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회를 파괴하는 음모론: 거짓의 언어를 해부하라

[프레시안 books] <정치, 거짓말, 음모론: 인지언어학의 시각>

거짓말은 인간의 언어에 내재한 본능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세계를 구성하고, 동시에 그 세계를 왜곡하는 힘을 얻는다. 말하는 존재,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로서 인간은 언제나 진실과 허위의 경계 위에서 살아간다. 언어는 현실을 복제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다르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언어는 가능성이자 위험이며, 문명을 세운 동시에 문명을 위태롭게 하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의 거짓말이 문제로 떠오르는가? 이제는 거짓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유포된 거짓과 음모론은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변주되어, 민주주의의 공통 기반을 흔들고 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도덕적 각성이나 시민교육, 법적 규제만으로는 이 확산을 멈출 수 없다. 정치적 거짓말은 감정과 언어의 결합 구조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 구조를 이해하고 해부해야 한다.

마르셀 다네시의 <정치, 거짓말, 음모론: 인지언어학의 시각>(마르셀 다네시 지음, 나익주 옮김, 한울)은 바로 그 해부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인지언어학과 기호학의 방법을 결합하여, 거짓말과 음모론이 어떻게 '현대적 신화'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개념적 은유 이론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신화론을 계승한 다네시는, 언어가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사고와 현실을 조직하는 틀임을 밝힌다. 정치적 거짓말은 단순한 허위에 머물지 않으며, 은유와 서사와 감정의 리듬이 결합한 하나의 교묘한 인지 장치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 그렇지만 그 언어가 이미 특정한 프레임 속에서 의미를 생산할 때, 이 '해석하는' 행위는 오히려 인간을 '길들이는' 과정으로 바뀐다.

거짓말은 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흉내 내는 형식으로 작동한다. 언어의 상징적 힘-이미지를 만들고 감정을 묶고 세계를 설명하려는 충동-이 정치적 의도와 결합할 때, 그 결과는 단순한 오해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인식 구조를 바꾸는 폭력이 된다. 그렇지만 저자 다네시는 언어의 위험을 폭로하면서도, 언어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어를 조롱하거나 배제하기보다, 그 작동 방식을 자각하고 그 안에서 다른 리듬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언어의 자유란 완벽한 침묵이 아니라, 언어의 질서를 인식한 상태에서 새롭게 말하는 능력이다.

이 통찰은 오늘의 한국 현실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도 '선거 부정'이나 '혐중(嫌中)' 같은 음모론이 온라인과 거리에서 빠르게 번져왔다. 이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감정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다. 그럴듯한 말이 사실인 것처럼 들릴 때, 언어는 정보가 아니라 신념을 형성하고, 신념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다네시의 분석은 이러한 현상이 비이성적 광풍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적 작동 방식임을 일깨운다. 이 책은 혐오와 허위 담론을 이해하고 해체하는 데 탁월한 설명력을 제공한다.

<정치와 거짓말, 음모론>은 단순한 언어학책이 아니다. 이것은 언어의 정치학이자, 민주사회가 추구해야 할 언어 윤리에 대한 성찰을 담은 교양서이다. 거짓의 시대일수록 언어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언어에 대한 이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윤리적 감각이 된다. 다네시는 언어의 권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 책임을 우리들 각자에게 되돌려 준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고들 믿지만, 실상은 언어가 우리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불편한 자각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출발점이다.

진실은 언어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진실은 여전히 언어를 통해 얼핏 어른거린다는 것을 믿으려는 마음속에, 그리고 언어를 오염시키는 힘을 기어코 이해하려는 지적 용기 속에 있다. 이 책은 그 용기를 되살리는 연장통이다. 다네시가 제시하는 도구들을 통해 우리는 거짓의 골격을 분해하고, 그 잔해를 폐기할지 혹은 다시 조립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지 선택할 수 있다.

거짓의 시대에 다시 말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독자들에게 건네는 가장 실질적인 선물이다.

▲<정치, 거짓말, 음모론: 인지언어학의 시각>(마르셀 다네시 지음, 나익주 옮김)ⓒ한울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