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민석 대표는 민주당 유튜브 방송에서 탄핵을 포함한 모든 방법과 경로를 올려놓고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와 법사위원들이 거론하는 탄핵 사유는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거부, 국정감사 증인 선서 거부, 업무추진비 사용 의혹이다.
그러나 탄핵 논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문제의 핵심은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이재명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충돌이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8월 18일 두 명의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했다. 청와대는 한 명은 임명했지만, 실질적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된 손봉기 부장판사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고, 청와대는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겠다고 맞섰다.
일단 대법원장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전 협의' 관행에서 벗어나 서면으로 제청한 것은 충돌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는데, 법제처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제청을 "일종의 추천·제안"으로 보고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를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에게 임명 거부권이 있느냐는 문제와, 대법원장을 탄핵해서라도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는 후보를 제청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임명 거부와 재제청 요구는 헌법 해석을 두고 다툴 수 있는 영역에 있지만, 탄핵으로 재제청을 관철하는 것은 헌법기관 사이의 견제를 정치적 힘으로 무너뜨리는 행위다.
헌법은 왜 권한을 셋으로 나누었나
현행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제청권은 대법원장에게, 동의권은 국회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어느 한 기관도 혼자서는 대법관을 만들 수 없다. 이 설계는 권력이 사법부를 손에 쥐었을 때 겪은 독재권력의 경험에서 얻은 헌법적 교훈의 결과물이다.
한국 사법부의 역사는 그 교훈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인지 보여준다. 1959년 진보당의 조봉암은 간첩 혐의 등으로 사형당했고, 대법원은 52년 뒤인 2011년 재심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고인들의 사형을 확정했고, 불과 18시간 뒤 8명의 형이 집행되었다. 2007년 법원은 재심에서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가 권력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국가폭력에 법의 외피를 씌우는 도구가 되었던 경험들이다.
이 비극을 몇몇 법관의 용기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유신체제에서는 사법부를 길들이는 제도가 노골적으로 작동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고, 대법원판사 임명에 국회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1973년 법관 재임명 과정에서는 1971년 국가배상법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렸던 대법원판사들이 전원 재임명되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권력의 뜻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면 법복을 벗게 된다는 신호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헌법도 대법원판사 임명에 국회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형식상 대법원장의 제청 절차는 박정희, 전두환 때도 있었다. 그 당시는 대통령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제청권자와 법관의 지위가 위협받는 체제였기 때문에, 제청권은 견제장치가 아니라 대통령 의지를 관철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박정희의 길은 법관 몇 사람을 굴복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권력의 뜻을 거스르면 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재임용 탈락 제도로 보여줌으로써, 사법부 전체가 스스로 권력의 눈치를 살피게 만드는 길이었다. 1987년 헌법이 대법관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더한 것은 바로 이 경험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다.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대법원을 채우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로, 민주화의 제도적 성과다.
탄핵이라는 수단의 위험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자체를 곧바로 위헌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이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뜻에 맞는 후보를 제청할 때까지 거부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는 대법원장을 탄핵하여 직무에서 배제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제청권은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로 전락한다. 이후로 모든 대법원장은 같은 압박을 의식할 것이다.
물론 탄핵은 헌법이 정한 절차이고 파면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한다는 점에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법관을 걸러낸 유신 시기의 재임명과 같지는 않다. 그러나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는 순간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정지된다(헌법 제65조 제3항). 헌법재판소가 끝내 소추를 기각하더라도, 대통령의 뜻에 따르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데는 소추 의결만으로 충분하다. 지금의 탄핵 논의가 박정희의 길과 겹쳐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권력에 불응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면, 헌법에 명시된 제청권한도 실질적인 효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도 있다. 여권의 탄핵론은 재제청 갈등 이전부터 존재했고, 그 명분에는 대법원이 지난해 5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판결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후보는 이 판결을 "사법의 이름을 빌린 선거 개입"이라 부르며 당론으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김민석 대표 역시 파기환송 판결을 대선 개입으로 규정하며 탄핵 사유로 거론했다.
이 판결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권력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이유로 법관의 거취를 문제삼는 것은, 유신 정권이 위헌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들을 재임명에서 배제했던 논리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탄핵은 마음에 들지 않는 공직자를 교체하는 수단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파면을 정당화하려면 법 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해야 한다는 기준을 분명히 했다. 해석이 갈리는 헌법 조항에 대해 대법원장이 한쪽 해석을 택했다는 것을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 부를 수는 없다.
법제처장의 '직무유기' 주장 역시 해석이 갈리는 문제에서 정부 쪽 해석을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 국정감사 선서 거부와 업무추진비 의혹도 사실관계를 따져 책임을 물을 일이지만, 그것들이 탄핵 논의의 진짜 동력이 아니라는 것은 논의가 불붙은 시점이 말해준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번 사유를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신중론이 나온 바 있다.
기관 사이의 권한 다툼을 해결하는 헌법적 통로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권한쟁의심판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국회의 임명동의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다만 헌법재판소 선례에 비추어 보면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국회의 권한 침해를 대신 다투는 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 다툼의 진짜 당사자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다. 반면 청와대는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대통령이 직접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헌법이 마련한 심판 절차를 비켜 두고 탄핵이라는 정치적 수단에 기대는 것은 법적 판단보다 힘의 우위를 택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탄핵은 누구의 뜻을 관철하는가
청와대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탄핵론이 나왔을 때 이에 공감한다는 보도를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대통령이 탄핵을 지시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의 지시냐가 아니라 탄핵이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되느냐다.
핵심적인 탄핵 사유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그 방향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뜻에 맞지 않는 제청을 한 대법원장이 직무에서 배제되고,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는 관철될 길이 열린다. 여당인 민주당이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 움직이든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든, 탄핵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관철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 문제가 대법관 한 자리의 인선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대법관은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안에 대법관 26명 가운데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열에 여덟 이상이다. 국회 동의도 실질적인 견제가 되기 어렵다. 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임명동의안의 운명은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다른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통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 하나만 남는다. 이 마지막 통로마저 재제청 요구와 탄핵 압박으로 무력화된다면, 대법원은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 한 사람이 선택한 법관들로 채워진다. 그러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모두 대통령 한 사람의 뜻 아래 놓였던 유신체제의 권력집중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이는 제청권과 동의권과 임명권을 세 기관에 나누어 어느 한 권력도 대법원을 혼자 채우지 못하게 한 1987년 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이 교착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후보자의 적격성은 인사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검증되고, 탄핵의 명분은 사라진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보내는 방안에 선을 긋고 있다. 여당 대표가 탄핵 논의를 공식화한 뒤에도 10월 18일 현재까지 청와대는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사법부 수장에 대한 탄핵이 공식 논의되는 상황에서, 문제의 당사자인 대통령이 선을 긋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탄핵을 묵인하는 것이자 사실상 부추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박정희의 길을 가려 하는가.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박정희와 같은 인물이라는 말이 아니다. 두 시대의 조건은 다르고,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적 선거로 선출되었다. 물어야 할 것은 인물이 아니라 길이다. 쿠데타도, 긴급조치도 없이 합법적 절차만으로도,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은 사법부 수장이 대가를 치르는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같은 길이다. 대통령이 직접 사법부를 압박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사권을 관철하기 위한 압박을 여당이 대신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도 사법부 구성을 자신의 의사에 종속시키려 하면 권위주의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 방식도 쿠데타가 아니라, 선거로 집권한 세력이 법원과 헌법기관을 하나씩 장악하는 것이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심판의 장악'이라 부른 ‘비협조적인 법관을 탄핵하거나 사퇴를 압박하는’ 바로 그 경로다.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선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는 제도에 의해 유지된다.
그렇다고 조 대법원장을 옹호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사전 협의 관행을 일방적으로 깨고, 재제청 요구에 형식 논리로만 대응한 대법원장의 태도 역시 갈등을 키웠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지키는 것과 대법원장의 인사 독점을 옹호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 강화가 아니라 추천 과정의 민주화다.
이번 갈등은 대법관 인사제도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냈다. 현행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위원 구성과 운영에서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크고, 추천된 후보 가운데 누구를 제청할지도 대법원장이 결정한다. 그 결과 대법관 인선은 대법원장과 대통령 사이의 비공개 협의, 혹은 지금처럼 공개적인 힘겨루기에 좌우된다.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되면 대법관 제청과 임명이 대통령에게 종속되고,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지켜내면 법원은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법관들의 성역으로 남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사법부 독립이 국민의 비판과 감시를 차단하고 법관 집단의 자기 재생산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전락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구경꾼이 된다.
이 사태를 개선하는 제도적 대안은 대법관 후보의 추천과 검증을 국민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변호사단체, 법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고,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한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의회가 후보자들의 인권의식과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 공적 책임성을 공개적으로 심사하도록 하자. 법률지식은 전문가가 검증할 수 있지만,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최고법원에 앉아야 하는지는 시민이 판단할 몫이다.
대법원장이 지금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존중하듯 시민의회가 압축한 후보군을 존중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라면 헌법상 제청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법관 집단의 인사 독점과 대통령의 인사 개입을 함께 줄일 수 있다. 이 경우에 시민의회의 대표성과 독립성을 법률로 보장하면 사법부 독립이 민주적 책임성과 결합된다. 국민주권 원칙이 사법영역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
사태의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대통령은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면 된다. 후보자가 부적격하다면 인사청문회에서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국회가 동의를 거부하면 된다. 국회 과반을 가진 여당에게 이보다 투명하고 헌법적인 길은 없다. 재제청 요구의 헌법적 근거를 다투고 싶다면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은 여당의 탄핵 논의에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대법원장 역시 관행 이탈에 대해 설명하고 협의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
1987년 헌법이 대법관 임명에 세 기관을 묶어 둔 것은 어느 한 권력도 사법부를 혼자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성과는 어느 정당이나 대통령의 소유물이 아니다.
'박정희의 길'이 남긴 교훈은 명백하다. 대통령이 사법부를 자신의 의사에 복종시키려 할 때, 그것을 직접 하든 남의 손을 빌리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사법부를 장악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하면서 그 책임성을 묻는 대통령, 그것이 1987년 헌법이 요구하는 민주공화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박정희의 길을 갈 것인가, 1987년 헌법의 길을 갈 것인가. 그 답은 여당의 탄핵 논의에 대통령이 분명히 선을 긋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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