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소라넷 하지?" 디지털 전투 일지 '하용가'

[인터뷰] 다큐 소설 <하용가> 정미경 작가

"너 소라넷 하지?"

소라넷. 몰래 카메라를 통해 불법 촬영된 여성들의 성적인 사진이 전시되던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으로 100만 유저들을 거느리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던 온라인 사이트는 2016년 6월 6일 폐쇄됐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운영진이 베일에 가려 있어서, 유저가 100만 명이나 되어서, 조폭들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그래서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던", 이 사이트를 폐쇄시킨 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항하며 온라인에서 싸우던 젊은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그들은 2015년 11월 소라넷 사이트의 '여친 게시판'(여자친구의 몰카를 찍어 올리는 게시판) 등에 '너 소라넷 하지'라는 제목의 글들을 도배해 사이트를 마비시켰다. 이 '승리'를 계기로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은 더 가열차게 디지털 성폭력과 싸웠고, 결국 소라넷을 폐지시키는데 가장 큰 힘이 됐다.


물론 디지털 성범죄는 소라넷 사이트 하나가 폐쇄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제2, 제3의 소라넷이 생겨나 여전히 불법 촬영물이 거래되고 있고, 여성들은 고통받고 있지만, 가해자를 잡아들이는 건 쉽지 않고, 제대로 처벌도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제 알고, 분노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다큐소설 <하용가>(정미경 지음, 이프북스 펴냄)는 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소라넷 폐쇄'를 이끈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나는 그 눈부신 승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 승리의 경험이 모든 여자들의 혈관을 타고 흐를 수 있도록, 오랫동안 각인된 여성 패배의 서사를 바꾸는 일에 더 많은 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마침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답을 손에 쥔 '이기는 여자들'이 될 수 있도록."


'작가의 말'에서 밝힌 이유다. 소라넷을 폐쇄시킨 그들의 힘은 '혜화역 시위'에 나온 수만 명의 여성들에게 이미 전파됐고, 결국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 책은 불법 촬영물을 사고, 팔고, 즐기는, 남성들의 왜곡된 성문화가 여성들의 일상을 얼마나 옥죄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보여준다. 디지털 성범죄의 실상에 대해,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의 분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바라건대, 여성의 몸이 저주가 되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이 소설이 작은 땔감으로라도 불태워졌으면 좋겠다"고 이 책을 쓴 정미경 작가는 말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장을 지낸 정 작가는 지난해 소설 <큰비>(나무옆의자 펴냄)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하용가>가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다음은 지난 8월 30일 정 작가와 나눈 대화를 요약한 내용이다.

▲ 정미경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하이 용돈 만남 가능?' 디지털 성폭력의 뿌리는 결국

프레시안 : 소설 제목이 인상적이다. <하용가>라는 제목은 어떻게 붙였나?

정미경 : '하용가'는 '하이 용돈 만남 가능?'의 줄임말이다. '용돈 만남' 혹은 '조건 만남'은 온라인상에서 성매수를 목적으로 특히 10대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이 인사말처럼 쓰는 말이다. 이 물음은 여성의 몸을 거래하는 일상적인 남성 성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일부 온라인의 여성 유저들은 성매매 문화에 반대하고 성매수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하용가'라는 줄임말을 쓰기도 한다.

소라넷이라는 공간에서 자행된 범죄와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여성의 몸을 침탈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하이 용돈 만남 가능?'이라는 물음이 갖는 폭력성을 환기하고 '하용가'라는 줄임말을 쓰는 여성들의 의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제목으로 했다.

프레시안 : 불법 촬영 범죄에 분노하는 여성들의 '혜화역 시위'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큰 고민 중 하나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이들을 통해서도 관련 고민들에 대해 전해 듣기도 했다. <하용가>를 읽고 든 생각 중 하나가 그들에게 여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하용가>를 읽어라'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미경 : 과찬이다. <하용가>를 청와대로 보내야 할까?(웃음)

프레시안 : 동의한다. 또 지금 워마드와 관련해 보도하는 언론 등 관련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이 책을 읽으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정미경 : 앞서 <근본없는 페미니즘>(김익명·강유·이원윤·국지혜·이지원·히연·정나라 지음, 이프북스 펴냄) 편집 과정에 참여했다. 이 책을 내면서 불법 촬영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 문제로 싸우고 있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이들은 '소라넷 폐지'에 대해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소라넷 폐쇄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항하던 여성들의 노력이 응축돼 승리로까지 나가게 된 경험이었다. 온라인은 정말 다른 세상이다. 계정을 삭제하면 없어지고, 사이트를 폐쇄하면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여성운동에서 이처럼 중요한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거의 모르고 있다. 나도 페미니스트지만 잘 몰랐다.

소라넷은 2016년 6월에 이미 폐쇄됐으니까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는 DSO('디지털 성폭력 아웃'의 약자. 2015년 10월 소라넷 폐쇄 운동을 위해 '소라넷 아웃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디지털 성폭력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에서 모니터링한 자료를 검토했다.

소라넷은 모든 여성의 '창녀화'를 꿈꾸는 곳이었다. 나이, 직업 상관없이 모든 여자들이 다 그냥 창녀, 걸레 취급을 받았다. 문제는 이게 소라넷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라인 남성 성문화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것이다. 소라넷에 올라온 콘텐츠가 일베(일간베스트)에 올라오고, 오유(오늘의 유머) 사이트에도 올라왔다. 불법 촬영을 통해 여성들의 동의 없이 찍힌 사진들을 보며 여성을 대상화하고 모욕하면서 이것을 정상적인 남성들의 성문화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유나 일베나 소라넷이나 똑같았다. 그리고 이런 온라인 성문화는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집단강간'을 생중계하던 소라넷

▲ <하용가>(정미경 지음, 이프북스 펴냄). ⓒ이프북스
프레시안 : 소설의 제일 앞부분에 소라넷에서 실제로 있었던 '초대남 모집' 관련 일화에 대해 썼다. '초대남 모집'은 남성이 술 취한 여성을 모텔로 끌고 가서 사진을 올려놓고 집단강간에 참여할 남성을 모집하는 글을 말한다. 집단강간을 실시간 생중계하는 셈이었다. 이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15년 12월 26일 '위험한 초대남-소라넷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라는 제목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초대남 모집'은 그 자체가 끔찍한 성범죄인데, 소라넷 유저들은 이를 마치 스포츠 중계라도 하듯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면서 보고 즐겼다.

소라넷 폐쇄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그 생중계 현장을 목격하거나, 자신이 아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는 등 성범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초대남 모집', 이 한 사례만 봐도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의 분노가 이해된다.

정미경 : 그렇다. 소라넷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정말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들의 피해 의식을 문제 삼기도 하는데, 여성들은 피해 의식이 있기 전에 피해 경험이 있다.

피해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게 하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성폭력은 은폐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젊은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은 SNS 등을 통해 성범죄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혜화역 시위의 중심인 '불편한 용기' 온라인 카페도 들어가 보면, 어느 대학에 몰카가 설치되고 대자보가 붙었는지, 어느 학교 남학생이 여선생 치마 속을 찍었는지 등 관련 뉴스와 정보가 공유된다.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면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피해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고 있다. 이런 자각들이 일어나면서 수만 명의 여성들이 시위에 나오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4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4차 몰카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 나가봤는데, 정말 놀라웠다.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소설을 보면서 온라인의 남성 성문화가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집단이 20~30대 남성들이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20~30대 남성들도 상대적으로 경제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위치에 처했고, 그러다 보니 여성을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자원을 뺏어가는 '경쟁자'로 의식하게 되면서 강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도 가능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에 온라인 성문화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소유의 대상이고, 짓밟을 수 있는 존재이며, 놀이의 수단'으로 여성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물화(物化)된, 비(非)인격화된 여성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이지만,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이런 여성들의 이미지를 접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현실에서 만나는 실제 여성들과 차이가 남성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미경 : 광주에서 한동안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쳤었는데, 한참 '패드립('패륜적 드립'의 약자. 부모나 조상과 같은 윗사람을 욕하거나 개그 소재로 삼아 놀릴 때 쓰는 말)이 유행했을 때였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어떤 여학생을 죽이는 방법으로 '걸레'라는 단어를 쓴다. 둘이 사귀면서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헤어지는 과정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짓밟을 때 등장하는 단어가 '걸레', '너희 엄마 창녀다'라는 말이다. 10대 초반의 아이들도 이미 자신의 또래 문화에서 한 여학생을 공포와 수치심으로 굴복시키는 방법을 학습하고 있다. 만약 '걸레' 소리를 듣는 여학생이 저항을 하면, 남학생들이 이 여학생을 강간하겠다며 쫓아다닌다. 남학생들이 해당 여학생에게 카카오톡과 문자 폭탄을 보내며 위협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여성 혐오'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의 좌절감 때문이라고 해도, 왜 그 대상이 여성이어야 하는가는 설명이 안 된다.

'워마드'를 비난하기 전에 그들의 '현실 세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언제든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통해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은 가부장제의 기본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남성들도 실시간으로 이런 왜곡된 성의식을 공유하고 확고히 한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정미경 : 맞다. 온라인은 정말 새로운 세계다. 기성세대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보이는 모습이 곧 현실세계에서의 자아(自我)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들은 페이스북 등 온라인이 정말 중요한 생활공간이자, 자아다.


전에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장으로 있을 때, 당시 군가산점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매우 뜨거웠다. 그때 나한테 메일 폭탄을 보내던 소위 '남성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하도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메일로는 온갖 막말을 쏟아내던 사람들이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너무 얌전하고 예의 발랐다. 여성운동을 하는,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대면을 하더라도 서로 체면과 예의가 있었고, 그게 현실 세계였다.

그런데 디지털 세대의 현실 세계는 온라인인데, 그들은 서로 얼굴을 대면하지 않으니 거리낌 없이 말한다. '너 밤길 조심해', '신상 털어 강간해 버린다'와 같은 말을 쏟아붓는다. 디지털세대는 근본적으로 문화가 다른 신인류다. 싸우는 방식이나, 스스로 정체화하는 방법이나 모든 게 너무 다르다. 혐오 단어가 일상화된 온라인 현실 상황에서 싸우면서 정체성을 만든 페미니스트가 남성들을 향해 '한남충'이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느냐'며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을 디지털 공간이 아닌 곳으로 끌어와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것은 기성세대의 심각한 오류다. 디지털 세대가 온라인에서 어떻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취향을 공유하고 자아를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소라넷에서 사용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육변기'(여성의 몸이, 곧 남성들이 성욕을 쏟아내는 변기라는 뜻. 이런 수위는 용어는 매우 점잖은 편에 속한다) 등 비속어들의 뜻을 보면 정말 끔찍했다. 100만 명이 넘는 남성 유저들은 이런 단어들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정미경 : 메갈리아에서 처음 미러링을 시작한 것도 여성을 지칭하는 비속어 때문이었다. 온라인은 만나지 않기 때문에 생김새, 표정, 행동, 말투 등에 대한 정보가 없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오직 언어다. 디지털 세대는 친구를 가려내는 것도,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도, 싸울 때도, 언어로 한다. 언어 자체가 아주 치열한 여성과 남성 전투의 장이 된다. 누가 먼저 언어를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말에 집착하는 이유다.

소라넷은 폐지됐지만 유사 사이트는 계속 생겨나


프레시안 : 소라넷은 폐지됐지만, 유사 사이트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소라넷에서 공유됐던 영상이 이런 유사 사이트에 그대로 올라와 있는 경우도 있다. 젊은 세대들에겐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전 남자친구가 섹스 동영상을 음란물 사이트에 올릴 수 있다는 게 일상이 됐다는 것 아닌가. 실제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런 일들이 무서워 남자를 사귀기 힘들다고 말한다. 반면 남성들은 몰카를 하나의 놀이이자, 재미, 대단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 놀이 때문에 사람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이들은 소수다.

정미경 : 그래서 책을 쓰면서 집중했던 것 중 하나가 피해 경험이다. 물론 나도 당사자는 아니지만, 여성들은 꼭 경험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게 있다. 하지만 남성들은 모른다. 그래서 피해 경험을 될 수 있으면 생생하게, 남성들도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공감할 수 있게 쓰려고 하다 보니 집필 과정이 너무 괴로웠다.

불법 촬영 범죄는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범죄다. 최근 한 남성이 74세 '박카스 할머니'를 성매수했다며 성기가 노출된 사진을 일베에 올린 사건에서 보듯, 나이든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사진을 올린 남성은 서초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몰카 범죄는 여성인 나를 향한 범죄이고, 나를 향한 침탈이다. 그런 점에서 10대, 20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소라넷 등에 올라온 글을 통해 본 남성들의 인식은 몰카를 자신들의 성욕을 해소할 권리 차원에서 보는 것 같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기존의 남자다움을 구성했던 모든 요소들이 잘려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것 하나가 섹스,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한 섹슈얼리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그것마저도 침해한다고 느끼니까 페미니즘에 엄청난 반감을 표한다.

최근에는 '딥웹(Deep Web)'이라고, 검색되지 않는 사이트들을 통해 음란물들이 유통되고 있다. 딥웹에서는 아동·청소년 강간물과 사지 절단 영상물 등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가 거래된다고 한다. 워낙 뿌리 깊은 문제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철저한 범죄화밖에 없다. 남초 사이트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인원을 파견해 영상 촬영자와 1차 유포자, 2차 유포자를 가려 처벌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인력과 공이 들어가겠지만, 남성들에게 놀이가 아니라 범죄라는 메시지를 계속 줘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엄마 몰카'까지 등장한 현실, '놀이'가 아닌 '범죄'다


프레시안 :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사회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너무 걱정되기도 한다. 일부 초등학생들이 유튜브에 엄마가 샤워하는 몰카를 찍어서 올린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다.

정미경 : 앞에도 얘기했듯이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문제는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너무나 오랜 문화다. 그러나 몰카, 불법 촬영 문제에만 집중하자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하게 범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 여성 입장에서 불법 촬영물로 인한 피해는 심하게 말하면 죽어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다. 피해 여성이 고통받다가 자살하면 그 영상이 '유작'이라고 불리며 여전히 유통되는 게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이다. 이에 비해 가해 남성들은 제대로 처벌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남성 집단에 분노를 쏟아내고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해 환멸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이라도 빨리 몰카를 찍고 유포하고 퍼 나르는 이들을 범죄자 집단으로 분리해야 한다. '몰카는 범죄다'라는 인식을 확실히 주면서 일반 남성과 범죄자 남성을 구별해야 한다. 그랬을 때 여성도 일반 남성이 아니라 가해 남성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제대로 처벌이 안 되니까, 너무 많은 남성이 몰카를 찍어서 올리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퍼 나르고, 웃고 즐기고 있다. 어떤 남성이 찍어 올리고, 어떤 남성이 퍼 나르는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여성 입장에서는 남성 전체를 범죄자 집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남성들 내부에서도 '나는 불법 촬영물을 안 찍고 안 본다'라는 운동이 그런 것 안 보고 안 찍는다'라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남성이 스스로를 가해 남성이 아니라 피해 여성과 동일시해야 한다.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성폭력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의지만 있다면 근절할 수 있다고 본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범죄화해야, 일반 남성도 경각심을 갖고 퍼 나르거나 하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여성들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에게 '나오지 마라', '시위 주도하는 이들은 워마드다, 나쁜 년들이다'라고 해봤자 분노만 커진다.

소라넷 폐쇄도 보면, 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여성들이 했다. 지금도 여성들이 하고 있다. 최근에도 일베에 여자친구를 불법 촬영한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캡처하고 경찰에 신고해서 범인을 잡았다. 경찰이 해야 하는 일들을 피해 여성들이 직접 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프레시안 : 최근 2016년 9월 디지털 성범죄 법안을 발의한 진선미 의원이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정미경 : 진선미 의원은 소라넷 폐지 과정에서도 도움을 주는 등 성범죄 인식이 확실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여성부 장관 하나 바뀐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선 제대로 된 법안도 없다. '몰카' 관련 법안이 전부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올해 같은 폭염에 7만 명의 여성들이 불법 촬영을 근절하라며 거기로 나왔다. 누적 참가자만 18만 명이다. 정치권에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국가가 의지만 있으면 근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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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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