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 '유신 미화' 발언 파문, 37년 전 그는…

정몽준ㆍ이재오 "국민을 행복한 돼지로 보냐" 맹비난

1975년 4월 23일, 기자협회 부회장 홍사덕 중앙일보 기자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 등과 관련해 IPI(국제신문편집인협회)와 IFJ(국제기자연맹)에 '한국의 현 언론 사태에 관한 보고서'를 보내려다 발각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이후 풀려난 홍사덕 부회장 등 기협 회장단 5명은 4월 29일 전원 사퇴하게 된다.

유신의 서슬이 퍼랬던 시대의 일이다. 홍사덕 기자가 이같은 고초를 겪기 불과 보름여 전인 4월 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8명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지 18시간만에 사형을 당한다. 국제 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다. 두 사건 모두 중앙정보부가 개입돼 있었다. 홍사덕 기자는 37년 후 새누리당 박근혜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내게 된다.

홍사덕의 "유신으로 수출 100억달러"…박근혜도 같은 인식?

▲ 홍사덕 전 위원장 ⓒ연합
홍사덕 전 위원장이 29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유신을 한 것"이라며 "유신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달러를 못 넘었을 것"이라고 말해 비판이 일고 있다.

홍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와이셔츠와 가발을 만들고 쥐와 다람쥐까지 잡아 팔아서 1971년까지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지만, 100억 달러는 중화학공업 육성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야당 등에서 유신을 얘기할 때 안 좋은 부분만 얘기하고 좋은 부분은 빼는데 이는 참 비열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홍 전 위원장의 발언은 박근혜 후보가 지난달 16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유신에서 일어났던 국가 발전 전략과 관련해선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옹호성 발언을 한 것과 맥이 통한다. 이후 지난 20일 대선 후보 확정 당시 기자회견에서 유신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질문에 "자꾸 과거로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면서 논의 자체를 봉쇄하기도 했다. 5.16쿠데타에 대해 박 후보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었다.

정몽준·이재오 '끌어안기', 과거사 인식 빌미로 물거품 되나?

야당은 물론이고, 당장 당내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100% 대한민국'을 내건 박 후보 측이 '통합'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정몽준 의원, 이재오 의원이 홍 전 위원장의 인식에 대해 정면 비판한 것이다.

정몽준 의원은 홍 전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30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10월 유신이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에 크게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유신의 논리란 먹고사는 것은 권력이 해결해 줄 테니 정치는 필요없다는 것. 국민을 행복한 돼지로 보는 격. 유신과 동시에 북한도 주체사상과 주석제를 명기한 헌법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잘했다고 해야하는지"라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은 박근혜 후보 주변 인사들을 '환관'으로 표현한 적도 있다. 유신에 대한 옹호 등, 박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일부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재오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박 후보의 '국민 통합 행보'를 전반적으로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관된 과거사 관련 인물, 단체를 찾아 다니는 것이 "독재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찾아가고 내가 손 내밀면 화해와 통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오만한 독재적 발상"이라고 박 후보를 겨냥했다.

정 의원이나 이 의원이 향후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은 "물건너 갔다"는 평도 나온다. 실제 이재오 의원 측의 경우 박 후보의 '러브콜'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의 '통합 행보'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관측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박계인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전날 "유신 시대의 아픔에 대해 박 후보의 얘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어느 시점이 돼 사전 정지작업이 이뤄지고 나면 (인혁당 사건)유족을 만나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 소속 한 인사는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는 것과 인혁당 사건 피해자를 방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라며 "인혁당 사건 피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인자'로 본다. 이 때문에 박 후보가 설사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려는 의지를 보인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희, 용공조작 사건 피해자 보상금 깎은 판결 주심 경력

대법관 퇴임 48일만에 박근혜 캠프 핵심으로 직행한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의 과거사 관련 판결도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안 위원장은 지난 2011년 1월 대법원이 인혁당 사건, 이수근 위장간첩 사건, 태영호 간첩 조작 사건 등 박정희 정권 시절 용공 조작 사건에 대한 '위자료 지연 이자'를 대폭 깎는 판결에 참여했었다. 안 위원장은 당시 '1968년 태영호 사건' 피해자와 유족 57명이 낸 소송에서 원심 배상액 70억 원(위자료 24억여원, 지연이자 46억여 원)을 25억여 원으로 줄이는 판결의 주심을 맡았다.

인혁당 사건 관련 피해자 가족 6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위자료 235억여 원에 34년간 지연이자 400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깨고 지연 이자를 13개월 간 12억여 원으로 감액한 판결의 주심은 신영철 대법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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