들이 서울시민들의 생각과 같은 것인지도 확인할 새 없이 성큼성큼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행정안전부와 도로 협의가 끝났다 한다. 주민 협의도 광장 인근 주민들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명색이 상징광장이고 국가광장이고 정부를 바꾼 시민광장이라면서 고작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복원 하듯이 한다. 세간에 박원순 시장에 대해 "이명박 하면 청계천"처럼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여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정말 청계천 "같은" 사업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복원사업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의 일이다. 월드컵 거리응원전, 광우병 소고기 수입 파동에서 촉발된 촛불시위, 그리고 국정농단을 단죄하기 위한 탄핵 요구까지 벌어지면서 켜켜이 쌓인 도시의 경험을 고작 17년 전 청계천 복원사업 하듯이 구현할 수 있을까. 청계천복원사업의 비극이 도시의 중요한 사업을 자신의 임기 내에 마치고자 했던 것에서 시작하듯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의 희극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데서 비롯된다. 우선 2021년 5월로 맞춰져 있는 타이머가 해제되지 않는 한,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어떤 논의도 무의미하다. 적어도 합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는 과거와 같이 광화문광장을 자유롭게 이용하면 된다. 약속은 약속의 장소에 나온 사람들끼리 지키는 것이니까.
김상철 기획위원은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정책팀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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