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최고의 문화비평가가 읽은 <좌전>

[최재천의 책갈피] <역사, 눈앞의 현실>

중국 춘추 시절, 정(鄭)나라의 집정관 자산(子産)은 내란 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적이 궁궐로 침입했고, 부친은 피살되었다. 깊은 원한을 품은 채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시기에 젊은 나이의 자산은 무엇을 했을까.

그의 모습은 부친이 막 살해된 젊은이 같지 않았다. "문지기를 배치하고", "문무백관에 책임을 지우고", "전적(典籍)을 신중히 지키고", "수비를 완벽하게 하는" 등 모든 것을 완료하고 나서야 적을 공격했다. 난리를 평정한 후 대권을 잡은 자공(子孔)은 부역한 모든 공범을 잡아 죽이려 하다가 자산에게 제지당했다. "공이 하려는 일도 이루고 백성도 안정을 이루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후 자산은 자공을 설득해 내란과 관련된 모든 문건을 불태우고 살상을 그치게 했다. 거기에는 부친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까지도 포함돼있었다.

타이완 최고의 문화비평가 탕누어의 <좌전> 읽기다. 우리 제목은 <역사, 눈앞의 현실>. 원제는 <눈앞:좌전의 세계에서 놀기(眼前:漫游在左转 的世界). 역시나 탕누어는 최고다.

공자가 <춘추>를 썼다. <춘추>를 보충하고 해석한 것이 <좌전>. <좌전>을 탕누어가 다시 읽고 다시 썼다. 해석에 재해석을 가한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 탕누어는 발터 벤야민의 비유를 빌려왔다.

"한 가지는 아이들이 종이접기로 완성한 종이배(<춘추>)를 펼쳐서 한 장의 종이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쓴 책이 <공양전>과 <곡량전>이다. 다른 한 가지는 꽃봉오리(<춘추>)를 터뜨려 꽃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쓴 책이 바로 <좌전>이다."

다시 탕누어의 부연설명. "<좌전>은 현실을 계속 기록하거나 미래의 방향을 계속 수정한 노(魯)나라의 역사 판본이 아니라 완결된 공자의 <춘추> 판본을 새로 읽고, 학습하고, 회상하고, 사색한 책이다." 이런 <좌전>을 '새로 읽고, 학습하고, 회상하고, 사색한' 이가 바로 탕누어다. 도대체 왜 역사였을까?

"역사를 읽으며 단순하게 기쁨을 얻기는 어렵다. 역사를 진지하게 읽을수록 늘 더 깊은 슬픔과 황량함에 젖기 마련이다. 따라서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가장 가소로운 종족임'을 믿지 않기 어려우며, 또 인간의 역사를 '끊임없이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며' '악몽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미치광이의 자서전'으로 간주하지 않기가 어렵다."

다른 한편, '대국가의 영혼과 소국가의 육체'가 결합된 타이완의 슬픔이 절절하다.

▲ <역사, 눈앞의 현실>(탕누어 지음, 김영문 옮김)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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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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