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나무에 인간의 손길과 색이 더해지는 순간, 그것은 자연만의 것도, 인간만의 것도 아닌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된다. 서양화가이면서 흙과 돌, 나무를 이용한 설치작업에 천착해온 박경식 작가가 오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순창공립미술관 본관에서 기획초대전 ‘자연을 빌려오다’를 연다.
박 작가의 작업은 자연에서 얻은 소재에 예술적 개입을 더해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자연이 남긴 형태와 결에 작가의 손길과 색을 보태면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으로 확장해왔다.
서양화가이면서도 한국 자연의 정취를 작품에 담아온 그는 흙과 돌, 나무를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아왔다. 자연을 화면에 옮겨 그리는 데서 나아가 자연의 재료 자체를 작품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이어왔다.
박 작가는 자연 그대로의 나무 위에 인간의 손길과 색깔이 더해지면 더 이상 자연만의 것도, 인간만의 것도 아닌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통해 무엇이 새롭게 태어나는지를 탐구하는 시선이다.
순창군이 주최·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자연에서 얻은 소재에 작가의 손길을 더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돌아보는 자리다.
박 작가에게 흙과 돌, 나무는 단순한 작품 재료가 아니다. 휘어지고 뒤틀리고 갈라진 나무, 상처 입은 표면에는 오랜 시간과 자연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는 이를 지우거나 매끈하게 다듬기보다 나무가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작품 안으로 가져온다.
전시 안내에 실린 ‘나무도 나도’ 작품에서는 굽은 나뭇가지와 뿌리를 연상시키는 구조물 사이로 작은 한옥 형상이 어우러진다. 나무 본래의 굴곡과 가지의 흐름을 살린 작업에 한국적인 건축의 모습이 더해져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자연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연이 가진 시간과 흔적을 작품 안으로 가져오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시 제목인 ‘자연을 빌려오다’에도 이러한 작업 태도가 담겼다. 자연을 소유하거나 재현하기보다 자연의 일부를 잠시 빌려 사람의 삶과 마주하게 한다는 의미다. 자연은 작품의 재료가 되고, 사람은 그 안에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한다.
박 작가는 “나에게 설치작업은 자연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라며 “나무의 시간 위에 사람의 시간이 더해지고, 자연의 흔적 위에 삶의 흔적이 겹쳐진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사람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을 나무와 색, 공간을 통해 관람객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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