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Z세대 반란'…2026년은 '제2의 1968'일까?

[장석준 칼럼] '젠지'는 '중산층'이 될 것인가, 아니면 파시스트가 될 것인가

지난 주말에도 프랑스에서는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이를 지지하는 노동자, 시민의 집회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참가자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 프랑스만이 아니다. 벨기에에서도 프랑스처럼 학교 현실 개선을 외치는 학생 시위가 있었고,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이 물가고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주거 문제에 초점을 맞춘 시위가 계속됐다. 그런가 하면 발칸반도의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에서는 청년들이 부정부패, 사유화 정책 등에 항의하며 정권에 맞서고 있다.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 시위들을 보면, 쟁점을 처음 제기한 집단이나 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예외 없이 다 젊은 세대다. 언론은 이들을 'Z세대(Gen Z)'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와 뭉뚱그려 'MZ'라 칭하지만, 사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하나로 묶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난다. 어느덧 40대가 됐거나 그에 가까워지는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Z세대는 대략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 시기에 태어난 10대 후반-20대다. 유럽 곳곳에서 현재 저항운동의 주축은 바로 이 Z세대다.

유럽만이 아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실은 남아시아다. 2022년 11월 스리랑카에서는 청년들이 정권을 독점하며 부패를 일삼던 라자팍사 가문을 몰아낸 '스리랑카판 4.19 혁명'을 성공시켰다. 2년 뒤인 2024년 여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역시 젊은이들이 궐기하여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몰아내는 혁명을 일으켰다. 다시 1년 뒤인 2025년 9월에는 네팔에서 좌파 연립정부의 부패에 항의하는 청년 시위가 또 다른 혁명으로 발전해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드디어 남아시아 최대 국가 인도에서 젊은 세대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극우 정부에 맞서 '바퀴벌레당'이라 자임하며 거대한 항쟁을 시작했다.

시야를 더 넓혀 보면, 거의 모든 대륙에서 요즘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의 맥을 잇는 세력이 집권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는 청년들이 이미 몇 년째 치열한 저항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극우 정부가 경제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정권에 맞서는 학생시위가 계속되는 중이다.

누가 보더라도 1968년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저항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60여 년 전, 베트남 전쟁이 촉발한 전 세계적 저항 분위기 속에 미국, 서유럽 여러 나라, 일본, 멕시코 등에서 잇달아 대중적이면서도 혁명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심지어는 철의 장막 반대편인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에서도 비슷한 대중운동이 펼쳐졌다. 이때도 투쟁을 선도하거나 시위대의 중심을 이룬 집단은 당시의 20대였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제2의 1968년'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만하다.

그러나 선뜻 '제2의 68년'이라 하기 힘든 커다란 차이도 있다. 1968년에 바리케이드 앞에 모인 젊은이들은 뚜렷한 좌파 성향을 보였다. 좌파 자체가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갈려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위대에서 당대의 우파가 좋아할만한 요소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Z세대라고 하더라도 나라마다 들고 있는 깃발의 색깔이 너무나 다르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시위대의 주력이 좌파 성향이라 할 수 있지만, 세르비아나 불가리아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정치 성향은 그렇게만 말할 수 없다.

남아시아 각국의 차이는 더욱 극적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청년 주도 혁명이 좌파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반면 네팔에서는 청년들이 좌파정부를 몰아내며 승리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좌파 민족주의 성향 정권이 타도 대상이 됐지만, 인도에서 '바퀴벌레당'은 공산당 등과 손잡고 모디 정권에 맞서 싸운다.

1968년의 항쟁들 역시 당시에는 '너무나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요즘의 Z세대 저항운동에 비하면 68년은 오히려 천편일률적이었다 해야 할 지경이다. 정치적 색깔이 좌파부터 극우파까지 널을 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Z세대 반란'이라는 진단은 혹시 한데 묶을 수 없는, 서로 너무나 다른 정치 현상을 지나치게 '세대' 중심으로 뭉뚱그리려는 작위적 시도는 아닐까?

'세대'는 진실을 가리는 가짜 딱지일 뿐일까? 그렇지는 않다. '세대'라는 틀에는 일말의 진실이 없지 않다. 다만, 이는 항상 '계급' 혹은 '계층'이라는 또 다른 틀과 함께 해야만 진실을 확연히 드러내준다. '세대'는 어쩌면 '계급-계층'의 완곡어법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염두에 두는 개념은 '노동계급'이 아니다. '중산층'이다. 물론 '노동계급' 개념은 오늘날 중대한 사회 현상의 행위자가 누구인지 가려내는 데 여전히 유용한 준거가 된다. Z세대 관련한 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오히려 미래에 더욱더, 이 세대의 생각, 행동과 노동계급의 존재, 구성, 역할 사이의 관련성이 더욱 뚜렷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중산층' 개념에 더 눈길이 간다. 그 전에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기에서 '중간계급(middle class)'이라는 보편적 용어가 아니라 굳이 '중산층'이라는 그 한국적 번안을 사용하는 이유다.

'중산층'은 사실 '계급'이 붙은 말이라면 모조리 기피하는 한국 특유의 풍토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의도하지 않게 '중간계급'보다 더 쓸모 있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노동계급' 개념과 충돌하지 않아서 그렇다. 노동계급의 상당 부분까지 아우르는 중간소득 집단을 가리키고 싶을 때는 '중간계급'보다 '중산층'이라 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각설하고, 그럼 Z세대 반란을 조망하면서 하필 '중산층'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Z세대의 저항 현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와 쟁점, 요구 때문이다. 북반구 국가들과 남반구 국가들, 자본주의 중심부와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 주된 관심사의 차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걱정거리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중에서도 교육, 주거, 재정 같은 쟁점이 도드라진다.

청년들은 현재 각 국에서 교육제도가 직면한 현실에 이의를 제기한다. 최근 프랑스 시위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교육 여건 악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의 교육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 그래서 그에 비례해 가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높아지는데, 막상 이런 학력을 갖춘 세대가 사회에 진출해 맞닥뜨려야 하는 일자리의 질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 또한 문제다. 나라마다 '만족'할만한 일자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생각은 다 다르지만, 지금 어느 나라든 그 '만족'의 수준에 근접하는 일자리를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은 다르지 않다.

주거 또한 심각한 쟁점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는 주택 문제 하나만으로 거대한 시위가 폭발하고 있고, 미국이나 영국, 독일에서는 주거난 해결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최대 정치 현안으로 부상했다. 그 근저에는 주택 가격의 지속적 상승이라는 현실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버블이 한 차례 붕괴했음에도 자본주의 전체에서 집값은 꾸준히 올라가고만 있다. 덩달아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오른다. 이제 막 일자리를 찾아 나서거나 직업 경력을 시작하는 세대는 도시에서 집을 사기도 힘들고 월세를 내기도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다.

거의 모든 시위 현장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근본 쟁점은 재정 문제다. 2010년대 금융-재정위기 이후 한 동안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긴축 정책이 직접적 공격 대상이 됐고, 남반구 여러 국가에서는 그간 정권(좌든 우든)이 반복해온 재정 운영 관행이 새삼 '부패'라는 비난을 받으며, 지금 프랑스에서는 부자 감세로 인한 국가 채무 급증이 모든 사회적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이런 문제적 재정 구조를 앞으로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 주거, 재정 같은 문제는 전형적으로 '중산층'과 관련된 쟁점들이다. 세계 역사상 중산층은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두, 세 세대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가한 전례 없는 사회적 존재다. 중산층은 교육 수준의 전반적 상승을 원동력 삼아 소득과 지위를 상승시키고, 도시에 자기 집을 소유함으로써 자산보유계층의 입지를 다지며, 세금과 복지수당(특히 연금), 금융투자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중산층 특유의 생존-생활방식과 Z세대의 봉기를 부추기는 쟁점들 사이에는 분명히 중대한 상관관계가 있다.

40여 년간 세계은행에서 일했고 지금은 브루킹스연구소 소속인 경제학자 호미 카라스의 저작 <중산층 연대기>(배동근 옮김, 아르테, 2025)(이 책 역시 원제는 "The Rise of the Global Middle Class", 즉 '전 지구적 중간계급의 부상'이다)는 중산층과 관련해 우리의 시각을 넓혀주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치밀한 이론이나 분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면서 가장 주목해야 할 한 가지 경향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전 지구적인 중산층의 지속적이고 폭발적인 확대다.

카라스는 현재 80억이 좀 넘는 세계 인구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0억 명이 중산층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는다. 이 수치 자체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구자본주의에서 전 지구적 중산층을 두텁게 형성하는 경향이 관철됐다는 진단만큼은 귀기울여볼만하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역사 서사다.

20세기 중반까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10억 명 규모의 중산층이 힘겹게 등장하고 나서, 20세기 말에 가속화된 지구화를 통해 생산 사슬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동유럽을 거쳐 중국, 인도로 차례로 확대되면서 중산층이 매번 10억 명씩 급증했다는 것이다. 카라스는 2030년까지 그 규모가 50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이런 서사는 그간 지구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국면을 비판해온 좌파에게는 과장된 낙관론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비록 추계에 과장이 섞여 있더라도 현실의 중요한 일면을 부각시켜준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지구화-금융화-정보화로 인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중산층의 삶이 불안정해졌다고 하지만, 그 규모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중산층에 포함됐던 상당수 노동계급의 소득이나 지위가 하락하기는 했으나 다른 사회제도들(여전히 꽤 넉넉한 공적 복지 등)의 보완 덕분에 아직은 전 지구적 중산층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한 새 축적 구조에 적응한 고학력 중간계급이 계속 배출됐기 때문에 중산층의 규모가 줄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더 늘었다.

그런 와중에 지구화-금융화-정보화의 결과로 지구의 다른 쪽, 즉 지구자본주의의 새로운 축적 중심들에서는 중산층이 급증했다. 과거 주변부였던 나라들이 급속하게 공업화하면서 이에 발맞춰 평균 학력이 급상승했다. 또한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대거 이동하는 와중에도 전체 가구의 절반 정도에게 자기 집을 소유할 기회를 주는 전례 없는 위업이 달성됐다. 한국, 대만에서 중국, 인도에 이르는 여러 나라에서 지난 한, 두 세대에 걸쳐 벌어진 일을 소득 수준이나 학력 분포, 자가 보유 현황 등의 지표로 살펴보면, <중산층 연대기>가 제시하는 역사의 큰 줄기를 부정하기 힘들다.

문제는 바로 이 거대한 성공에 있다. 수십억 명의 전 지구적 중산층을 등장시킨 지구자본주의의 인류사적 위업이야말로 오늘날 Z세대가 거리에 나오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다. 지구자본주의는 일단 대규모 중산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인류가 처음 겪는 성공이기에 이 대성공을 어떻게 해야 후속세대에 지속시킬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즉 Z세대가 이 성공담의 계승자가 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다. 지구의 거의 모든 곳에서 Z세대는 이 초유의 난제를 이미 절실히 감지하거나 절박하게 예감하고 있다.

우선 거대 중산층의 존재에 바탕을 둔 지구자본주의 자체가 본래 심각한 모순을 내장하고 있다. 모든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교육 수준이 이전 세대보다 올라가고 있고, 그렇다면 일자리의 질도 이전 세대에 비해 지속적으로 상승해야 한다. 그러나 전 지구적 중산층 확산의 토대가 된 지구화-금융화-정보화는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지구화 논리 덕분에 제조업이 새롭게 급속히 발전한 지역은 같은 논리 때문에 경쟁 지역들이 늘어남으로써 불과 한 세대만에 일자리의 질을 위협받는다. 게다가 정보화의 종국적 결과는 지구 전체의 고학력 중산층에게 AI라는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지구적 지식 중산층은 등장한 지 고작 한, 두 세대만에 '최후의 심판'을 마주해야 한다.

주택 문제에서도 비슷한 모순이 작동한다. 전체 가구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 도시에 자가를 보유하게 되면, 집값의 지속적 상승을 바라는 쪽으로 여론이 쏠린다. 여기에 금융화라는 요인까지 더해지면, 집값, 더 정확히 말해 땅값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땅값 상승이 자가보유계층의 금융 행위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시의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임대료 역시 상승하면, 중산층 후속세대는 극심한 주거난에 시달려야 한다. 지금 이런 일이 서울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대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정 문제를 보자. 중산층을 형성하려면 인프라 투자나 공적 복지제도에 막대한 돈을 써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이 돈을 조세 아니면 적자 재정, 즉 차입을 통해 해결해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국면에 들어서자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전자보다 후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자본에 맞서던 '노동계급'의 힘은 약해진 반면 자본의 힘과 함께 '중산층'의 규모는 커진 역사적 국면에 어울리는 계급타협의 한 형태였다. 세입-세출 순환의 규모가 줄어들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대신 그만큼 채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자본의 무대가 확장됐고, 거대 자본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이 무대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계급타협 형태마저 한두 세대를 더 버티지 못했다. 지구자본주의 자체가 초래한 여러 가닥의 위기들, 즉 기후위기, 인구위기, 전쟁위기 등이 지구자본주의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미래 기대 수익률이 점점 더 불안정,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타협은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다. 이것이 Z세대가 성년이 돼서, 혹은 이를 앞두고 마주하는 전 지구적 현실이다.

그렇다. 문제는 여전히 자본주의다. 그러나 이것은 20세기 초에 고전 파시즘의 모태가 됐던 자본주의와 '같은 형태'의 자본주의는 분명히 아니다. 지금 온갖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전 지구적인 대규모 중산층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다. 이 자본주의가 이제까지의 위업에 어울리는 미래를 전혀 약속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Z세대는 나라마다 천차만별인 이념-정치 지형에 따라 극히 다양한 형태로 불안과 불만, 항의를 쏟아내고 있다.

Z세대의 정서나 상식, 집단행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민주주의의 성숙이냐 후퇴냐의 측면에서 낙관하기도 어렵지만 비관만 할 일도 아니다. 인종주의와 혐오 담론, 음모론이 온라인 공간을 달구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세대와 노동조합이 연대하는 광장이 열리기도 한다. 트럼프가 집권하고 머스크가 환호를 받기도 하지만, 맘다니가 등장하고 룰라가 승리하기도 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Z세대의 불안과 불만이 어떤 구체적 선택으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인류사의 경로가 최선 아니면 최악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20세기 초의 고전 파시즘은 당대의 '중산층' 문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전쟁과 대공황의 타격으로 몰락하던 구 중산층과, 이제 막 등장하는 중이던 소수의 지식 중산층의 선택에 따라 이탈리아, 독일에서 파시즘이 성장하고 집권했다. 반대로 노동계급의 강력한 영향력이 중산층에게까지 미쳤던 프랑스, 영국에서는 파시즘이 성장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현대 파시즘 또한 '중산층' 문제다. 자체 모순과 복합위기 앞에서 지속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받고 있는, 거대 중산층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의 궁지가 파시즘 부활의 온상이 되고 있다. 점점 더 '말세 파시즘'(Naomi Klein & Astra Taylor, <End Times Fascism>, Allen Lane, 2026)의 꼴을 갖춰가고 있는 현대 극우 이념-운동은 오직 종말론적 파국(=민주주의의 폐기)만이 이 난마처럼 얽힌 상황의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중산층, 특히 그 미래 세대를 유혹한다.

이 점에서 지금 지구 곳곳에서 펼쳐지는 Z세대의 반란은 1968년 변혁운동의 단순한 반복도 아니고, 그렇다고 파시스트 행진의 불길한 전조도 아니다. 이 모두가 혼재한 인류사적 가능성들의 용광로다.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고교생 시위대가 프랑스 국기와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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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공부했고,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 ·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지도>(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포식하는 자본주의>, <좌파의 길>, <길드 사회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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