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만찬의 건배사는 대개 재미가 없다. 우정을 말하고, 협력을 말하고, 건강을 기원한 뒤 잔을 든다. 통역을 거치고 나면 샴페인의 탄산처럼 마지막 남은 긴장마저 빠져버린다.
그런데 9월 24일 밤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시진핑이 한 건배사는 다르다. 짧았지만 치밀하게 편집돼 있다. 조지 워싱턴의 중국 도자기가 나오고, 험프 항로가 나오고, 마오쩌둥과 닉슨의 탁구공이 나온다. 중국 사막에 나무를 심은 한 미국인의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진핑은 트럼프의 가장 유명한 구호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구호를 한 문장에 앉힌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목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목표가 둘 다 웅대하며, 얼마든지 서로를 성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을 이해하려면 건배사 전체를 한 편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워싱턴의 밤, 베이징의 추석
시진핑은 환대에 감사를 표한 뒤 먼저 명절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이 순간 중국 인민은 중추절을 보내고 있고, 중추절은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이는 '퇀위안(团圆)'의 명절이라고.
워싱턴은 24일 밤이었지만 베이징은 이미 25일, 추석 아침이다. 관세를 주고받고, 반도체를 막고, 희토류를 움켜쥐던 두 나라 정상이 한 식탁에 앉은 날 시진핑이 고른 첫 단어는 경쟁도 투쟁도 아닌 '다시 모임'이다. 우연을 재료로 쓰는 것, 그것이 외교 언어의 기술이다.
그는 이어 넉 달 전 트럼프의 방중 때 '건설적 전략적 안정 관계'에 합의했고, 반년이 채 안 돼 두 정상이 서로를 국빈 방문하며 역사를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오늘 회담에서 많은 새로운 공감대를 이뤘다고도 한다. 다만 그 공감대가 무엇인지는 건배사 어디에도 없다. 이 점은 뒤에서 다시 살펴보자.
200년, 80년, 50년, 20년: 시간의 계단
시진핑은 먼저 미국 독립 250주년을 축하한다. 그러고는 네 개의 계단을 밟듯 역사를 내려온다.
200여 년 전, 막 독립한 미국은 중국과 교역을 시작했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중국 도자기를 대량으로 사들여 수집했다. 80여 년 전에는 두 나라 국민이 함께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험프 항로를 열었고, 중국 군민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치르며 수백 명의 미국 조종사를 구했다. 50여 년 전에는 마오쩌둥과 닉슨이 '작은 공으로 큰 공을 움직이는' 정치적 지혜로 관계 정상화를 열었다. 닉슨이 선물한 레드우드는 시진핑 자신이 일했던 저장성에 심겨 있다. 그리고 20여 년 전에는 한 미국인이 중국의 사막 녹화 운동가 인위전(殷玉珍)의 나무 심기를 후원했고, 최근 다시 중국을 찾은 그는 사막이 숲으로 변한 것을 직접 보았다.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이야기를 어디서 시작할지는 고를 수 있다. 미중관계를 2018년 무역전쟁에서 시작하면 싸움의 이야기가 된다. 1949년에서 시작하면 이념 대립의 이야기가 된다. 시진핑은 시계를 미국 건국 무렵까지 돌렸다. 그 순간 중국은 이념과 체제의 경쟁자가 아니라 조지 워싱턴이 도자기를 사던 오래된 교역 상대가 된다. 첫 장면으로 고른 단어가 '무역'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각 장면에는 계산이 겹겹이 들어 있다.
험프 항로 장면에서 시진핑은 '일본 군국주의'를 미중의 공동의 적으로 불러낸다. 미일동맹이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추인 시대에, 워싱턴 한복판에서 80년 전의 전선을 다시 그은 것이다. 우정의 회고이면서 동시에 은근한 쐐기다.
마오와 닉슨 장면에는 트럼프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 두 사람은 친구가 아니었고 체제도 달랐지만 필요했기에 거래했다. 이보다 트럼프다운 외교 문법이 또 있을까. 마오와 닉슨도 했는데 시진핑과 트럼프가 못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레드우드와 사막의 숲은 중국 외교가 사랑하는 장기 시간의 은유다. 나무는 오늘 심고 내일 열매를 따는 것이 아니다. 인위전이 숲을 일군 마오우쑤 사막은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삼북 방호림' 사업의 핵심 무대이기도 하다. 생태 복원의 서사를 미중 민간 교류의 서사로 엮은 셈이다. 시진핑이 건배사 끝에서 "중미 우정의 아름다운 꽃에 함께 물을 주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의 세계가 거래와 숫자의 세계라면, 시진핑의 세계는 역사와 시간의 세계다.
MAGA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다시'의 정치
건배사의 백미는 후반부다. 시진핑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을 꺼낸 뒤, 미중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MAGA를 내걸고 미국 국민을 이끌어 중요한 발전 성과를 이뤘다고 치켜세운다. 그리고 중국은 중국식 현대화로 민족 부흥을 이루고 있으며, 두 목표는 서로를 성취시킬 수 있다고 한다. 대국으로서의 책임을 보여 '대국이 올바르게 공존하는 새로운 길'을 찾자는 제안이 뒤따른다. 상대의 슬로건을 반박하는 대신 자기 슬로건 옆자리를 내준 것이다.
외교에서는 때로 반박보다 합석이 더 무섭다. 트럼프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자신의 요구를 그 안에 슬며시 집어넣는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트럼프,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십시오. 다만 중국을 작게 만들어서 그렇게 하지는 맙시다."
이 제안에는 계보가 있다. 2013년 서니랜즈에서 시진핑은 오바마에게 충돌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상호 존중하고 협력 공영하자는 '신형대국관계'를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끝내 이 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호 존중'이 대만과 남중국해 같은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막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13년 뒤 옷은 '건설적 전략적 안정'으로 바뀌었지만 요구의 뼈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제거하려 하지 말고, 중국은 미국의 지위를 당장 뒤집지 않으며, 경쟁에는 난간을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를 성취시킨다'는 문장은 사실이 아니라 주장이다. MAGA와 민족 부흥은 둘 다 '다시'의 정치, 곧 잃어버린 과거의 위대함을 되찾자는 복원의 서사다. 문제는 두 서사가 각자의 상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MAGA의 서사에서 미국 제조업을 공동화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다. 부흥의 서사에서 '백년 국치'의 가해자에는 서구 열강이 들어 있다. 상대를 자기 쇠락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두 복원 서사가 과연 서로를 성취시킬 수 있는가. 시진핑은 그렇다고 답했다. 워싱턴의 정책 공동체가 같은 답을 내놓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낮의 언어와 밤의 언어
좋은 연설은 무엇을 말했는지만큼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읽어야 한다. 이 건배사에는 대만도, 관세도, 반도체도, 희토류도, 이란도 없다.
하지만 같은 날 낮 회담장에서는 달랐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미국이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고, 대만 독립에 '반대'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기존 표현보다 한층 강한 요구다. 두 달 연장된 무역휴전의 이면에서는 미국 관리들이 희토류 공급이 약속에 못 미친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었다.
낮에는 국익을 놓고 싸우고, 밤에는 다음 날 다시 싸울 수 있도록 관계를 남겨둔다. 낮의 언어가 요구의 언어라면 밤의 언어는 관계의 언어다. 중국은 두 언어를 정교하게 분리해 썼다. 트럼프는 트럼프대로 양국 관계가 지금처럼 좋았던 적이 없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만남은 계속된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두 정상은 올해 중국이 주최하는 APEC 정상회의와 미국이 주최하는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서로 지지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두 사람은 올해 네 번 만나게 된다. 다음은 선전, 그다음은 마이애미다. 싸우면서도 전화선을 끊지 않고, 경쟁하면서도 다음 만남 날짜를 잡는 관계. 어쩌면 이것이 '건설적 전략적 안정'의 가장 쉬운 번역일 것이다.
200년의 서사에서 빠진 장면, 한반도
그런데 한국의 독자라면 이 건배사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공백이 있다. 도자기에서 험프 항로로, 탁구공에서 사막의 숲으로 이어진 200년의 서사에서 1950년이 통째로 빠졌다. 미국과 중국이 역사상 유일하게 정면으로 총부리를 겨눈 전쟁, 한국전쟁이다.
이해할 수 있는 생략이다. 우정의 건배사에서 전쟁을 꺼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생략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강대국은 역사를 편집할 수 있다. 어떤 장면을 넣고 어떤 장면을 뺄지 결정하는 것은 이야기를 쓰는 자의 권한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편집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잘려 나가는 장면이었다.
이것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두 강대국이 '서로를 성취시키는 관계'를 말할 때, 그 성취의 비용이 어디에 청구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대만 무기 판매가 협상 테이블 위에서 저울질되는 장면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미중의 화해가 한반도를 비용으로 삼지 않도록, 미중의 대결이 한반도를 전장으로 삼지 않도록. 둘 중 어느 쪽이든 한국이 편집당하는 쪽이 아니라 편집에 참여하는 쪽에 서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도 자기 서사를 가져야 한다. 강대국이 써준 각본 속 조연이 아니라, 두 나라 모두에게 필요한 연결자이자 동북아 평화의 의제를 먼저 제안하는 나라로서의 서사다. 시진핑이 백악관에서 보여준 것은 역사를 무기로 쓰는 법이 아니라 역사로 관계의 공간을 만드는 법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기술이다.
탁구공에서 AI까지
1971년에는 작은 탁구공 하나가 태평양을 건넜다. 2026년에는 AI와 반도체와 희토류가 태평양을 건넌다. 물건은 달라졌지만 질문은 같다. 두 강대국은 경쟁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가.
건배사가 현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샴페인 한 잔으로 대만해협의 군함이 사라지지도 않고, 반도체 수출통제가 풀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외교란 때로 전쟁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내일도 협상할 수 있도록 오늘의 문을 닫지 않는 기술이다.
그날 밤 백악관에서 한 사람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중화민족을 다시 부흥시키겠다고 했다. 둘 다 위대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시진핑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일단 잔을 들었다.
국제정치는 이제부터다. 그리고 그 잔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다음 장면이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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