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폭력은 구성원 모두의 문제입니다"

[인터뷰] 이윤상 KBS 성평등센터장

"직장내 성희롱, 성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일이라는 생각 자체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조직 문화가 있고, 거기에 우리가 다 몸담고 있습니다. 그 문화 속에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가 존재하고, 나는 피해자의 친구일 수도, 가해자의 친구일 수도, 혹은 사건이 발생한 부서의 부서장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은 직장 내 성희롱에는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많습니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 피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고려해 사건 발생 자체를 떠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 혹은 떠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그건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일’이라고 경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해자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성찰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그 일에 연루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방송공사(KBS)에 성평등센터가 생겼다. 국내 언론사 중에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고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별도 기구가 개설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KBS에 이같은 기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보수정권 하에서 이어진 파업과 올해 초 터져나온 '미투(#Me too)'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1월말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희롱 사건 폭로 이후로 사회 각계에서 '미투' 고발이 이어졌고, 언론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2월 KBS 여성협회에서 자체 조사 등을 통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고, 양승동 사장이 이 요구를 받아 사장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취임 후 이 공약을 이행했다. KBS는 초대 성평등센터 센터장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등을 지낸 외부 전문가를 센터장으로 뽑았고, 한달여 준비기간을 거친 뒤 지난 11월 13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평등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이윤상 성평등센터장은 6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KBS에 이 같은 기구가 필요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 3가지를 꼽았다.

"첫째, 방송사는 남성중심적 문화가 강합니다. 저도 깜짝 놀랐는데, 여성 입사 비율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최근 일이다보니, 의사 결정을 하는 고위직에는 여성의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또 방송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노동강도가 세고, 이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다보니 일-가정 양립 문화가 잘 정착되지 못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둘째, 방송이라는 일의 특성상 정규직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이 존재하고, 위계 구조가 뚜렷한 업무 구조 내에서 비정규직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현재 KBS 내 정규직은 4600명이며, 비정규직과 자회사 포함 KBS 관련 직원이 4500명 정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평등센터에서 관할할 수 있는 사건의 범위가 정규직에 한정되면 안 됩니다. 현재 운영 규정을 마련 중인데, 비정규직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 KBS라는 기관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회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규모도 크고,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공사입니다. 또 방송사라는 측면에서도 향상된 조직 내부의 성평등 문화와 젠더 감수성이 더 좋은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KBS에서 성평등센터를 잘 운영한다면 MBC, SBS 등 타 방송사도 유사한 내부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4명으로 구성된 성평등센터는 상담.조사인력 등 외부 전문가 채용을 통해 6명 정원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한다. 이 센터장은 올해 초 터져나온 KBS 내부의 미투 사건에서 확인된 문제로 '2년'에 국한된 징계 시효 문제가 있었다면서 성폭력 사건의 조사와 해결을 위해 필요한 내부 규정들을 검토하고 만드는 일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평등센터가 열리기를 기다렸던 직원들도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감사실도 있는데 왜 이런 조직이 또 있어야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부의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인정하고 계십니다. 센터가 누구를 비난하거나 혼내려고 생긴 것이 아니고, 성평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조직에 퍼뜨리고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이 일하기 좋고, 이런 영향이 생산된 콘텐츠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KBS성평등센터를 설립하는데 영향을 미친 '미투'에 대해 이 센터장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저는 이제는 우리 사회가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강요된 침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백래시도 존재하고 이런 흐름을 거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결국 그분들은 낙오할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는 정당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상당히 확산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서 여성들의 노력이 유야무야 되지 않도록 해야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KBS 성평등센터도 이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센터장은 마지막으로 성평등센터를 찾아도 될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구성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덧붙였다.

"이러다 방송계에 발을 못 붙이면 어쩌지, 괜히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등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평등센터 온다고 당장 사건이 접수되고 기록이 남고 그런 수순으로 일이 진행되는 게 아닙니다. 비공식적인 상담도 가능하고, 혼자 고민하다보면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오히려 더 모를 수 있습니다. 나의 고통, 피해, 염려, 두려움을 얘기하고 경청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평등센터는 그런 문턱 낮은 곳이 되고자 하는 게 목표입니다."

▲ KBS 본관에 위치한 KBS성평등센터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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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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