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초'를 아시나요?

[이기영의 '천년초' 사랑]<1>'수퍼 쿨'한 항산화 식물 '천년초'와 혜민스님

요즘 천연항산화제가 건강기능성 식품의 총아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항산화제는 세포막이나 DNA의 산화를 막아주는, 식물이나 동물의 자기방어 물질이다. 특히 식물에는 폴리페놀계의 플라보노이드나 안소사이아닌, 탄닌 계통의 항산화제가 많이 함유돼있어 특징적 맛과 색깔을 나타낸다. 이러한 항산화제는 사람이 섭취할 경우 염증 치료나 노화예방은 물론 심혈관계질환인 고혈압, 심장병, 뇌졸증과 당뇨의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과학적 연구결과 항암제의 기본구조도 항산화제임이 밝혀졌다. 1983년 나는 석사학위 논문으로 들깨의 주요 항산화제인 클로로겐산을 분리해 처음 항산화성을 연구한 이래,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알로에나 백연 잎 등 다양한 식물의 페놀성 항산화제 연구에 몰두해왔다. 그동안 연구해온 100여 가지의 식물 중에서도, 특히 항산화제 함량이 높은 천년초(千年草)에 주목해왔다.

천년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한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나는 다년생 손바닥 선인장이다. 항산화제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수용성 식이섬유가 고형분의 무려 50퍼센트를 차지해 칼로리가 적어 열량이 별로 없는 '수퍼 쿨'한 식물이다. 그런데 대사미네랄인 마그네슘 함량이 높기 때문에 흰 밀가루에 천년초를 첨가해 빵이나 국수 등을 만들면, 대사율이 증가해 풍부한 항산화제가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따라서 천년초는 비만, 당뇨 등 각종 대사병과 암을 예방해주는 기능성 식품원료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 손바닥 선인장인 '천년초'는 개발 광풍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이기영

현대인에게 '보석 같은 식물', 천년초

암이 30년 전보나 20배나 증가하고 노인들의 절반이 암으로 사망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특히 10년 전보다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이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여성의 갑상선 암이 급증하면서 1985년 체르노빌사태로 발생한 핵물질의 영향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어쨌든 나이가 들수록 암에 걸려 큰 고통을 받지 않고 살다 죽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감한다. 많은 사람이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화된 세포가 변이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잔류농약이나 방부제 등 발암성 물질이 들어있는 나쁜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한 것 또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농약을 살포한 채 온실에서 재배해 항산화제가 거의 없는 채소나 과일을 먹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농약을 뿌리면, 농작물 주변 해충이 사라져 식물들이 이를 내쫓기 위해 만든 독가스인 특징적 향기물질과 맛 성분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온실에서 키우면 자외선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므로, 식물이 자외선 때문에 생기는 유해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생성하는 항산화제인 각종 색소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이러한 식물 고유의 향기나 맛, 색소 성분을 '화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강력한 항산화와 항균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작위적으로 대량생산된 농작물엔 이러한 성분이 매우 적게 들어 있다.

그나마 속껍질을 거의 깎아내고 먹는 곡류는 미네랄과 비타민, 효소는 물론 화이토케미컬 류까지 사라져 전분 상태의 흰 쌀이나 흰 밀가루 일색이다. 이를 주원료로 하는 밥이나 빵, 국수 등의 음식을 매일 먹을 경우, 에너지 대사가 제대로 안 일어나 비만·당뇨·고혈압 등 각종 대사병에 걸리는 것은 물론 면역력 또한 떨어진다. 이 때문에 어린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토피와 천식으로 고생하고, 어른들은 자연사(自然死)하기보다는 암으로 장기간 고통 속에 생(生)을 마쳐야하는 비운을 맞는 것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아토피는 아기 100명 중 한두 명만 발병하고, 돌이 되면 사라져 '태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구나 종로구에 거주하는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아토피에 시달리며, 일부는 평생 지속된다.

항산화제의 이러한 진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80년대 초, 필자는 이미 들깨의 항산화제인 클로로겐산을 분리하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약재나 산야초 등 건강에 좋다는 100여 종 식물의 항산화제를 연구해왔으며, 1993년부터는 미국 샌안토니오 소재 텍사스 보건대에서 2년 동안 알로에 항산화제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알로에의 주요 항산화물질이 비타민 E와 비슷한 구조인 '크로'몬 화합물임을 밝혀냈고 세계특허를 내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많은 항산화제 식물 중에서도 우리 토종선인장인 천년초에 주목했다. 천년초에는 항산화제가 보통 식물보다 수십 배나 함유돼 가히 '항산화제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가공식품에 부족한 수용성 식이섬유와 칼슘 및 마그네슘이 풍부하다. 흰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빵·과자에 천년초를 첨가해 먹으면, 신진대사가 왕성해지고 면역력이 증가해 각종 현대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제는 조상 대대로 내려 온 행주나루 한강 변 텃밭에 천년초 체험농장을 조성해 천년초로 만든 가공식품 연구와 개발 및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과 함께 인성을 키워주는 밥상머리 교육에 힘쓰고 있다.

천년초는 가공식품의 범람으로 예전엔 없던 대사 장애로 비만·당뇨·고혈압·암 등으로 타격을 입은 인류의 건강에 '보석 같은 식물'이다. 천년초는 우리 배달겨레의 민간 전래 약재인 손바닥 선인장의 일종으로 이름처럼 '1000년을 산다'는 장수식물이다. 심은 지 3년이 지나면 뿌리에서 인삼냄새가 나 '태삼(太蔘)'이라고도 부르며, 다년생으로 나이를 알 수 없어 '불로초(不老草)'라고도 했다. 어린 시절엔 집집이 담장 아래에 천년초를 키워 상처가 나거나 화상을 입었을 때 구급약으로도 사용했다.

당시 아이들은 매일 나가 놀다 밤이 되어야 집에 돌아왔는데, 중간에 들어오는 경우는 백발백중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였다. 그러면 어머니들은 화단에서 천년초를 따 잘게 자룬 후 주발에 갈아 환부에 붙여줬는데, 이상하게도 통증이 바로 멎고 상처도 쉽게 아물었다. 그때만 해도 천년초는 돼지감자처럼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먹어도 힘이 나지 않아 식용으로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압축 경제성장으로 초가가 사라지고, 아파트 문화로 바뀌던 80년대 말 천년초가 몸에 좋다고 알려지자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하면서 잊힌 식물이 되었다.

천년초 연구, 시작은 혜민스님 덕분…

▲ 혜민스님 ⓒ이기영
일생 천년초 연구에 매달리게 된 데는 10여 년 전 우연히 만난 혜민(慧民)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충청도 아산에 있는 선문대에서 지구온난화와 환경호르몬 문제 등에 대한 1시간짜리 환경 강연을 마치고 나오니, 키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샛별처럼 눈이 빛나는 스님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스님은 환경보호 활동에 큰 관심을 표명하며, 자신이 주지로 있는 학성산 인취사(仁翠寺)를 꼭 한번 방문해 달라며 전화번호를 주셨다. 며칠 뒤 주말, 필자는 순천향대학교 근처에 있는 인취사를 찾았다. 초여름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절인 인취사 입구 연못에는 하얀 백련 꽃이 만발해 있었고, 대웅전 앞뜰엔 각종 수련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스님은 군데군데 기운 모시옷을 입고,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붓글씨를 쓰다 일어나 필자를 맞으셨다.

스님은 손수 덖으셨다는 백련차를 따라주시며,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연못의 백련은 다 스님 자식이라고 소개했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께서 백련 세 뿌리를 준 것이 전국의 연못을 하얗게 장식한 백련의 시원이 됐다고 한다. 또한 매년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탄신일과 기일에 제사를 모시며 기념비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청화(靑華)'라는 붓글씨 한수를 주셨다. '청화'는 이후 필자의 아호가 되었다.

스님은 필자가 식물항산화제를 연구한다는 말을 듣고, 천년초를 재배하는 한 농부의 명함을 건넸다. 필자는 아산 신창면에서 천년초 수만 평을 재배하는 농부인 김복현 씨를 찾아가 농장을 둘러본 후 천년초 연구를 시작했다. 이제 혜민스님은 환경운동 동지이지만, 인류와 민족의 앞길을 제시해 주는 필자의 멘토이자 속마음을 털어놓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이다.

6월 초엔 행주 한강 변 우리 천년초 농장에 장미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이구동성인 천년초 수백만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날 것이다. 필자는 이맘때면 농장을 개방해 당대 최고의 음악인이었던 '다산 정약용 기념 음악회'를 열면서 사람들에게 천년초를 소개하고 있다.

이기영 교수 약력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 출생(1957년)으로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거쳐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9년), 미국 텍사스 보건대 생리학과 부교수를 역임했으며(1993-1995년), 현재 호서대학교 바이오산업학부 식품공학과 정교수로 일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천년초 연구에 몰두해 왔으며 (주)천년초체험농장을 창업, 천년초 보급에 애쓰고 있다.

노래를 통한 환경운동을 해왔으며 그가 작곡한 '김치된장청국장' '지구를 위하여' '한강은 흐른다' 등은 초등,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

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천안·아산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이사, 환경문화예술진흥회 운영위원장, (사)한살림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8년 제6회 천주교환경상(과학기술부문), 2003년 제1회 EBS자연환경대상(문화예술부문), 2006년 환경의 날 유공자 표창, 대통령 표창 및 훈장, 2007년 환경의 날 충남환경보전대상 개인부문 금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노래하는 환경교실' '음식이 지구다' 등이 있고 '영원한 고향' '나의 나무' 지구를 위하여' 등의 음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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