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저렇게 해봐" "여기서?"

<김승호의 휴스턴통신 7>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비록 남자애들만 키우지만 사내아이들을 살갑게 키워서,
다 자라도 엄마와 뽀뽀도 하고
포옹도 하며 장대 같은 아들하고 애인같이 팔짱이라도
끼고 돌아다닐 거라는 아내의
희망은 벌써 징조가 심상치 않다.

어린 막내는 아직 그런대로 애교도 피우지만
큰 놈과 둘째 놈은 아내가 "사랑해"라고 말해도 무덤덤이다.
"어쩜 그런 것마저도 제 아빠를 닮았냐"며 나까지도
괜스레 옆에 앉았다가 덤으로 욕을 먹는다.

미국 아이들처럼 "아이 러브 유 투 맘"이라는
소리라도 듣고싶어 한 말이지만
무슨 그런 징그런 소리를 하냐는듯한 아들 녀석들의
태도에 실망한 빛이 역력하다.

회사 직원 중에 내 아버지 나이 뻘 되는 베니 밀러라는
사람으로 의젓한 노신사 분이 있다.
그는 육십이 넘었는데도 하루에 서너 번씩 아내와
통화를 하며 "아이 러브 유 허니"로 전화 인사말의 앞 뒤를 대신한다.

하루는 무심히 밀러씨가 전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에게 물어 봤다.

"베니! 당신이 젊었을 때도 미국에선 아내에게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흔히 주고 받았었나요?
난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면 청혼하는 것처럼
의미가 무거워서 쉽게 안 나옵니다."

밀러 씨는 예의 통화 말미에 "아이 러브 유 허니"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내려 놓더니 나를 돌아 보며 웃는다.

"아니요. 미국도 많이 변해 왔지요. 우리 자랄 땐
아버지들이 대부분 권위적이고 위엄이 있었지요.
시대가 지나면서 남자들이 더 가정적이고 다감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50년 전의 "사랑해"라는 말은 지금과 조금은 다른 의미이겠죠?"
하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얼굴을 찡긋하며 나간다.

그렇다면 지금은 싹수가 벌써 노래 보이는 내 아들들도
결혼할 시기쯤 되면 제 아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곧잘 하게 되어 제 엄마 약을
좀 올리겠구나 생각하며 웃고 나왔다.

아내 하는 소릴 들어보면 미국 남자들은 사랑한다는
소리도 잘하고 애정 표현도 잘 하는데
한국 남자들은 어째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인색하냐며 한국 남자들을
묶어서 한 단으로 후려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名可名 非常名)으로
시작하는 노자의 말을 빗대며,
이미 사랑한다고 말함은
사랑이 아니라는 위대한 철학으로 막음을 해 보지만
아내는 사랑이란 거대한 단어 앞에
철학 나부랭이가 설치고 다닐 틈은 아예 주지를 않는다.

나의 견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처녀 때 받았던 은근한
언어를 매일 서너 번씩 듣고 사는
미국 여자들에 대한 부러움에 약 올라 있는
여자 앞에서 무슨 논리가 필요하겠는가?

어떤 상황이나 현상도 음지와 양지가 있고
추함과 아름다움의 양면을 보이고 있다.
쉬운 사랑은 쉬운 이별을 말하고 부자는 배부르나 외롭고,
연예인은 호화스러우나 사생활이 없고,
명성을 얻은 자는 근심이 많고,
권력을 가진 자는 종말이 두렵고,
평화를 얻은 자는 가난한 것이며 대머리는 비듬 걱정이 없고
목청이 큰 사람은 이기기도 잘 하지만 싸움
그칠 날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랑이란 단어를 쉽게 사용하지 않음도 사랑하는 것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나는 허리가 굽더라도 끝내
그 말은 못 배울 것 같다.

친구들 부부들에게 물어 봐도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것에
곤욕을 느끼는 것이 나뿐이 아닌 것을 보면 병은 아닌 듯 싶다.

내 머리는 무엇인가를 한 번 삭제해 버리면 다시는
생각이 나지 않는 특이 체질인 줄은
미리 알았지만, 아내 말에는 내가 결혼 초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했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아내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내 친구들도 그런 것 같은데 왜 유독 남자들만
욕을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에 아내들만 뭔가를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이것도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아내와 백화점에 가서 지하 식품매장 의자에
앉아 있는데 젊은 남자가 금발의
아가씨 옆에 앉아서는 연신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내가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우리도 젊은 축에 속하나 보다.

"당신도 저렇게 해 봐."
아내는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를 바라보며 은근히 부추긴다.
"여기서?"
"그래! 왜? 못해?"
아내의 짧은 질문이 이어진다.
"지금? 그래도 될까?"

의외로 내가 느닷없이 진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비스듬히 앉아 있던 자세를 고쳐 앉는다.
나는 마주 앉은 아내의 어깨를 잡고 한 번 더 묻는다.
.
.
.
.
.
.
.

"여보 그런데, 난 저 여자를 알지도 못하는데… …
괜찮을까?"

<편집자 주>
필자의 글 가운데 나오는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이란 글은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의 첫 문장이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 다. 이름을 이름 지우면 그것은 늘 그
러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꼭 말로 표현해야 하느냐는 의미에서 필자가 인용한 글이 아닌가 싶다.

필자 김승호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독자는 jk959@naver.com로 연락하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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