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열풍’에 가려진 진실

[시민정치시평]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은 베트남을 존중하고 있습니까?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높아지자 베트남 축구팬들이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베트남 국가대표팀 경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요즘 베트남과 한국과의 관계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아 보인다. 한 축구지도자의 노력으로 양국 간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한국이 마치 베트남에 시혜를 베풀고 있는 듯한 인식이 퍼지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심지어 한 언론사는 박항서 열풍 이전에 삼성전자가 있었다면서, 한국기업들의 베트남 투자를 칭송하고 있다.

베트남 삼성전자의 그늘

삼성전자가 고용과 매출에 있어서 베트남 최대의 기업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할 때에,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문제를 제대로 고려했을 지에 대한 우려와 의문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지난, 2017년 11월 6일에 국제환경보건단체 IPEN과 베트남 시민단체 CGFED에 의해 발표된 베트남 삼성전자 공장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들이 임신한 경우에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유산하는 경우가 흔하며, 과도한 초과근무로 인하여 기절하는 사례를 포함한 여러 질병을 겪고 있음에도, 제조과정에서 사용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제공 및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후에, 삼성은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거나 베트남 당국에 허위정보 유포로 인한 형사절차를 개시하도록 요구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해외 언론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삼성의 이러한 행태에 대하여 2018년 3월 20일, 유엔 유해물질 특별 보고관과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은 "기업과 정부의 관리자들이 유해하고 부적절한 노동조건에 대해 보고한 연구자와 노동자들을 겁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삼성을 비판하였다.

삼성은 평소에도 베트남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건 및 노동환경에 대해 외부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시민사회단체들이 삼성전자 사업장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에도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회사의 보복이 두려워 인터뷰를 취소하였으며, 보고서 발표 후에는 노동자들에게 외부에 노동 조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소송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삼성이 한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행사하던 모습을 베트남에서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삼성전자의 베트남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 우려할 때, 문재인 정부는 삼성 임원이었던 김도현 씨를 주 베트남 대사로 4월에 임명하였다. 베트남 공장의 안전 논란이 있음에도 강행된 삼성출신 인사의 베트남 대사 임명은 적어도 베트남에 삼성의 힘을 재확인시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기업의 베트남 투자가 늘어나는 이유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의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해당 국가의 임금이 싸고,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유치를 위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기업이 베트남을 특히 선호하는 이유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운영하는 노동조합만이 있고, 노동단체와 같은 시민사회의 감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노동단체들의 활동 역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문제가 국내에 알려지는 건 주로 임금체불과 관련된 건이다. 의류봉제업을 중심으로 한국인 기업주가 야반도주 하거나 몇 달 동안 임금은 지불하지 않아 베트남 노동자들이 공장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거나 베트남 정부가 한국 대사관에 항의하고 나서야 알려지는 것이다. 수천 명의 베트남 노동자들이 갑자기 실직상태가 되는 일이 2018년도에도 베트남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이 축구 대표팀 경기를 보며 박항서 감독을 연호하는 한편에는, 적지 않은 베트남 노동자들이 야반도주 한 한국기업주로 인해 임금을 떼이고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한국기업주도 임금체불에 대한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항서 열풍에 힘입어 환대 받으며 투자하고, 노사분규나 시민사회의 감시도 없고, 임금과 사회 보험료를 체불하고도 한국으로 도망치면 처벌받지 않으니, 한국기업의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과 진정한 이웃이 되는 것

비록 지금 당장은 박항서 열풍에 가려져 있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한국 관광객들은 베트남을 존중하는지, 한국 시민들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국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베트남 한국기업들이 박항서 감독처럼 베트남 노동자들과 주민들을 존중하는지 지켜볼 베트남 시민들로부터의 질문이 우리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상당한 성과를 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복되는 의류봉제업체의 야반도주와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기업 사업장의 안전문제는 한국 정부가 적극 대처해야할 문제이다. 정부가 베트남을 비롯한 해외투자 기업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찾아보면 많다. 지금까지 한국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한국기업의 반노동적이고 반인권적인 관행에 눈감아 왔더라도, 태극기를 들고 베트남 시내를 누비는 베트남 국민들이 곧 한국기업의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국 언론과 시민들도 박항서 열풍의 이면에 과연 한국기업과 한국 시민들이 베트남 시민들의 인권과 베트남의 문화 및 환경을 존중하고 있는지 차분히 살펴야 할 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에 열광한 한국시민들은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정도로 고마움을 대신할 수 있었지만, 박항서 감독의 조국인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너무나 많은 베트남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열풍 이전에 무거운 책임감을 인식할 때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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