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 산다는 것

<독자 투고> "모이면 화제는 타워팰리스"

***대치동에 산다는 것**

대치동 주부들은 대개 기가 세어 보인다. 그리고 대체로 노소를 불문하고 차림새가 세련되어 있다. 자세히 이들을 살펴보면 이른바 명품을 최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들은 동네 근처 슈퍼마켓에 갈 때에도 남을 의식해서인지 대충 입고 가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햇볕이 세게 내리쬐는 요즈음 양재천을 나가보면, 차양 모자를 쓰고서 다니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와 함께 동시에 운동하면서 시선을 마주치기 싫어서라는 게 주 이유이다. 운동할 때도 명품은 어김없이 발견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지, 경멸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청부(淸富)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치동의 부자들이 청부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대치동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부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내는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몰라도 씀씀이를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고 늘 불만이다. 물질적으로 치자면 우리는 대치동에서는 거의 꼴찌에 가까운 생활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아내는 자존심이 무너지고 마음 아파한다. 차 한잔을 마셔도 꼭 '있는 티'를 내는 아주머니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아이들 공부 또는 놀이를 위해 "그룹"을 짜자고 제안을 하면 어떡하나라는 조바심에 늘 노심초사이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면 애는 물론이고 아줌들내에서도 왕따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사회성 부족한 엄마'로 낙인 찍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치동에 산다는 것에 대해 늘 불안해 한다. 언제까지 대치동에 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누구네 아이는 이런저런 것을 배우는데 나는 그런 것도 배우게 하지 않고..." 하는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에 대해 어줍잖은 변명으로 일언지하에 아이의 기를 꺾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은 암담하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푸념투로 늘어 놓으면 "빨리 대치동을 떠나라"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대치동을 불쑥 떠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이래저래 마음 고생이 심하다. 그래서 대인관계에 있어 자신이 없고 매사 소심해진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 손을 잡고 걸어오다 아파트내 놀이터를 가 보아도 노는 아이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늘진 곳에 노인들만 몇 분 보일 뿐이다. 각종 보습학원으로 둘러싸인 대치동이 주는 중압감으로 인해 자녀 교육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바깥 생활을 하는 나보다 늘 애와 함께 있어야 하는 아내가 더욱 심각하다 했다.

이곳의 중.고등학교 자녀들 가진 학부형(특히 엄마)들은 학교가 파한 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데려다 주기에 바쁜 '로드 매니저'라 불리운다.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자녀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기 위해 학원 앞 도로를 점령하고서 길다랗게 늘어서 자가용 행렬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닌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학원 버스에 기계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아이들의 무표정한 모습과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한 애처로운 모습들. 대치동에는 학교가 없다. 학원만 있을 뿐이다.

자기보다 젊은 아줌마들이 예전에는 가정부라 불리우던, 그러나 이제는 불리는 이름도 세련되게 들리는 '도우미 아줌마'를 두고서 동네 커피숍이나 아니면 이웃 아파트 누구네 집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게 영 마뜩치 않지만, 매번 불참하면 이 또한 결례가 될 듯 싶어 아내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이들의 모임에 참석하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모임에 가기만 하면 이구동성으로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한창 집값이 오른 도곡동 타워팰리스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즈음 대치동의 화두는 타워팰리스이다. 타워팰리스로 이사가는 것이 가슴에 무슨 커다란 훈장이라도 단 것처럼 으시대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에 "가볍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부러우면서 결국에는 속상해 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집들이 한번 가 보는 것이 유행 아닌 유행이 되었다.

아내는 이런 일부 사람들의 천박하고 가벼운 행동이 싫다고 한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는 부근 백화점 잡화 코너와 꽃가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곳 대치동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한다.

요즈음은 자녀를 하나 또는 둘만 있는 가정이 대부분인지라 귀하게 키우고 싶은 심리가 강해,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선생님에게 “충성”을 하고 몰지각한 선생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어느 초등학교 교장은 비리에 연루되어 얼마전에 결국에는 교단을 떠나고 말았단다. 대치동 아줌마들 속성상 웬만하면 그냥 넘어 갔을텐데 그 도가 지나쳤던가 보다.

교육여건이 좋아 모두 다 대치동으로 온다고 한다. 일반적인 종합학원뿐만 아니라, 특화(예를 들어, 영어라 하여도 영작전문, 회화전문, 문법전문 등으로 세분화)된 학원들이 즐비하게 도로변의 요지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맹모삼천지교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촌지에 익숙한 학부모와 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것인가?
엄마가 학교엘 한번 다녀가고 나면 담임 선생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정직과 정의와 공정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부정부패 척결이 늘 역대정권의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되지만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불공정, 반칙문화에 익숙해 온 이들이 과연 이 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냥 주저앉고 싶어진다.

어릴 때부터 공정하고, 정직하고, 원칙적이며 투명한 공동체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악순환의 고리가 이제는 정말로 끊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가벼운 언사가 아닌 온 몸으로 실천하는 그런 대통령이 보고 싶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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