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워싱턴에서 나온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 가운데 언론의 관심은 전작권을 언급한 CSIS 강연에 쏠렸다. 그러나 미국의 속내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 곳은 그보다 앞선 미국육군협회(AUSA) 현대군사포럼이었다. 전작권은 결과일 뿐이고, 그 결과를 낳는 설계도는 이 포럼에서 펼쳐졌다.
유엔사령관으로서 다국적 연합이 미국에 어떤 이점을 주느냐는 질문에, 브런슨은 여러 나라가 함께하면 일이 쉬워진다고 답했다. 그리고 동맹국이 미국의 "계획과 기대"에 깊이 관여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서 론 클라크 미 육군태평양사령관은 전략적 경고에서 병력 배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아시아 대륙과 제1·2도련선 안에 전투준비가 된 부대를 미리 두는 것이 억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동맹국과의 연합훈련만 한 해 54회라고 했다.
두 발언을 겹쳐 놓으면 그림은 선명해진다. 미국의 전략 목표가 먼저 있고, 동맹국의 군대는 그 목표를 이행하는 과정에 투사된다. 동맹은 함께 판단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미국의 "계획과 기대"를 분담하는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최전방 좌표에 한국이 있다.
과거 브런슨이 한국을 중국의 눈에 비친 '아시아 한복판의 단검'으로 묘사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미 군부가 한반도를 읽는 방식, 곧 대중국 견제의 전진 플랫폼이라는 정의다.
이 정의 위에 서면 나머지 발언들이 모두 하나로 꿰인다. 훈련을 한반도 전역의 분산·기동형으로 바꾸자는 것, 한국의 방산과 조선을 '지역 지속지원 허브'로 삼자는 것, 다영역작전부대(MDTF) 배치가 "절대적으로 매력적"이라는 것, 그리고 유엔사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남방한계선에서 시작한다는 발언까지. 영토와 산업과 군대를 미국의 작전 설계 안으로 편입하는 구상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전작권 전환이 '조건 미충족'으로 계속 미뤄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작전을 지휘하는 권한은 그 작전의 목적을 정하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미국의 대중 전략에 복무해야 할 전력이라면, 그 지휘권을 한국에 넘길 이유가 미국에는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한국은 이 설계도를 뚫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답은 '대응'이 아니라 '선제적 설계'에 있다. 미국의 발언에 사후적으로 해명하고 유감을 표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주도권을 쥘 수 없다. 우리 스스로의 지도를 먼저 펼쳐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전작권 전환의 시간표를 한국이 먼저 공표해야 한다. 국방부가 "SCM에서 합의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이, 목표 시점은 미국 사령관의 의회 증언으로 정해지고 있다.
정부는 현 정부 임기 내 완전운용능력(FMC) 검증 완료를 목표로 한 자체 로드맵을 내놓고, '조건'을 미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측정 가능한 지표로 재정의해 공개해야 한다. 국회 결의로 이를 뒷받침하면 협상의 출발점 자체가 바뀐다. 상대가 반응하게 만드는 쪽이 의제를 쥔다.
둘째, 브런슨의 '모자'들을 분리해 제도로 묶어야 한다. 주한미군사령관, 연합사령관, 유엔군사령관의 권한이 한 사람 안에서 뒤섞이는 한 월권은 반복된다. 유엔사의 역할을 정전협정 관리에 엄격히 한정하고, 연합사 체계와의 권한 경계를 한미 간 문서로 명문화해야 한다.
특히 DMZ는 정전 관리의 대상일 뿐 대한민국 영토주권의 예외 지대가 아니라는 원칙을 확인하고, 정전관리 권한의 조정을 위한 별도 협의체를 요구해야 한다. 회원국 확대 등 유엔사의 '재활성화' 흐름이 한반도를 다국적 반중 연합의 기지로 바꾸는 통로가 되지 않도록 경계선을 그어 두어야 한다.
셋째,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한계선을 다시 써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한미 공동성명은 한국이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동북아 분쟁에 개입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담았다. 그러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한반도 밖 작전을 위한 주한미군 전력 이동과 MDTF 같은 신규 전력 배치에 대해 한국의 사전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협의 절차를 제도화하고, 국회가 이를 감독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맹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맹의 '용도'를 우리가 함께 정하자는 것이다.
넷째, 방산·조선 협력을 대가 없는 편입이 아니라 적극적 협상 자산으로 다뤄야 한다. 미 해군 함정 정비(MRO)와 방산 공급망 협력은 한국 산업에 기회인 동시에, 설계에 따라서는 한국을 대중국 작전의 병참기지로 고정하는 족쇄가 된다.
협력의 범위를 평시 정비·생산으로 한정하는 계약 조건, 기술 이전과 공동 개발의 상호성, 그리고 전작권·방위비 협상과의 연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갖고 있다면, 그것은 지렛대로 써야지 공물로 바칠 일이 아니다.
다섯째, '단검'이라는 이미지를 지우는 외교를 병행해야 한다. 한반도가 대중국 전초기지로 읽히는 순간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것은 한국 자신이다. 중국과 국방전략대화와 해·공군 직통 소통 채널을 복원·정례화하고, 서해에서의 우발 충돌 관리 장치를 구체화해야 한다.
동시에 같은 도련선 위에 놓인 국가들, 그리고 연루의 위험을 공유하는 중견국들과 '동맹 운용의 자율성'을 의제로 한 연대를 넓혀야 한다. 미·중 경쟁이 제도화될수록 한 나라의 힘은 군사력의 총량보다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손에 쥐고 있느냐에서 나온다. 선택지 자체가 국력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군부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동맹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대통령과 한반도를 대중 전략의 좌표로 읽는 군부는 같은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전작권 전환과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은 바로 그 틈에 있다.
그러나 틈은 저절로 넓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지렛대로 쓸 설계도를 가진 쪽만이 그 틈을 통과할 수 있다. 한국은 누군가의 손에 쥐여진 단검이 될 수도 있고, 지역 질서의 균형을 잡는 저울추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워싱턴의 지도가 아니라 서울이 그리는 지도에 달려 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지도를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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