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한 번 안 썩이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쉬지 않고 일하는 내 아들이…"

아픈 어머니와 타지 생활 여동생 챙긴 20대 용접공 조선소서 작업 중 쓰러져 숨져…아버지 '깊은 한 숨'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A씨의 빈소에 화환이 놓여있다. 2026.11.5 ⓒ프레시안(강병석)

"학교 다닐 때 사고 한 번 안 치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일했어요. 그렇게 부모 속 한 번 안 썩이던 아들이었는데…"

전남광주 영암군 대불산단에서 용접 작업 중 숨진 A씨(20대·남성)의 아버지는 아들을 떠올리며 비가 내리는 창밖을 말없이 바라봤다.

HD현대삼호 협력사 소속 용접공인 A씨는 지난 3일 오후 6시10분쯤 영암군 대불산단 조선소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5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들을 일찍 철이 들어 스스로 제 몫을 해온 든든한 아들로 기억했다. A씨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쉬지 않고 일했다. 엄한 아버지에게 살가운 표현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살뜰히 챙겼다고 했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여동생이 타지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매달 용돈도 보내 항상 챙겼다"며 "엄마가 2년 전부터 몸이 좀 아팠는데 항상 챙기고 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온 부부는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다 몇 달 전 집도 마련했다. 아들은 제 앞가림을 했고, 딸도 대학을 졸업해 병원에서 일하면서 아버지는 이제야 좀 화목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겠다고 희망하던 참이었다.

그는 "공장 잔업을 좀 덜 해도 되겠구나, 지금부터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이제 화목한 생활만 남은 상황에서 완전히 날벼락을 맞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지난달 31일 외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모인 자리였다. A씨는 이날 오래된 아버지의 차를 보고 자신의 차를 타고 다니라고 권했고, 아버지 몰래 차량용 방향제도 주문해 보냈다. 방향제는 사고 전날인 지난 2일 아침 집 앞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토요일에 아빠 차에 잠깐 앉아보고 방향제를 주문해서 월요일 아침에 문 앞에 와 있었다"며 "그런데 그 다음날 이렇게 될 줄은…"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생업에 매달리느라 아들과 여행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때는 자신이 더 해주겠다고 다짐하던 참이었다.

아버지는 "지금은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다. 뭘 열심히 해서 뭘 쫓아가야겠다는 희망이 없어졌다"며 "아들이 타던 차도 가져오고 물품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까 자신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들이 선박 내부에서 홀로 작업하게 된 경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제가 다니는 작은 회사도 야간 작업에는 최소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간다"며 "그 큰 대기업이면 그 큰 많은 숫자의 인원이 일을 하는 회사에서 그것마저도 안 지켰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고개를 떨궜다.

사고 당시 A씨는 선박 내부 탱크에 홀로 들어가 용접 작업을 하던 중 현장 반장에게 전화해 "어지럼증이 심하다"고 자신의 상태를 알렸고, 현장 반장은 "밖으로 나와서 쉬어라"고 답했다.

시간이 지나도 A씨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찾아 나선 동료들은 쓰러진 A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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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석

광주전남취재본부 강병석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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