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을 찾은 무슬림 관광객은 76만여 명으로 2022년 35만 9000여 명의 두 배를 넘었다. 같은 보도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온 한 관광객은 "한국에 왔으니 한식을 즐기고 싶지만 한국식 할랄 식당이 별로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을 먹으러 오는 외국인은 늘고 있는데 그중 적지 않은 사람이 식당 앞에서 같은 질문을 품고 망설인다. "이거 먹어도 되나요?"
무슬림 관광객은 돼지고기와 술, 이슬람 율법에 맞게 도축하지 않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다. 그런데 한국관광공사가 안내한 할랄 음식 제공 식당은 2024년 초 기준 전국 278곳, 서울 122곳이었고 서울의 경우 그중 29곳이 이태원이 있는 용산구에 몰려 있었다. 한식을 내는 할랄 식당은 서울에 18곳뿐이었다.
그나마 있던 정보도 줄었다. 관광공사가 식당을 무슬림 친화 정도에 따라 나눠 안내하던 사업은 2021년까지만 운영됐고 2024년부터는 관련 정보를 직접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남아 있던 목록에는 이미 문을 닫은 식당이 20곳 넘게 섞여 있었다는 취재 결과도 있다. 손님은 늘어나는데 손님이 기댈 정보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문제는 할랄 식당의 수만이 아니다. 한식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재료가 유난히 많은 음식이다. 고기가 한 점도 보이지 않는 된장찌개와 칼국수에도 멸치나 소고기로 낸 육수가 들어간다. 김치에는 새우젓이나 멸치액젓이 나물무침에는 액젓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볶음 요리에는 돼지기름을 고기 양념에는 맛술이나 청주를 쓰기도 한다.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도 술과 돼지고기를 피하는 무슬림에게도 이런 재료는 메뉴 이름만 봐서는 알 수 없다. 한 인도 유학생이 '한국은 채식하기 힘든 나라'라는 영상을 올려 논쟁이 일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채소 반찬을 골라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호소였다.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 인구만 해도 약 250만 명으로 추정한다. 외국인 관광객까지 더하면 이 정보가 필요한 손님은 훨씬 많다.
알레르기는 더 심각한 문제다. 땅콩이나 새우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숨은 재료는 불편이 아니라 위험이다. 가공식품에는 달걀, 우유, 메밀, 땅콩, 대두, 밀, 새우, 게 같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음식점은 다르다. 알레르기 표시 의무는 햄버거와 피자, 빵, 아이스크림 같은 어린이 기호식품을 파는 가맹점 50개 이상 업체에만 있다. 2021년 7월 대상을 100개 이상에서 50개 이상으로 넓힌 것이 지금의 기준이다. 대부분의 한식당은 표시 의무가 없다.
한식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많이 쓰이는 음식이기도 하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에는 대두와 밀이, 젓갈에는 새우와 게가 들어간다. 냉면과 막국수에는 메밀이 고명과 양념에는 잣과 땅콩, 호두가 쓰인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이를 직접 묻고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외국인을 위한 메뉴판 정책은 주로 음식 이름의 번역에 집중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 서울 식당의 32.4%가 메뉴판에 심각한 오역을 하나 이상 갖고 있었다. '육회'가 '여섯 번(six times)'으로 '동태찌개'가 '역동적인 찌개(dynamic stew)'로 번역된 사례는 지금도 회자된다. 2024년에는 한식진흥원이 홍합탕을 '홍어탕'으로 잘못 적은 책자 8만 부를 폐기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름을 정확히 옮기는 것만으로는 "먹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외국인 손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는지에 대한 정보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해산물, 젓갈, 술, 견과류, 밀, 대두, 메밀이 들어갔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름을 멋지게 번역하는 것보다 먼저다.
그렇다고 모든 식당이 할랄 인증을 받거나 채식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인증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작은 식당에는 부담이 크다. 필요한 것은 인증이 아니라 정보다. 무엇이 들어갔는지 정직하게 알려 주면 먹을지 말지는 손님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반가운 변화도 있다. 서울시는 2021년 채식 환경 조성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어 메뉴판에 채식 표시를 하는 식당을 늘려 왔고 2024년에는 채식 음식점 운영 매뉴얼을 펴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11월 지자체와 여행업계를 대상으로 채식·비건 관광객 응대 교육을 열었고 올해 6월 춘천에서는 비건 음식 축제가 열렸다. 다만 이런 노력이 개별 행사와 일부 지역에 머물러 있어 관광객이 실제로 들르는 식당의 메뉴판까지는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은 공공이 대표 한식 메뉴의 '표준 재료표'를 만드는 일이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비빔밥, 냉면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음식마다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와 알레르기 유발 식품을 정리해 여러 언어로 공개하는 것이다. 식당은 이 표를 바탕으로 자기 가게의 조리법에 맞게 고치기만 하면 된다. 번역 앱과 지도 앱도 이 정보를 가져다 쓸 수 있다.
메뉴판에 붙일 수 있는 공통 표시도 필요하다. 돼지고기, 해산물, 술, 견과류처럼 외국인 손님이 가장 많이 묻는 재료를 그림 표시로 만들어 지자체가 무료로 나눠 주면 외국어를 못 하는 식당 주인도 쉽게 정보를 알릴 수 있다. 육수를 채수로 바꿔 줄 수 있는 메뉴에는 그 사실을 함께 적어 두면 채식을 하는 손님의 선택지가 넓어진다.
이 기준은 식당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숙소의 아침 식사, 지역 축제의 먹거리 장터, 단체 관광객의 식단까지 같은 표시를 쓰도록 하면 관광객은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공공이 안내하는 할랄 식당 목록도 폐업 여부와 메뉴 변화를 정기적으로 확인해 정확하게 관리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음식을 먹으러 오는 시대에 메뉴판에 재료 정보를 담는 일은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관광 정책이다.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려 주는 메뉴판이 "이거 먹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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