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상식'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법관의 양심 조항"을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우리와 일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독일 기본법 제97조는 "법관은 독립해 법률에만 구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제헌 헌법도 제77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개정 헌법에서 '양심'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헌법 제76조는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며 이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 독일 기본법 제97조도 초안에는 양심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을 법률과 동위, 또는 상위에 있는 하나의 법원(法源)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삭제했다.
'양심'을 빌미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한 재판
'공평무사성(Selbstlosigkeit)'을 요소로 하는 공직 제도는 원래 공화주의(Republikanismus)의 전통으로서 공직의 중립성은 모든 국가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토대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구속적부심사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적지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은 마치 하나의 상식처럼 이미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듯하다. 재벌이나 고관대작 등 힘 있는 자에게는 '양심'이라는 재량권을 적용하여 법률을 자의적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지나치게 너그럽게 적용시키는 반면,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추상같은 판결이 종종 내려지곤 한다.
법관이 헌법이 부여한 그 '양심'을 기반으로 결과적으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하는 듯한 모습도 목격된다. 독일 헌법에서 법관의 '양심'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던 이유가 됐던 바로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장면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난 바처럼, 그간 공권력이 잘못 행사돼도 범죄의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는 일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공권력이 끼친 엄청난 피해가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어지는 어이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현실에서는 형법이 요구하지도 않는 '대가성' 혹은 '직무관련성'이라는 개념을 구태여 적용시킴으로써 결국 뇌물죄의 성립 범위를 현격하게 축소시키고 있다.
'법관의 양심'이 '법원(法源)'이 될 수는 없다
법률은 모든 종류의 범죄와 모든 정도의 범죄에 대해서 동일한 처벌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법률을 동일하게 적용하기 위해 '의도'가 아니라 '행동'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형벌은 그 '행동'이 초래한 피해의 크기에 따라서 비례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형법학자인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평가함에 있어 오직 외적 결과만을 중시할 것을 강조했다.그는 범죄에 대한 행위자의 내적 표상(表象)을 범죄와 처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으려는 일체의 시도를 의심한다. 그에 따르면, 재판관이 해야 할 일은 특정인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는지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며 결코 자신의 가치결정이나 의사결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범죄의 심각성이란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오로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초래한 '피해의 크기'에 따라 규정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법관의 '양심'이 아니라 오로지 '법률의 규정'에 따라 수행돼야 한다. '법관의 양심'이 또 다른 법원(法源)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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