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그가 남긴 유고집

[프레시안 books] <노회찬의 진심>, <노회찬, 함께 꾸는 꿈>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는 책 두 권이 나왔다. <노회찬의 진심>(사회평론)과 <노회찬, 함께 꾸는 꿈>(노회찬재단 기획, 후마니타스)이다. 모두 노회찬의 말과 글을 묶었다.

'유고산문집'이라는 표제가 붙은 <노회찬의 진심>은 노 전 의원이 생전 남긴 글과 그의 어록을 모은 책이다. 책은 전체 5부로 구성되었다. 1~4부는 2004년 7월 14일부터 지난해 7월 23일까지 노 전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며 남긴 글 모음이다. 1990년대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를 지내며 정치권에 발 들인 노 전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제도권 정치인으로서 이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진보신당, 진보정의당, 정의당으로 당이 바뀌는 동안 꾸준히 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올린 '난중일기'를 비롯해 노회찬의 공감로그, 페이스북 등에 여러 글을 남겼다. 언론을 통해 모든 대중을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닌,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당원 동지를 대상으로 남긴 글이니만큼 더 진솔하다.

"아침 출근길에 어제 구운 CD를 틀었다. 가을에 듣기 위해 2개의 CD를 구워 하나는 동생에게 선물했다. 가을엔 역시 장중한 곡이 좋다. 첫 곡은 <최후의 결전Varshavianka>. 20세기 초 <인터내셔널가>와 함께 가장 많이 불려졌던 노래다. 우리나라에선 항일무장투쟁 시기 ‘최후의 결전’이란 제목으로 독립군들이 불렀고, 스페인내전 당시엔 ‘바리케이트를 향해’란 이름으로 민병대원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이다. 70%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곡이다." (할 일도 많고 갈 길은 멀다 –2004년 9월 30일 목요일 맑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적용되지 않는데 무슨 국민이냐. 일하는 사람의 70%가 헌법 바깥에 있는 나라 대한민국.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 조국이 아니다. 그냥 살고 있는 땅일 뿐." (또 그가 단식에 들어갔다 –2004년 11월 30일 화요일 맑음)

5부는 노 전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방송토론, 인터뷰, 트위터 등을 통해 큰 공감을 모은 그의 대표 어록 모음집이다. 유머와 명징한 비유가 강조된 그의 어록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줬다는 호평을 받곤 했다. 노 전 의원과 정치 생활을 오래 함께 한 유시민, 조승수 전 의원이 추도의 글을 남겼다.

<노회찬, 함께 꾸는 꿈> 역시 노 전 의원이 생전에 남긴 글과 말을 엮은 책이다. 그에게 처음 유명세를 안긴 ‘판갈이론’부터 KTX 노동자들의 복직을 축하하는, 그러나 그가 직접 전하진 못한 마지막 축전까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과 글을 다섯 단락으로 나눠 묶었다. 노 전 의원과 누구보다 가까이서 함께 한 다섯 명의 동료들이 각 글과 말과 관련된 숨은 맥락과 에피소드, 노 전 의원의 당시 생각을 함께 풀었다. 동료 5인은 박창규 보좌관, 엑스파일 사건 당시 노 전 의원을 변호한 박갑주 변호사, 노 전 의원과 진보정당 싱크탱크 활동을 함께 한 김윤철 교수, 노 전 의원의 후배 정치인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이광호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다. 노 전 의원을 추모하는 노회찬재단이 그의 여러 말 중 특히나 사회적 의미가 큰 부분을 주제별로 추린 글의 모음이다.

1부는 민주노동당 출범 시기부터 진보정당, 정의당으로 이어진 한국 진보 정당 여정기를 기록한 글과 말의 모음이다. 노 전 의원은 특히나 각종 선거 때마다 TV토론, 후보 유세 등에 단골로 초대되어 대중에 회자되는 어록을 여럿 남겼는데, 이 중에는 발언 당시에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나 후에야 그 진면목이 드러난 주제도 많다. 한편으로 이 당시 노 전 의원의 어록을 보면 한국에서 진보 정당이 어떻게 자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도 엿보인다. 이 글들은 훗날에도 탄탄한 진보 정당이 한국에 우뚝 서길 염원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숙제처럼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심각성은 한국의 진보 정당이 이제까지의 발전 전략으로는 한걸음도 더 나아가기 어려울 뿐 아니라 무엇이 진보인가라는 근본적 물음 앞에서 유의미한 독자적 세력으로 존립할 가능성조차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이 2007년 민주당의 그것보다 '진보'적이며, 2012년 민주당의 대선 공약이 2007년 민주노동당의 그것만큼 진보적이며,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무상 보육 공약이 2010년 노회찬 서울 시장 후보의 무상 보육 공약보다 더 진보적인 내용으로 제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진보 정당은 진보라는 정체성만으로 그리고 과거의 방식으로 자신을 차별화하기 불가능한 새로운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 노동에 기반한 대중정당은 진보 정당 정체성의 가장 주요한 축이다. (...)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 방식은 과거의 낡은 방식이 되었으며 민주노총 조직률이 5퍼센트 남짓한 현실에서 내부 정파 구조에 위탁하는 조직화 방식의 한계와 폐단도 분명하다. 이제부터 노동과 정치는 직접 만나야 한다. 비정규직 등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노동 대중과 진보 정당이 직접 만나는 다양한 장과 소통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진보 정당의 미래는 노동자와 청년과 여성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진보 정당의 위기와 정체성 찾기: 한국형 사회민주주의 – 2013년 1월 25일, 진보정의연구소 제2차 집담회 발표문)

노 전 의원의 비극적인 소식이 알려진 후 다시금 화제가 된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글도 수록되어 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한 명이 어쩌다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한 그의 말과 글 역시 관심을 모은다. 이 글에서 노 전 의원은 한국 사법부에 과연 정의가 존재하는가를 따져 묻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지금도 생생한 울림을 주는 글들이 많다.

책의 마지막 챕터는 KTX 해고 승무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조선소 하청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해 그가 남긴 글과 말의 모음이다. 이 챕터야말로 노 전 의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왜 유독 많은 정치인 중 노 전 의원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주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분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 저희 정의당 의원들은 여러분들과 같은 공간, 국회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입니다. (...)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바로 오늘 첫 행사로 여러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행사를 가진 것은 늘 여러분들을 직장 동료로서, 우리나라 곳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여러분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많은 분들이, 저희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고, 저희가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대변해야 되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그리고 지금 들리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 여러분들이 원래 쓰던, 여러분들의 노조가 쓰던 공간이 잘 유지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도록 또 저희들이 노력할 것이고요. 혹 일이 잘 안되면,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 그냥 공동으로." (우리는 직장 동료입니다 –2016년 5월 30일, 국회 청소 노동자와의 오찬 간담회 인사말)

▲ <노회찬의 진심>, <노회찬, 함께 꾸는 꿈>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