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남북군사합의는 비핵화 위한 버퍼링 작업"

[인터뷰] 김종대 정의당 의원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3차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군사 분야 합의'를 꼽았다. 김 의원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 종식'에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으로 미국까지 포함한 3자 종전선언으로 가는 중간단계이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으로 가는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언급한 것을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일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대국민 보고에서 "이번 비핵화는 사상 처음으로 북미 양 정상 사이에서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북미 양 정상이 국제 사회에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행되리라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평화협정으로 가는 여정에서 "예선전"을 치른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준결승, 결승 등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서 참패할 경우, 지금까지 추진해온 한반도 정책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강경파들은 호시탐탐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엎어지길 바라며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남한과 북한도 각각 내부에 반대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벌써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서해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등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있다. (9월 21일 김성태 원내대표)"며 '퍼주기 논란'을 또다시 꺼낼 태세다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 내 강경 군부 세력을 제어하면서 비핵화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태다.


김 의원은 "평화는 유리와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각국의 지도자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평화의 신념'을 설파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듯 미국 국민들에게도 자유·평화·민주주의의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김 의원은 말했다.


다음은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 ⓒ프레시안(이재호)

"군사 합의, '남북미 종전선언' 엔진 재가동"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공동선언' 부속으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어떻게 보나?

김종대 : 3차 남북 정상회담과 '평양 공동선언'으로 지난 7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에 대한 원칙이 재논의되고, '전쟁 없는 한반도'가 가시권에 진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3자 종전선언으로 가는 엔진이 재가동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군사 합의'는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으로, 구체적인 이행 방안까지 담겨있다. 여기에 미국이 합류해 내용을 조금만 더 확장한다면, 3자 종전선언의 중간단계 2자 종선선언을 한 것이다. 지금은 주어가 '남북'으로 되어 있지만, 향후 미국이 합류한다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으로 진화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으로 가는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다"

프레시안 : 미국에서도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까?

김종대 : 미국은 '군사 합의'에 대한 관심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신고-사찰'에 집중하고 있다. 비핵화 신고 여부에 따라 종전선언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와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군사 합의'는 비핵화 문제와 짝을 이루는 것인데, 현재 비핵화 문제는 괄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남북 간 합의된 내용이 있다고 해도 괄호 밖으로 보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정상회담의 명분 확보를 위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띄운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만 한 소재는 되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북한 핵폐기의 수순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미국은 여전히 '신고'와 '사찰'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핵폐기, '신고-사찰 및 검증'이라고 하는 경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는데 북한이 핵 시설을 신고한다고 한들, 미국은폐했다며 의혹을 제기하면, 사찰단을 보내겠다고 하면, 북한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증'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 깨졌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문 등 좋은 합의가 있었지만, '신고-사찰' 단계로만 들어가면 서로 '못 믿겠다'며 판이 깨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여러 차례 경험한 바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상응조치가 없다는 주장이고. 합의점이 나오기 어렵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지금 미국과 북한 간에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 대책회의'한 남북, 결승전은 따로 있다"

프레시안 : 북한 측은 '미래 핵'에, 미국 측은 '현재 핵'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종대 : 그렇다. 미국은 북한이 그동안 보여준 조치는 '동결' 조치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이 어딘가에 숨겨놓은 '현재 핵'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현재 핵', 즉 영변 핵시설 폐쇄를 이야기했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북한이 반발 짝 양보한 셈이다. 그러면서 '종전선언과 등가교환을 하자'고 미국에 다시 묻고 있다. 미국이 어떤 응답을 할지는 우리의 중재외교에 달려 있다. 만약 미국이 '노(NO)'를 하면, 3차 정상회담의 성과는 부정된다.

또 어느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날 텐데, 그렇게 되면 상상력을 발휘해 파격적으로 순서를 바꾸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7월 이후 북미 간 교착상태는 상상력의 위기였다. 창의성의 위기였다. 기존 입장 그대로 하던 말만 계속하다 보니,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깨달은 것이다. 이래서는 문제가 안 풀린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허심탄회하게 한 것이고. 그래서 3차 정상회담은 남북이 '트럼프 대책회의'를 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숨겨진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은 어디까지나 예선전이고 준결승과 결승전은 따로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자만하면 안 된다.

"'군사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버퍼링 작업"

프레시안 : 남북 두 정상의 친밀감은 나날이 돈독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제든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번 '군사 합의'가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 같은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김종대 : 그렇다. 남북한 문제는 사실 우발적인 충돌 발생에 있다.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재래식 군사 분야의 충돌이 발생하면, 비핵화의 판이 깨진다. 비핵화 프로그램이 잘 작동되려면, 운영체계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군사 합의'는 그에 앞선 일종의 버퍼링 작업이다. 이 작업이 없으면 향후 비핵화 프로그램이 불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후가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군사 합의'를 보면, 과거 북한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상당수 들어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같은 조치에 합의했을까.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또 '군사적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전방 초소(GP) 철수처럼 다소 분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부분도 있다. GP는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상대방에 근접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시설물이다. 정전협정 상 DMZ에는 무장 시설이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무장한 채 DMZ에 있는 게 GP다.

북한의 경계 작전 개념을 보면, 전방 GP를 주축으로 경계 작전을 수립했다. 남한은 후방 GOP를 경계 작전으로 설정해 놨기 때문에 전방 GP를 철수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후방에 다른 시설물이 없다. 따라서 GP 철수가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합의다.

북한이 전방 GP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이미 DMZ 내 생활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DMZ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파종기에는 몇천 명씩 들어온다. 농사를 화전으로 한다고 불을 놔 산불도 일어나고, 식수를 구하겠다고 들어오기도 하고. 북한의 전방 GP는 이렇게 군사적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계속 증가했다. 정전협정 상 DMZ에 수천 명이 들어오면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지만, 남한은 지금껏 묵인해 왔다.

그런데 DMZ 내 GP를 철수해 평화지대로 만든다면, 어느 쪽 손해가 더 크겠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이전 장성급군사회담에서 GP 철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그리고 이 내용이 합의문에 담겼다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프레시안 : 전쟁의 위험성을 종식시켰다는 건, 북한 내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종대 : 그렇다. 지난 7월 이후 <노동신문>을 훑어보면,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 군부 내부 단속이 중요 변수로 대두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이 원로장성이나 혁명원로를 예우하는 보도가 부쩍 많아졌다. '핵무기라는 보검(寶劍)을 내려놓으면 우리 안보는 어쩌란 말이냐? 무장 해제하자는 이야기냐?'와 같은 내부 강경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다. '핵무기 없어도 전쟁 위협을 줄였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군사 합의'가 절실했다.

이렇게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자유한국당은 '군사 합의'에 대해 "일방적 무장해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보수정당에게 북한은 항상 '공포'였다. 나약한 안보관과 패배주의적·비관주의적 발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모든 변화는 우리에게 공포다. 북한은 믿을 수 없다'라는 태도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핵은 놔두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했다'는 말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형성되어 있다.

"'전방 GP 철수', 2005년 한나라당 아이디어였다"

프레시안 : 자유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종대 : 사실 청와대가 평양으로 가기 전부터 걱정했던 지점이 부각됐다. 집권여당이 평양에 가기 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서둘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양 선언' 국회 비준까지 논쟁거리가 됐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했을 때처럼 합의문 제출 행위 자체가 정쟁이 됐다.


자유한국당의 '군사 합의=일방적 무장해제'라는 주장에 대해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 군사 분야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가기 전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을 통해 이미 합의된 내용이다. 또한 자유한국당 주장처럼 '무장해제'가 아니다. 수백조 원의 국방 예산을 투자해도 달성하지 못할 안보의 증진이며, 무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안보를 달성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라고 한들, 고민이 없겠는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4선언 발표 석 달 전, 한나라당은 대선을 겨냥한 대북 유화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내놨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GDP를 3000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각종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을 공약했다. 하지만 2008년 북한은 "이명박 역도"라는 말까지 쓰면서 거부했다.

핵폐기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어서 그렇지, '비핵개방 3000'에도 북한과 협력하는 좋은 안도 있었다. 그래서 2009년 임태희 비서실장이 비밀리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물론 청와대 내 강경파인 김태효 비서관이 MB를 흔들어대는 등 암투도 있었지만. 2014년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며 대북정책을 펼쳤다.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만 한다며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의 정치적 위치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 꼬인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전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방 GP 철수 대한 최초 아이디어도 한나라당에서 나온 것이다. 2005년 전방에서 남북한 군인들 사이에 미미한 총격전이 벌어지자,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발 장비를 위해 남북한 모두 전방 GP를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방 GP 철수 문제는 당시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도 이야기됐다. 이 안이 이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보수진영도 정치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평화가 본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냉전 본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선언', 흥분 가라앉혀야…"


프레시안 : 카퍼레이드와 백두산 등반 등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면서 여론은 호의적이다. 자유한국당의 반격, 과연 영향이 있을까?

김종대 : '군사 합의'의 실효성 문제로 이미 전선은 형성됐다. 보수정당은 김대중-노무현 등 대북 친화 정책을 쓰는 정권을 향해 경제에서는 '퍼주기론', 안부에서는 '무장해제론'을 주장했다. 우리가 치르는 희생과 부담이 크다는 걸 적극적으로 부각하며 세금이 얼마나 들어간다는 식으로.

그런데 현재 우리 상황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여러 퍼포먼스에 취해 있어서 그렇지, 냉철하게 보면 경제지표는 악화됐고 민생은 추락하고 있다. '왜 이런 비용을 써야 하지?'라는 의문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보수정당이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해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

따라서 퍼포먼스에 취하지 말아야 할 당사자는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평양 선언'의 실질적 의미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높은 정책 역량이 요구된다. 우리도 감정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번영의 고난과 역풍이 예상된다'는 발언을 세 번씩 하며 경고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움에 대해 첫날 환영만찬에서 한 번 언급했을 뿐 낙관주의로 일관했다. 지금은 예선과 본선을 치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결승전이다.

'평양 선언' 합의문이 완성도가 높지만, 그럼에도 2박 3일간 벌어진 평양 퍼포먼스에 취하는 순간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숙제가 많다는 걸, 정책 당국자들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남북미, 각각 국내 상황이 문제

프레시안 : 남북 모두 내부에 반대 세력이 있는 셈인데,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난관이 예상된다. 어떤 난관이 있을까?


김종대 :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면서 11월에 있는 중간선거가 어려워졌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정책 심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으면 트럼프의 구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대외정책에 변화가 생기는 결정적 계기가 바로 중간선거다. 2006년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대패하자, 그동안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고립과 압박을 가했던 북한과 대화하겠다며 급선회했다. '이라크 전쟁'에 실패한 네오콘도 전부 숙청했다. 그래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워싱턴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에워싼 채 '대북제재는 뚫렸으며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는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 "새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의 불법 무기 판매와 위장된 연료 선적, 불법 금융거래의 최신 증거가 담겼으며 국제 경제제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북한 무기기술자들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개발을 돕고 있으며, 시리아·예멘·리비아와 다른 분쟁지역에 무기를 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각 뉴욕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이처럼 '대북제재 강화'를 선동하고 있는 미국 강경파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다. 그리고 일본의 '고춧가루 뿌리기', 즉 납치자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에서 거론해 달라는 것 역시 위협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제외한 다른 여건이 좋지 않다. '평화정책'이라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성과가 나오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고난과 역풍'은 바로 그런 의미다. 남북한이 손을 잡고 연대해 같이 노력할 때만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호소한 것이다. 우리가 과연 지금 취해 있을 때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정치는 냉엄한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준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국제정치는 절대 기회를 주지 않는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미국 국민을 향한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현지시간으로 9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일단 긍정적인데, 이후 상황이 진전될까?


김종대 : 한미 정상회담이 더 중요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절반을 채웠다면, 나머지 절반은 한미 정상회담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회담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으로 수용하겠지만, 그럴수록 본인의 정치가 어려워지는 워싱턴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외교(公共外交, Public Diplomacy)가 있어야 한다. 미국 시민과 언론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기간인 1865년 3월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하면서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 앞에서 '150여 년 전 링컨 대통령의 메시지인 화해와 관용, 용서의 정신이 한국에서도 재현되기를 바란다'라고 연설한다면? 아니면,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나에게 꿈이 있다"며 설득한다면?

문재인 대통령, 미국 시민들과 '평화의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평양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양 15만 시민 앞에서 보여준 진심을 미국 시민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각오 없이 뉴욕을 간다면,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방미 일정을 늘리더라도 이런 공공외교, 평화외교가 있어야 한다.

여야 3당 대표가 평양을 다녀왔지만, 정작 대통령과 같이 가야 하는 곳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안 갈 것이다. 오히려 미국 내 싸늘한 시선을 믿고, 더 냉전적인 상황으로 갈 것이다. 평화번영시대에 냉전주의자들이 더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저쪽이 힘을 얻으면, 현재의 평화는 파괴된다.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프레시안 :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김종대 :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지난 9년 보수정권에서 안보는 더 나빠졌다. 평화는 유리와 같아서 아무리 애써 만든 것이라고 해도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깨져버린다. 평화가 가지고 있는 연약한 속성이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수반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를 한 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밀협상을 통해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으로 이스라엘군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철군했다. 하지만 1995년 라빈 총리가 암살된 뒤, 상황은 나빠졌고 전쟁에 돌입했다.

'평화'라고 하는 것은 완성되는 성격의 그 무엇이 아니다.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평화 체제를 완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느냐, 마련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성공했다. 그는 야당을 설득해 정권이 교체되어도 평화 체제가 유지되게 했다. 그렇게 독일은 통일이 됐고, 강국이 됐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바른미래당이 평양행을 막판에 취소한 것은 아주 아쉬운 대목이다.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킬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을 국회에 비준시키면서 초당적 상황을 만들 수 있었는데 실패했다. 국회 비준에 찬성하는 당대표들만 평양에 갔다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닌 본전치기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제2의 데탕트 시대' 열어야"


프레시안 : 청와대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미숙한 것도 있는 것 같다. 계속 문젯거리가 될 것 같은데.

김종대 : 협치(協治)에 능하지 않은 지도자가 평화에 성공한 적은 없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세워 바르샤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수차례 비공식 접촉을 가진 끝에, 1972년 중국 상하이에서 마오쩌둥 국가주석을 만나 '상하이 코뮈니케(Shanghai Communiqué)'를 체결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국교 정상화 합의 과정에서 '대통령이 내가 공을 독점하지 않을 테니, 지원해 달라'며 야당인 민주당을 직접 설득했다. 그의 노력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 위원회를 구성, 중국과의 수교를 뒷받침했다. '데탕트(Détente)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면서 에곤 바 외교안보 특사를 미국과 소련 등 주변국에 보내 설득했다. 첫 반응은 당연히 안 좋았다. 당시 키신저 보좌관은 브란트 총리를 '값싼 민족주의자'라고 말했다. 독일 야당인 기민당조차 브란트 총리를 인식 공격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브란트 총리는 평화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민당이 차기 정권을 잡았음에도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서명하면서, 독일이 통일시대를 맞았다.

지금처럼 이데올로기 전선이 강화된 한국의 경우, 그 어느 때보다 '평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양보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해 자신의 신념을 확산시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연정과 협치에 능한 지도자가 평화를 구현한다.

요즘 들어,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국내 정치의 연정과 협치가 대외정책과 평화정책으로 이어진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같은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이데올로기 전선으로만 해석했다.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이 차기 정권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아닌지.

만약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정책을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대북정책으로 계승하겠다'라는 선언이 나온다면…. 정말 꿈같은 나라가 될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요한 지적이다. 현 정부가 야당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평화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종대 : 과한 지지가 때로는 공격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 더 넓게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로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전선은 이미 형성됐다고 말했다. '군사 합의'에 대한 실효성 문제다. 이게 전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중심으로 이데올로기 전선이 형성되면, 무조건 정권에 분리하다. 따라서 후반기 국정운영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평화의 원칙과 비전이 이제는 승리로 이어지는, 그런 국정 운영이 되어야 한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는 1993년 미국 워싱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만나 가자지구·요르단강 서 안에 팔레스타인 자치를 허용하는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었다. 즉시 이스라엘 보수층이 반발했고, 각 도시에서는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70대 노(老)정객은 '반대 시위가 열리는 도시를 방문해 직접 설득하겠다'고 나섰고, 이듬해 한 도시에서 연설하던 중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가슴을 관통했다. 얼마 뒤 '평화의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가 피에 젖은 채 그의 양복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평화 지도자'로 자신의 희생까지 불사한 그의 용기와 신념은 이스라엘 국민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전 대통령은 아랍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의회에서 '당신들의 신은 우리와 전쟁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라는 연설을 하는 등 평화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빵 보조금 폐지와 같은 국내 정치 문제와 맞물리면서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들과 유럽 국가 정상들이 참석했지만, 그를 반대한 아랍 국가 및 공산주의 국가 정상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20세기의 마지막 평화정책이자, 21세기의 첫 번째 평화정책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지만,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자민련과 공동 정부가 깨지면서 '햇볕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권을 재창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10년간 유지됐다.

독일의 '동방정책'을 제외하면, 20세기 평화정책 중 10년 동안 지속하 경우는 '햇볕정책'이 유일하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그 정책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3대에 걸쳐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문재인의 평화정책은 역대 대북정책 중 평화에 가장 근접해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세 명의 지도자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결과다.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역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전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품격으로 평화정책을 성공시켜야 한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노회찬 서거, 그 후

프레시안 : 고(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진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정의당은 어떤가.

김종대 : 정말 악몽 같은 여름을 보냈다. 정의당은 '노회찬'이라는 큰 정치인을 잃고, 원내교섭단체마저 무너졌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탑이 무너진 기분이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든 구조물이 붕괴된 상황이다. 공든 탑이 무너졌는데, 격려가 조금 늘었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지 않나.

특히 원내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자, 자유한국당은 노골적으로 정의당을 배격하고 있다. 이정미 대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하는가 하면,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위원장에 내정된 심상정 의원에 대한 입장도 바꾸었다. 정의당을 헌정특위에서 배제한 뒤로는, 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국회 제1당과 2당이 '선거법 개정'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사실상 해태(懈怠)하고 있는 셈이다.

재벌의 청구 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제완화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처리하다니…. 집권여당이 보수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의 지위가 더 뚜렷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있다. 노회찬 의원 서거 후유증이 치유되거나 회복되지 않고, 더 악화하는 쪽으로 정국이 흘러가고 있다. 안타깝다.


정의당이 국민들에게 처지가 어렵다는 걸 진솔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국민들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을 닮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자는 꿈, 지금도 유효하다. 그 희망을 국민들과,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다.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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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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