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왕자의 난', 하얏트 제국 붕괴위기

수백억달러 유산 놓고 후손 수십명 이전투구

세계 호텔업계의 명문 하얏트 그룹을 소유한 프리츠커 가문이 재산싸움에 휘말렸다. '미국판 왕자의 난'이다.

매스미디어와의 접촉을 기피하기로 유명한 이 가문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싸움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재산분배에서 소외된 사촌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미국판 왕자의 난'**

소송을 제기한 자손은 이 가문의 4세대에 해당하는 리젤 프리츠커. 그녀는 올해 18세로 영화배우(영화 <소공녀> 출연)이자 컬럼비아대 1학년생이다. 소장에 따르면 자신과 20세인 오빠 매튜가 이 가문의 4세대에 해당하는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5세대 취급을 받아 자기에게 돌아올 몫이 없어졌다는 것.

뉴욕타임스(NYT)의 1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프리츠커 가문은 하얏트 호텔그룹(전세계 40개 호텔 직접소유, 2백개 이상의 호텔 경영, 2001년 매출 20억 달러의 재벌)을 포함해 3억달러(2001년) 매출을 올리는 씹는담배업체 콘우드, 신용카드조회 등 정보솔루션업체 트랜스 유니온을 거느리고 1백50억 달러(약18조원)의 신탁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문의 분열은 하얏트제국을 건설한 제이 프리츠커가 지난 99년 사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제이 프리츠커는 95년 6월 11명의 일가 자손들을 불러 "가문의 모든 재산은 자손들이 골고루 나눠가진다"는 재산분배 원칙을 당부하고, 그중 토머스, 니콜러스, 페니 등 3명을 공동관리인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프리츠커가 사망한 후 그의 유언은 휴지조각이 됐다. 제이 프리츠커는 95년 당시 11명의 일가 자손들에게 40세가 되면 각각 2천5백만달러를 현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11명에서 배제된 친척들이 변호사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3인 관리인들이 4억8천만달러를 따로 챙긴 것이 드러나면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했다.

***"고소장 보니 구역질이 났다"**

이에 따라 11명은 향후 10년간 1백5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나눠갖자는 '비밀협약'을 다시 맺었다. NYT는 "이 비밀협약은 하얏트 호텔 체인 처분과 11명이 각각 14억 달러씩 나눠갖는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런 약점을 잡은 탓인지 리젤은 다소 무리해보이는 요구를 제기했다. 소장에 따르면 리젤은 자신의 몫 10억 달러와 함께 5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리젤은 "아버지 로버트가 지난 94년부터 자신의 신탁계좌에서 돈을 빼내갔다"고 주장했다. 로버트(제이 프리츠커의 동생)는 91년 리젤과 매튜의 생모인 아이린 프리츠커와 이혼한 뒤 리젤이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의 성(姓)인 베이글리를 쓰지 못하도록 소송을 내는 등 부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츠커 가문과 가까운 한 인사는 리젤의 소장을 읽어보다가 "구역질이 났다"면서 "가문에 망조가 들었다"고 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합의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또 다른 인사는 "하나로 뭉쳤던 가풍이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세태로 변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밀합의문을 작성한 11명은 리젤의 소송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새로운 계획은 신중, 안정, 다각화라는 우리 가문의 오랜 사업원칙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명서를 냈다. 해명서에는 또한 "우리의 전략은 기존 사업에 대한 장기적인 재투자와 모든 가문 구성원들을 위해 유동성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가문 구성원 모두 계속해서 엄청난 재산으로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창업 1세기만에 파멸 위기**

그러나 가문 재산싸움에 뛰어든 것은 리젤 뿐이 아니다. 제이 프리츠커의 자식 5명 중 존, 다니엘 등 2명과 사촌형제들 몇 명이 지난 2000년 프리츠커 가문의 재산을 철저하게 조사해달라며 변호사를 고용했다. 이들의 불만은 3인 공동관리인 중 토머스에게 집중되고 있다.

프리츠커 가문과 가까운 한 인사는 "토머스가 매우 독선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친척들이 많다"면서 "그의 태도는 '내가 모든 장난감을 차지하고 너에게 줄 것은 없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NYT는 "러시아 키에프 부근 유태인 강제거주지역 출신인 니콜러스 프리츠커가 미국으로 이민온 뒤 고학으로 변호사로 입신하면서 시작된 이 가문은 1세기만에 파멸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프리츠커 가문의 재산싸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흥미거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에 직접적인 충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프리츠커 가문은 시카고의 최대 부호가문이면서 최대의 자선사업가이기 때문이다.

프리츠커 가문은 시카고의 거의 모든 주요문화교육단체의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시카고대는 프리츠커 가문으로부터 4천8백만 달러를 받았고, 시의 중심문화공간인 밀레니엄 파크는 음악당 건립 재원으로 1천5백만 달러를 지원받기도 했다.

시카고의 문화교육계는 재산분배싸움으로 이러한 기부의 전통마저 끊길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대 의대의 재산관리를 맡고 있는 노먼 보빈스는 "프리츠커 가문에게 지원을 수없이 요청했는데 그때마다 늘 그들은 도와주었다"면서 "이러한 전통이 사라지면 시카고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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